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性理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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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송대에 공자와 맹자의 유교 사상을 성리(性理)·의리(義理)·이기(理氣) 등의 형이상학적 이론 체계로 재해석한 유교철학 사상. 한국은 고려말 원나라로부터 수입하였다.

개설

성리학(性理學)은 주자학(朱子學)·정주학(程朱學)·이학(理學)·도학(道學)·신유학(新儒學)·송학(宋學) 등으로 통용되는데, 중국 송나라 때 주희(朱熹)가 주돈이(周敦頤)·장재(張載)·정호(程顥)·정이(程頤)의 사상을 집대성하여 성리학의 이론 체계를 완성하였다.

성리학은 공자와 맹자를 도통(道統)으로 삼고서 가족을 중심으로 하는 혈연 공동체와 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 공동체의 윤리 규범을 제시하였다. 당시 유학자들은 은둔의 경향을 보이는 도가나 세속을 벗어난 불교가 가정과 사회의 윤리 기강을 무너뜨리는 것으로 간주하여, 이를 비판하면서 자신들의 성리학을 참된 학문으로 정당화하였다. 그리고 도가와 불교의 사상을 이단사설(異端邪說)로 배척하며 사회의 중심 사상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성리학은 학문 체계상 이(理)를 강조하는 주희의 이학(理學)과 마음[心]을 강조하는 육구연(陸九淵)·왕수인(王守仁)의 심학(心學)으로 대별할 수 있지만, 조선시대의 성리학은 정주(程朱) 계열의 성리학이 정통의 자리를 차지하여 크게 발달하였으며 육왕(陸王) 계열의 심학은 형세가 미미하였다.

내용 및 특징

성리학은 이기(理氣)의 개념을 중심으로 우주와 인간의 생성과 구조를 해명하며 사회에서의 인간의 참된 도리에 관하여 깊이 사색함으로써 우주와 인간, 보편과 특수를 일관하는 방대하고 심오한 학문 체계를 구축하였다. 이를 대략 이기론과 심성론으로 개괄하면 다음과 같다.

1. 이기론(理氣論)

세계의 모든 존재를 이와 기의 관계로 구성한 철학 체계이다. 이는 우주 만물의 존재 원리를, 기는 우주 만물을 구성하는 질료적 성격의 것을 지칭한다. 그러므로 이는 형태와 작위가 없는 형이상의 존재요, 기는 형태와 작위가 있는 형이하의 존재이다. 비록 이와 기가 이러한 개념적 차이를 갖지만, 추상적 원리는 구체적 현상을 떠나 존재할 수 없고 구체적 현상은 추상적 원리를 떠나 설명될 수 없듯, 세계는 이와 기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빼놓는다면 설명될 수 없다.

이것이 이기 관계에서의 불상리(不相離)와 불상잡(不相雜)이다. 곧 불상잡은 이와 기의 서로 다른 개념적 특징으로부터 양자를 분별하여 서로 다른 것으로 규정하였다면, 불상리는 현상적 실재에서 이와 기가 함께 존재하는 특징으로부터 양자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동시적인 하나로 정의한 것이다.

이 세계의 존재 근거인 ‘이’는 우주 자연에서는 만물을 화생(化生)하는 원리이지만, 사람에게는 모든 선(善)의 근원으로서 도덕 행위를 가능케 하는 선천적 근거가 된다. 반면 이러한 도덕 법칙을 구체적으로 실현시키는 것은 기에 있는데, ‘기’는 청탁(淸濁)의 차이가 있어서 도덕 행위의 구현에 관계한다. 이것이 유가 심성론의 핵심 문제가 된다.

2. 심성론(心性論)

이기론에 근거하여 인간의 선악의 문제를 해명하고자 하였다. ‘이’는 인간에게 성(性)이 되며, ‘기’는 육체가 되는 것으로 설명한다. 이는 순선한 도덕적 근거로서 선하며, 기는 청탁과 편전(偏全)이 있어서 인간은 지(智)·우(愚)와 현(賢)·불초(不肖)의 차이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성리학적 입장에서는 육체적 제약이 있다고 하여 애초의 완전한 본성이 소멸한 것으로 보지 않는 까닭에 도덕적 수양을 통하여 선한 본성을 온전히 발현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문제들은 도심(道心)과 인심(人心), 본연지성(本然之性)과 기질지성(氣質之性), 사단칠정(四端七情) 등의 개념에 의하여 해명되는데 조선에서 이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가 전개되어 조선 성리학의 특징을 이루게 된다.

변천

고려말에 원나라로부터 들여온 성리학은 불교의 폐단을 비판하고 성리학적 명분 의식에 기초하여 유교를 숭상할 것을 주장하였으며, 조선의 건국과 국가 통치 이념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함으로써 관학의 위치에 오르며 조선시대 사상의 주류로 부상하였다.

조선시대 성리학의 특징은 조선의 건국을 주도한 정도전(鄭道傳)·권근(權近)보다 조선의 건국에 반대한 정몽주(鄭夢周)·길재(吉再)를 잇는 의리학의 학풍에 있다. 의리학의 학통은 김숙자(金叔滋)·김종직(金宗直)·김굉필(金宏弼)·조광조(趙光祖) 등으로 이어지며 사림파 성리학자에게 계승되었다.

의리와 대의(大義)로 대변되는 사림파 성리학자들은 무오사화·갑자사화·기묘사화·을사사화 등 4대 사화를 겪으면서도 성리학의 의리 정신을 실천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 그들의 의리 정신은 확고부동한 하나의 학통을 형성하였고, 조선 성리학이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토대가 되었다. 그리고 대한제국말 국난을 맞아서는 척사위정(斥邪衛正) 사상으로 발양되고, 또 국권 회복을 위한 의병 정신의 원동력으로 작용하였다. 무오사화로부터 시작된 일련의 사화는 조선 사회의 개혁을 늦추는 원인으로 작용하였지만, 또한 사림들로 하여금 더욱 깊이 성리학을 연구하게 하는 계기가 되어 조선 성리학의 독자적 사상 체계를 형성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성리학의 전개에서 최초의 성리학적 학술 논변은 이언적(李彦迪)과 조한보(曺漢輔) 사이에 있었던 ‘무극태극(無極太極)’ 논변이다. 이언적은 태극이 곧 이(理)임을 밝혀 주리적인 학설을 제시함으로써 조선 성리학의 주리적 이론 체계의 선구를 이루었다. 반면 이러한 경향과 달리 독자적인 태도를 견지한 학자도 있었다. 김시습(金時習)은 일생을 방랑과 기행으로 점철하였는데 태극의 실체를 음양의 기(氣)로 규정하여 주기적인 이론을 전개하였으며, 서경덕(徐敬德)은 철저히 기를 중심으로 한 사상 체계를 형성하여 시공간적으로 무한하며 형체가 없는 기의 상태를 태허(太虛)로 규정하고 인간을 포함한 천지 만물이 모두 이 태허의 동정(動靜)에 의하여 생성된다고 보아 기를 만물 생성의 근원으로 놓았다.

그러나 조선 성리학이 본격적으로 체계화되고 개화하기 시작한 때는 16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이다. 이황(李滉)과 이이(李珥)는 한국 성리학을 대표하는 양대 산맥으로 이들은 각각 기대승(奇大升)·성혼(成渾) 등과 함께 사단과 칠정, 인심과 도심에 관하여 정밀한 논변을 전개하였다.

이황의 사상적 기조는 주자학을 계승하는 것이었지만, 도덕론과 심성론의 방면에 중점을 두는 특징이 있다. 이황은 이와 기를 엄격히 구별하고 그 혼동을 경계하였으며 항상 이의 우위성을 강조하였다. 그리하여 사단과 칠정에 관하여서도 이의 능동성을 인정하는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주장하고, 이러한 인식을 근저로 하는 도덕 실천론을 구상하였다.

곧 그에게 이와 기는 존재론적인 원리라기보다 도덕적 원리였으며, 그로 인하여 양자를 선악과 귀천의 관계로 파악하는 경향을 띠고 있었다. 이러한 경향은 자기 수양의 내적 체험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이황의 사상은 이기론보다 수양론으로서의 거경궁리(居敬窮理)에 주안점을 두는 사상적 특징을 나타내었다. 그 때문에 주희의 이기론과 상충되는 부분이 있었다.

이이는 이러한 이황의 이론을 비판함으로써 자신의 사상을 전개하였다. 이의 무위성을 철저히 강조하여 사칠론에서 사단과 칠정이 모두 기가 발한 것이라는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로 집약하였으며, 나아가 ‘이와 기는 하나이면서 둘이요 둘이면서 하나’라는 ‘이기지묘(理氣之妙)’의 관계로 해석하여 이와 기를 분리하여 보는 관점을 배척하고 양자를 동시적 상관관계로 보고자 하였다. 또한 기는 유한하다는 점과 이는 시공적으로 제약이 없다는 성격으로부터 이기의 불상리와 불상잡의 관계를 ‘이통기국설(理通氣局說)’로 이론화하여 보편과 특수를 일관되게 해명하고자 하였다.

16세기 말과 17세기 초에 걸쳐 일어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조선의 국가 체제를 심각한 위기 상황으로 몰아갔다. 이는 이기·심성과 더불어 예학(禮學)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성리학자들은 예학을 연구하여 각각의 상황에 합당한 인간의 행위 규범을 제정·준수하고자 하였다. 예의 준수는 성리학의 의리 정신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뿐 아니라 군자와 소인의 기준이 되기도 하였다. 천리(天理)의 절문(節文), 인사(人事)의 의칙(儀則)으로서의 성리학적 예 관념은 예학을 통하여 피폐해진 사회 질서를 안정시키고 일상사의 구체적인 생활양식을 규제하는 성리학적 행위 규범으로 작용하였다.

예를 통한 인간의 사회적 관계를 규범화하고 이를 실천하려는 노력은 구체적 상황에 맞는 예의 형식을 둘러싼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예송 논쟁의 빌미가 되어 변화된 사회의 새로운 지도 이념이나 사회 개혁의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기도 하였다. 17세기 후반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일부 사림은 권위화되고 형식화된 당시의 주자학을 비판하고 현실적 공리 의식과 실증적 정신을 공통된 토대로 하여 새로운 사조인 실학(實學)을 주창하였다.

유형원(柳馨遠)과 이익(李瀷)으로 대표되는 일련의 실학자들은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입장에서 주자학을 비판하면서 발전적 계승을 도모하였으며, 윤휴(尹鑴)와 박세당(朴世堂) 같은 이들은 주자학적 권위에서 탈출하여 고주(古注)에 의한 고대의 유학 연구 및 노장 사상에 대한 연구 등 자유로운 학풍을 조성하려 하였다. 이러한 실학사상의 완성은 홍대용(洪大容), 박지원(朴趾源), 박제가(朴齊家) 등의 걸출한 인물들을 통하여 완성되었다. 이들은 ‘이용후생학파(利用厚生學派)’ 또는 ‘북학파(北學派)’로 불리는데, 조선 주자학의 중화 의식을 극복하고 연행(燕行)을 통하여 접한 서양의 신기술을 적극 도입하여 농(農)·공(工)·상(商)의 균형 있는 발전과 국력의 증진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반면 성리학 내부에서는 사회 변동과 국제 질서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이념과 당면한 예학적 질서를 재편하는 데 필요한 이론적 근거를 필요로 하였다. 이에 주자학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천명(天命)과 성(性)의 내용인 오상(五常) 간의 정합성에 관한 검토가 시도되어 오륜적 질서의 당위성을 역설하게 되었다.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으로 불리는 ‘호락논쟁(湖洛論爭)’은 이러한 과정의 산물이다. 곧 오륜적 질서의 당위성을 우주적 질서와 인간의 내면에서 확보하고자 하였는데, 동론(同論)은 천명과 오상의 동일성을 통하여 오상으로서의 인성의 보편성을 강조한 반면, 이론(異論)은 천명과 오상은 의미하는 차원이 다름을 강조하여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은 인간만의 고유한 것으로 주장하여 논란이 벌어졌다. 호락논쟁은 박세채(朴世采)와 김창협(金昌協)의 논변에서 발단하였지만, 실상은 권상하(權尙夏)의 문하인 한원진(韓元震)과 이간(李柬)에 의하여 본격적으로 논의되었고 이후 이간을 지지하는 경기 지역의 낙파(洛派)와 한원진을 지지하는 호서 지역의 호파(湖派)로 나뉘어 확산되었다.

조선말기에 이르러 서양 열강과 일본 등 제국주의 세력의 조선 침탈 위협이 증가하고 서양 종교의 전파로 불거진 가치관의 혼란은 다시 주자학적 이론을 발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이항로(李恒老), 기정진(奇正鎭), 이진상(李震相) 등은 모두 주리론 내지 이일원론을 전개한 정통 주자학자들이었다.

이들은 변화하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기존의 규범과 가치를 묵수(墨守)하려는 보수적 성향을 견지하였다고 비판받고 있으나, 감각적 세계의 근저에 자리한 불변적 원리로서의 이를 추구하며, 강한 이념적 가치를 바탕으로 민족의 주체 의식을 발양하고 애국심을 고취하여 제국주의에 대응하는 척사위정론의 선하를 이루었다. 그리하여 1876년(고종 13) 개항 때까지 조선 성리학은 쇄국양이(鎖國洋夷)로 구체화된 위정척사의 의리 사상으로 전개되었으며, 을미사변 이후에는 국권 회복을 위한 의병 운동으로 면면히 이어지게 되었다.

의의

조선 성리학은 단순한 철학적 이론 체계에 머물지 않고 인간의 삶에서 의리의 실천을 중시하여 의리학의 학풍을 이루었다. 한편 이를 가능하게 하는 근거인 ‘마음’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진행되어 ‘사단칠정’, ‘인심도심’, ‘인물성동이’ 등 독특한 사상적 특징을 완성하여 인간과 우주 자연에 대한 높은 철학적 경지와 최고의 사색을 보여 주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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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