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운도(祥雲道)
주요 정보 | |
---|---|
대표표제 | 상운도 |
한글표제 | 상운도 |
한자표제 | 祥雲道 |
하위어 | 동덕역(同德驛), 등로역(藤路驛), 초진역(超塵驛), 장기역(長歧驛), 부령역(富寧驛), 고잠역(高岑驛), 양린역(養麟驛), 태강역(泰康驛), 죽포역(竹苞驛), 청간역(淸澗驛), 관목역(灌木驛), 운근역(雲根驛) |
관련어 | 역도(驛道), 명주도(溟州道), 삭방도(朔方道), 미시파령(彌時波嶺), 역승(驛丞), 찰방(察訪) |
분야 | 경제/교통/육운 |
유형 | 개념용어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朝鮮) |
집필자 | 조병로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상운도(祥雲道)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세조실록』 8년 8월 5일 |
조선시대에 강원도의 양양·간성·고성·통천·흡곡 등에 설치된 역을 관할한 역도.
개설
상운도(祥雲道)의 유래는 고려시대의 명주도(溟州道)와 삭방도(朔方道)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두 역도(驛道)에 속한 역들이 조선전기 세종 연간에는 대창도(大昌道)에 소속되었는데, 이후 세조대와 성종대를 거치며 상운도로 독립되었다. 상운도는 16개의 속역 중 양양의 상운역을 본역으로 하였으며, 성종대까지는 역승(驛丞)이, 중종 이후에는 찰방(察訪)이 파견되어 역무를 맡아보았다. 양양(襄陽)-간성(杆城)-고성(高城)-통천(通川)-흡곡(歙谷)을 지나 동북 방면으로 오가는 교통로를 관할하였다.
내용 및 특징
강원도 동해안을 따라 양양에서 흡곡으로 이어지는 역로를 관할한 상운도는 고려시대의 명주도와 삭방도에 속한 역들을 계승해 성립되었다. 명주도의 속역에는 오늘날의 양양에 해당하는 양주에 위치한 상운역(祥雲驛)·익령역(翼令驛)·강선역(降仙驛)·인구역(驎駒驛)이 있었으며, 삭방도의 속역에는 흡곡의 동덕역(同德驛), 임도의 등로역(藤路驛), 운암의 초진역(超塵驛)·장기역(長歧驛)·부령역(富寧驛), 고성의 고잠역(高岑驛), 환가의 양린역(養麟驛), 인창의 태강역(泰康驛), 간성의 죽포역(竹苞驛)·청간역(淸澗驛), 열산의 관목역(灌木驛)·운근역(雲根驛) 등이 있었다.
이와 같은 명주도·삭방도의 속역은 조선전기 세종대에는 대창도에 소속되었다가, 1462년(세조 8)에 강원도의 역도를 은계도(銀溪道)·평릉도(平陵道)·보안도(保安道)·상운도로 재편할 때 상운도에 속하게 되었다. 이때 상운도는 상운역·강선역·청간역·운근역·고잠역·연창역(連蒼驛)·오색역(五色驛)·인구역(麟丘驛)·죽포역(竹泡驛)·명파역(明波驛)·대강역(大江驛)·양진역(養珍驛)·조진역(朝珍驛)·등로역(登路驛)·거풍역(巨豊驛)·정덕역(貞德驛) 등 16개 역으로 편성되었으며, 역승이 이를 관할하였다(『세조실록』 8년 8월 5일). 그 뒤 성종대에 『경국대전(經國大典)』을 편찬하는 과정에서 상운역·연창역·오색역·강선역·인구역·죽포역·청간역·운근역·고잠역·양진역·조진역·등로역·정덕역·명파역(明破驛)·대강역(大康驛)·거풍역(巨豊驛) 등 16개 속역으로 구성된 역도로 확립되었다.
한편, 상운도의 역속과 역마 배속 현황을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를 통해 살펴보면 다음 <표1>과 같다.
<표1>에서 보듯이 상운도에는 역리(驛吏) 1,202명, 역노(驛奴) 347명, 역비(驛婢) 186명이 배정되어 역무를 담당하였으며, 역마는 93필이 배속되어 있었다. 상운도의 본역인 상운역의 경우 역리 154명, 역노 30명, 역비 29명과 역마 11필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관동지(關東誌)』「양양읍지」 역원 조에도 거의 비슷하게 역리 163명, 역노 69명, 역비 12명과 대마 3필, 복마 8필 등 총 11필의 역마가 배속되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밖에 『대동지지(大東地志)』에 따르면, 상운도에 속한 역속은 모두 9,034명이고, 역마는 487필이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상운도의 특징은 고려시대의 삭방도와 명주도의 속역을 계승해 발전했다는 점이다. 조선후기에 미시파령(彌時波嶺) 길을 개척함으로써 양양의 오색역을 폐지하고 대신 간성에 원암역(元巖驛)을 설치하였다. 또 상운역만은 세종대에는 대창도에 편성되었다가, 세조대인 1462년에 상운도로 이속되었다.
변천
상운도는 고려시대에 명주도와 삭방도에 속했던 상운역·강선역·인구역·동덕역·등로역·고잠역·양린역·태강역·죽포역·청간역·운근역 등을 계승했는데, 그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명칭이 변경되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고성의 태강역(泰康驛)이 대강역(大康驛)으로, 양린역(養麟驛)이 양진역(養珍驛)으로, 흡곡의 동덕역(同德驛)이 정덕역(貞德驛)으로 바뀌었다. 또 신설된 역이 상운도에 소속되기도 했는데, 양양의 연창역·오색역, 통천의 조진역·거풍역이 여기에 해당한다. 한편 『관동지』「간성군지」에 따르면 오색역은 간성의 원암역(元岩驛)으로 이속되었다.
상운도는 다음 <표2>에서 보는 바와 같이 『경국대전』 체제에서는 16개 속역으로 편성되었고, 그 뒤 『여지도서』가 편찬된 영조 연간에는 16개 속역, 『관동지』가 편찬된 순조 무렵에는 16개 속역, 『대동지지』가 편찬된 철종에서 고종 연간에는 16개 속역으로 구성되었다. 이후 1896년(건양 1) 1월에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철폐되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대동지지(大東地志)』
- 『해동지도(海東地圖)』
- 『관동읍지(關東邑誌)』
- 『관동지(關東誌)』
- 조병로, 『한국근세역제사연구』, 국학자료원, 2005.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