연창역(連倉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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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강원도의 도로망인 상운도에 속한 역으로, 오늘날의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에 위치해 있었음.

개설

조선전기 세종대에 정립된 44역도(驛道)-537속역(屬驛) 체제에서 연창역(連倉驛)은 대창도(大昌道)에 속한 역이었다. 그 뒤 세조대에 역로(驛路)를 다시 41역도-543속역 체제로 개편하는 과정에서 상운도(祥雲道)를 구성하는 역의 하나가 되었다. 이후 조선후기까지 존속하다가 1896년(건양 1) 1월에 폐지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연창역이 처음 등장하는 문헌은 『세종실록』「지리지」이다. 그 당시 강원도에는 대창도·보안도(保安道)·평릉도(平陵道) 등 3개의 역도가 있었는데, 연창역은 그 중 대창도에 속한 28개소의 역 가운데 하나였다. 또한 상운역(祥雲驛)·강선역(降仙驛)·인구역(麟丘驛)과 함께 양양도호부에 설치된 4개의 역 중 하나이기도 했다.

조직 및 역할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 양양 편에 따르면, 연창역에는 대마(大馬) 3필, 복마(卜馬) 8필 등 총 11필의 역마와, 역리(驛吏) 270명, 역노(驛奴) 130명, 역비(驛婢) 70명이 배속되어 있었다. 그에 비해 『관동지(關東誌)』에는 역마의 수는 같지만 역민의 수는 역리 321명, 역노 23명, 역비 103명으로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변천

조선전기 세종 연간에 전국적인 역로 조직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세조대에는 찰방(察訪)이 관할하는 역이 많고 역로가 멀어서 찰방이 순시하거나 사객(使客)이 왕래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그리고 그 결과 역로가 쇠퇴하는 등의 폐단이 나타났다. 그에 따라 1462년(세조 8)에는 병조의 건의에 따라 각 도의 역참을 파하고 역로를 정비해 찰방과 역승(驛丞)을 두게 하였다(『세조실록』 8년 8월 5일). 그 과정에서 연창역은 상운역·오색역(五色驛) 등 15개 역과 함께 상운도 역승이 관할하는 역이 되었다. 이때 상운도는 대창도가 명칭이 변경된 것으로 보이며, 상운도 역승은 뒤에 찰방으로 승격되었다. 한편 『관동지』에는 찰방의 우관(郵官)이 연창역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상운도의 중심 역이 상운역에서 연창역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연창역은 그 뒤 조선후기까지 상운도에 속한 역으로 존속하다가, 1896년 1월에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폐지되었다.

『여지도서』와 『관동지』에 따르면 연창역은, 양양도호부 관문(官門)에서 동쪽으로 5리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었다. 『해동지도(海東地圖)』에는 읍성 주위에 연창역이 표시되어 있다. 오늘날의 위치는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 연창리 일대이다.

참고문헌

  • 『여지도서(輿地圖書)』
  • 『관동지(關東誌)』
  • 『해동지도(海東地圖)』
  • 조병로, 『한국근세 역제사연구』, 국학자료원,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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