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파역(明波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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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강원도 지역의 역도 중 하나인 상운도에 속한 역.

개설

명파역(明波驛)은 조선 건국 후 전국적인 역도-역로 조직을 갖추는 과정에서 강원도의 역도(驛道)인 대창도(大昌道)에 소속되었다. 그 뒤 세조대에는 상운도(祥雲道)의 속역으로 편제되었다. 이후 조선시대 후기까지 존속하다가, 갑오개혁 때 폐지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조선 건국 후 시대에는 건국 직후부터 수도인 한양을 중심으로 기존의 역로를 개편하였는데, 명파역은 그 과정에서 강원도 간성 지역에 설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세종 연간에는 강원도 지역에 대창도·보안도(保安道)·평릉도(平陵道) 등 3개의 역도가 편성되어 있었는데, 명파역은 그 중 대창도의 속역으로 역승(驛丞)의 지휘를 받았다.

조직 및 역할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당시 명파역에는 역리(驛吏) 44명, 역노(驛奴) 4명과 대마(大馬) 2필, 복마(卜馬) 4필 등 총 6필의 역마가 배속되어 있었다.

변천

1457년(세조 3)의 역승 폐지 조치로 찰방의 순시 범위가 넓어지면서 각 역도에 소속된 역의 수가 많고 역 사이의 거리가 멀어 역로가 쇠퇴하는 등의 각종 폐단이 발생하자, 1462년(세조 8)에 대대적으로 역로를 개편하였다. 그 과정에서 대창도의 일부 속역을 중심으로 상운도가 신설되었는데, 이때 명파역은 상운도의 속역으로 편입되어 상운도 역승의 통제를 받게 되었다(『세조실록』 8년 8월 5일). 이후 조선시대 후기까지 상운도의 속역으로 존속하였다. 성종대 반포된 『경국대전』의 역도 체제 하에서도 명파역은 상운도 역승의 통제를 받았다. 이후 1535년(중종 30) 역승을 폐지하고 찰방을 파견하는 조치가 내려지면서(『중종실록』 30년 6월 1일) 이후 상운도 찰방의 통제를 받았는데, 이는 조선말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고종대 편찬된 『대전회통』 「이전」 외관직 강원도 조의 내용에서도 같은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중종 이후 상운도 찰방의 통제에 놓였던 명파역은 1896년(고종 33) 1월에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폐지되었다.

참고문헌

  •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조병로, 『한국근세 역제사연구』, 국학자료원,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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