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도성(計都星)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일식(日蝕)과 월식(月蝕)을 일으킨다고 여겨진 천구 상의 가상 행성.

개설

중국 전통 천문학에서는 하늘에 움직이는 해와 달, 목성·화성·토성·금성·수성 등 오행성을 합쳐 칠요(七曜)라 일컬으며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였다. 해가 일요(日曜), 달이 월요(月曜)이며, 오행성이 각각 목요(木曜)·화요(火曜)·토요(土曜)·금요(金曜)·수요(水曜)에 해당한다. 여기에 수나라와 당나라 때 불교 천문학이 전래되면서 새롭게 네 개의 가상 천체가 도입되었는데, 이를 칠요 이외의 나머지 네 행성이란 뜻에서 사요(四曜) 또는 사여(四餘)라고 하였다. 이들 사여는 실제로는 관측되지 않으므로 ‘어두운 네 별’이란 뜻에서 사암성(四暗星)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사암성은 나후성(羅睺星), 계도성(計都星), 자기성(紫氣星) 및 월패성(月孛星)을 이른다.

내용 및 특징

불교 천문학을 통해 중국에 전래된 사여는 주로 달의 궤도인 백도(白道)와 관련된 것으로 인식되었으나, 실재하는 별은 아니다. 그중 특히 나후와 계도는 합하여 나계(羅計)라고도 하고, 보이지 않는 별이라는 의미에서 이은성(二隱星)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나후와 계도는 일식과 월식이 일어나는 천구 상의 가상 지점을 가리키는데, 나후는 황도(黃道)와 백도의 두 교점 중에서 승교점(昇交點) 곧 중교점(中交點)에 해당하고, 계도는 강교점(降交點)인 정교점(正交點)에 해당한다. 조선 세종대 편찬된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에는 나계의 항성주기가 18년 7개월이며 역행한다고 되어 있는데, 이는 나계가 황도와 백도의 교점임을 말해주는 증거가 된다. 황도와 백도의 교점이 18.6년을 주기로 황도를 역행하기 때문이다.

나후와 계도는 원래 중국 천문학에는 없는 개념이었지만, 불전(佛典)을 통해 유입된 뒤 점점 중시되어 당나라 이후 편찬된 역서(曆書)에 빠지지 않고 수록되는 중요한 천문학 요소가 되었다. 당나라 현종 연간에 대연력(大衍曆)을 만든 천문학자이자 승려인 일행(一行)은 『범천화라구요(梵天火羅九曜)』에서, 나후와 계도를 일식과 월식을 일으키는 천체라는 의미에서 ‘나후식신성(羅睺蝕神星)’과 ‘계도식신성(計都蝕神星)’이라 불렀다. 그뿐 아니라 금구타(金俱吒)의 『칠요양재법(七曜攘災法)』에서는 일월식의 머리와 꼬리로 구분하여 나후는 ‘식신두(蝕神頭)’, 계도는 ‘식신미(蝕神尾)’라 부르기도 하였다. 또한 나후는 ‘누런 깃발’이란 뜻의 황번(黃幡)으로, 계도는 ‘식신의 꼬리’라는 의미에서 표미(豹尾)로도 불렸는데, 고대에는 일월식을 불길한 일로 여겼으므로 이 둘은 무시무시한 인물로 묘사되었다. 한편 나후가 일월식을 일으키는 ‘교회식신성(交會蝕神星)’이고, 계도는 샅별로 알려진 혜성(彗星)으로 보는 경우도 있었다.

나후와 계도는 일월(日月) 오성(五星)의 칠요(七曜)와 더불어 구요(九曜)라 불리기도 하였는데, 불교에서는 이들이 다른 별들을 잡아먹는다는 뜻에서 구집(九執)이라 불렀다. 당나라 현종 때 인도의 천문학자 고타마 싯다르타( [瞿曇悉達], Gautama Siddhanta)가 번역한 『구집력(九執曆)』에는 매일을 칠요에 배당하는 칠요주기법이 실려 있으며, 8세기 초 의정(義淨)이 번역한 『불설대공작주왕경(佛議大孔崔晩王經)』에도 칠요의 순서가 오늘날과 같게 기록되어 있다.

구요에다, 역시 가상의 천체인 자기성(紫氣星)과 월패성(月孛星)을 합하면 십일요(十一曜)가 된다. 자기성은 ‘紫炁星’이라고도 하였는데, 자기와 월패를 합쳐 기패(炁孛)라 부르기도 하였다. 자기와 월패는 황도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백도 상의 두 지점 중 황도의 북쪽과 남쪽 지점을 각각 가리키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칠정산내편』에는 자기(紫氣)의 항성주기가 28년으로 제시되어 있는데, 이로 보아 황도를 따라서 28숙(宿)의 각 숙(宿)을 평균 1년씩 걸려 운행하는 가상의 천체를 뜻하는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청나라 초기에 요한 아담 샬 폰벨([湯若望], Johann Adam Schall von Bell, J. A.)은 시헌력(時憲曆)을 편찬하면서 사여 중에서 자기성만을 삭제하였다. 자기가 천문학적인 의의가 전혀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인지 사여 중 자기를 제외한 나머지 셋은 모두 백도 상에 있는 것으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자기와 월패도 나계와 마찬가지로 인도 천문학에서 유래되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불전에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고 그 대신 도교 경전에 중요하게 포함되어 있다. 이 때문에 월패성과 자기성을 도교적인 맥락의 천체로 보기도 한다. 나후와 계도는 산스크리트어의 라후(Rahu)와 케두(Ketu)를 음역한 것이지만, 자기와 월패는 번역어가 아닌 듯한 이유도 그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인지 월패는 혜성(彗星)으로 해석되기도 하였다. 결국 불교의 천문 사상에서는 구요가 으뜸으로 자리하는 데 비해, 도교의 천문 사상에서는 구요보다 십일대요(十一大曜)를 내세우는 경향이 짙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려 건국 초부터 구요당(九曜堂)을 건립할 정도로 구요를 매우 중시하였다. 그뿐 아니라 구요에 자기성과 월패성을 합친 십일요(十一曜) 역시 중시하였는데, 1288년(충렬왕 14) 12월에 ‘구요당에 행차하여 십일요를 초제하였다’는 기록은 이 점을 잘 보여준다. 십일요에 대한 기록은 고려 의종 대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이들을 모두 포괄하는 성수 판테온의 도상 이미지가 고려 전본(傳本)으로 남아 있는 ‘치성광여래왕림도(熾盛光如來往臨圖)’에 그대로 담겨 있어 그 가치가 매우 높은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소격전(昭格殿) 관리가, 왕의 즉위에 해당한 별은 태백성(太白星)이니 직수전(直宿殿)에서 초제(醮祭)를 행하고, 상왕의 즉위에 해당한 별은 계도성(計都星)이니 십일요전(十一曜殿)에서 초제를 행하기를 청하자 왕이 그리하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세종실록』 즉위년 9월 18일) 이는 오행성에 초제를 지내는 곳은 직수전(直宿殿)이고, 계도성에 초제를 행하는 곳은 십일요전(十一曜殿)으로, 서로 분리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십일요전은 고려시대 이래로 구요당의 전통이 이어진 곳으로 추정된다. 또 십일요 각각이 왕력(王曆)을 하나씩 돌아가면서 주관한다는 사상도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평양성 안에 9개의 묘(廟)와 9개의 못〔池〕이 있으니, 9묘(廟)는 곧 9요(九曜)가 날아 들어온 곳이며, 그 못 옆에 첨성대(瞻星臺)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세종실록』지리지 경도 한성부]. 고려시대 내내 구요 사상이 팽배하였던 까닭에 구묘(九廟)를 구요(九曜)에 비유하였고, 그 옆에 첨성대가 있다는 것도 이곳이 별을 관측하던 성스러운 곳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참고문헌

  • 『사기(史記)』
  • 『한서(漢書)』
  • 『여씨춘추(呂氏春秋)』
  • 『회남자(淮南子)』
  • 『삼국사기(三國史記)』
  • 『천문류초(天文類抄)』
  • 김일권, 『동양천문사상 하늘의 역사』, 예문서원, 2007.
  • 김일권, 『우리 역사의 하늘과 별자리』, 고즈윈, 2008.
  • 김일권, 『고구려 별자리와 신화』, 사계절,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