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계(羅計)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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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나계 |
한글표제 | 나계 |
한자표제 | 羅計 |
동의어 | 이은성(二隱星), 이은요(二隱曜) |
관련어 | 구요(九曜), 구집(九執), 사여(四餘), 지미(地尾), 천수(天首) |
분야 | 문화/과학/천문 |
유형 | 개념용어 |
지역 | 한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이은희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나계(羅計) |
황도(黃道)와 백도(白道)의 두 교점인 승교점(昇交點)과 강교점(降交點)을 이르는 말.
개설
나후(羅睺)와 계도(計都)를 합쳐서 부르는 말로, 나후와 계도는 산스크리트어의 라후(Rahu)와 케두(Ketu)를 음역한 것이다. 원래 중국 역법에서는 다루지 않았으나, 당(唐)나라 때 황제의 명에 따라 인도의 천문서를 번역한 『구집력(九執曆)』이 편찬되면서 정식으로 중국에 소개되었다. 인도 천문학에서는 일월오성(日月五星)의 칠요(七曜) 이외에 나후와 계도라는 보이지 않는 두 별[二隱曜]이 있다고 생각하여, 이를 합해 구요(九曜) 또는 구집(九執)이라 하였다. 중국 명(明)나라 때의 『고금율력고(古今律曆考)』에 따르면, 당나라 헌종 때인 806년 조사천(曺士薦)에 의해 나후와 계도의 계산표가 수록된 『입성력(立成曆)』이 만들어졌고, 주(周)나라 때의 왕박(王朴)이 『흠천력(欽天曆)』에서 나후와 계도를 식두신(蝕頭神)과 식미신(蝕尾神)으로 정함에 따라 민간에서 사용하던 소력(小曆)에도 그대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일식과 월식이 황도와 백도의 교점인 나후와 계도 근처에서 일어나므로, 인도에서는 이 두 지점에 식(食)을 일으키는 신(神)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즉 천수(天首)라고도 불리던 나후에 식두신이, 지미(地尾)라고도 불리던 계도에는 식미신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내용 및 특징
나후와 계도는 실제로 존재하는 천체가 아니라, 천구(天球)의 황도에서 주기 변화를 보이는 특별한 위치를 별이 운행하는 것으로 본 가상 천체이다. 나후는 달이 황도 남쪽에서 북쪽으로 운행할 때 황도와 만나는 승교점이고, 계도는 이와 반대로 달이 황도 북쪽에서 남쪽으로 운행할 때 만나는 강교점으로, 이는 역법에서 각각 중교점(中交点)과 정교점(正校点)에 해당한다.
그런데 인도 천문학의 개념인 나후와 계도를 받아들이면서 의미의 혼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구집력』에 따르면 나후와 계도가 각각 승교점과 강교점이지만, 송(宋)나라 때 심괄(沈括)이 편찬한 『몽계필담(蒙溪筆談)』에서는 나후와 계도를 반대로 강교점과 승교점으로 기록하고 있다. 『칠정산외편(七政算外篇)』에서도『몽계필담』과 마찬가지로 나후를 강교점으로, 계도를 승교점으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수시력(授時曆)』과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에서는『구집력』의 의미대로 나후와 계도를 각각 승교점과 강교점으로 보고 있으며, 후대의 역법인 청(淸)나라의 『시헌력(時憲曆)』에서도 이를 따르고 있다.
나후와 계도의 위치는 천구에서 약 18.6년의 주기로 역행(逆行) 즉 서쪽으로 이동하는데, 이는 곧 황도와 백도가 만나는 교점의 주기 변화를 의미한다. 『수시력』과 『칠정산내편』에서는 이들이 황도를 일주천(日周天)하는데 걸리는 날수 6,793.4432일과 하루 동안 황도를 운행하는 도수 5.376602분 등의 수치를 계산표에 해당하는 입성(立成)에 수록하였다.
변천
나후와 계도의 이름이 처음으로 보이는 불교 문헌은 중국의 삼국시대인 230년경 오(吳)나라의 축율염(竺律炎)과 지겸(支謙)이 번역한 『마등가경(磨登伽經)』이다. 『마등가경』은 인도의 고대 천문 지식이 수록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천문학 기사 중 각 절기(節氣)에 해당하는 해그림자의 길이를 바탕으로 산출한 관측 지점이 인도가 아니라 사마르칸트(Samarkand) 지방이라는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인도 이외의 천문 지식도 들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 뒤 나후와 계도는 당나라 때인 8세기 무렵에 편찬된 의정(義淨)의 『불설대공작주왕경(佛說大孔雀咒王經)』과 일행(一行)의 『대일경소(大日經疏)』, 그리고 불공(不空)의 『수요경(宿曜經)』과 『다라니경(陀羅尼經)』 등의 불교 경전에 전해졌으며, 불화(佛畵) 속의 그림으로 전승되기도 하였다.
나후와 계도가 중국의 역법에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원(元)나라 때의 『수시력』부터이며, 명나라의 『대통력(大統曆)』과 『칠정산내편』도 이를 이어받아 사용하였다. 『수시력』을 따르는 『칠정산내편』은 나후 및 계도의 운행과 계산을 28수(宿)의 황도수도(黃道宿度)로 나타내었고, 『회회력(回回曆)』을 따르고 있는 『칠정산외편』은 그 행도(行度)를 달의 황경(黃經)과 황위(黃緯)로 나타내었다.
참고문헌
- 『고금율력고(古今律曆考)』
- 유경로·이은성·현정준 역주, 『세종장헌대왕실록』「칠정산내편」,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3.
- 이은희, 『칠정산내편의 연구』, 한국학술정보, 2007.
- 藪內淸 著, 兪景老 譯, 『中國의 天文學』, 전파과학사, 1985.
- K. Y. Chen, C. W. Chan &E. H. Lee, 「Introduction of Si-Yu to China」, 『Frontiers of Oriental Astronomy』, 中國科學技術出版社, 2006.
- 藪內淸, 『隨唐曆法史の硏究』, 臨川書店, 1989.
- E. H. Lee and K. Y. Chen, 「A study of the Motions of Rahu and Ketu」, 『Proceeding of the third international conference on oriental astronomy』, Fukuoka Univ. of Education,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