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經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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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부터 조선시대까지 충훈부(忠勳府)·개성부(開城府) 등에 두었던 종4품 관직.

개설

고려말 충선왕 때 문하부(門下府)에 잠시 설치된 적이 있고, 이후 공민왕 때 각도 관찰사에 소속되거나 도평의사사 부속의 경력사(經歷司) 등에 설치되었다. 조선초에는 고려말 공민왕 때의 제도를 계승하는 한편, 의정부와 승추부·삼군도총제부 등과 지방의 병마절제사영(兵馬節制使營) 등에 경력(經歷)을 두었다. 1404년(태종 4)에는 사간원의 건의로, 중앙의 경력은 4품직인데 비해 지방의 경력은 3품직인 것을 조정하여 모두 4품직으로 개정하였다.

이후 일부 관서에 설치된 경력에 대한 설치와 폐지가 계속되었다. 예컨대 개성부경력은 1466년(세조 12)에 유수(留守)가 혁파되면서 함께 소멸되었다가 1469년(예종 1) 다시 복구되었다. 『경국대전』에서는 충훈부와 의빈부·의금부·개성부·중추부·오위도총부 등의 관서에 경력을 두도록 규정하였다. 의금부의 경우 정원 없이 도사(都事)와 함께 10명으로 규정되었고, 오위도총부는 정원이 4명이고, 충훈부 등 다른 관서는 모두 정원이 1명이었다.

담당 직무

경력은 각 관청에서 주로 실무를 담당하며 문서를 관리하고 상관에게 결재를 올리는 일을 담당하였다. 예를 들어 의금부 경력은 지방에 있는 죄인의 체포를 담당하였다(『예종실록』 즉위년 10월 29일). 충훈부 경력은 해당 관서·관원의 녹봉과 관련된 근무 일수[仕日]를 계산하는 등의 실무를 담당하였고(『중종실록』 19년 6월 23일), 양전경차관과 같은 임시직을 띠고 지방에 파견되기도 하였다(『성종실록』 6년 8월 5일).

지방 소속 경력의 경우, 관찰사를 대신해서 지방의 실정을 왕에게 보고하거나(『태종실록』 11년 6월 17일), 진상품의 진봉을 담당하기도 하였다(『태종실록』 14년 윤9월 9일). 도성 수축 때에는 지방의 군사들을 이끌고 서울로 오기도 하였다(『세종실록』 3년 12월 10일). 조선초에는 한때 경력직을 가지고 간관(諫官)을 겸하기도 했는데, 태조대 윤사수(尹思修)는 경력사 경력으로 우간의(右諫議)를 겸하였다(『태조실록』 7년 3월 7일). 그러나 경력의 간관 겸직은 1399년(정종 1)에 문하부의 상서를 계기로 혁파되었다.

변천

지방 각도에 설치된 경력의 경우 1466년에 혁파되었다. 충훈부 경력은 명종대에 혁파되었고, 의금부나 의빈부의 경력은 영조대 편찬된 『속대전』에서 혁파되었다. 『속대전』 단계에 이르면 강화부에 새로 경력이 신설되었으며, 오위도총부의 경우 정원이 4명에서 6명으로 늘어났다.

개성부경력은 개성부에 있는 제릉(齊陵)이나 후릉(厚陵)·목청전(穆淸殿)의 제사 때 집사와 관리영(管理營)의 종사관을 겸하였다. 강화부경력은 진무영(鎭撫營) 종사관을 겸하였다. 한편 광주부(廣州府)의 경우도 1623년(인조 1)에 경력을 두었다가 1630년에 다시 혁파하는 등 변화가 있었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속대전(續大典)』
  • 『대전통편(大典通編)』
  • 『대전회통(大典會通)』
  • 『중경지(中京誌)』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인문연구실 편, 『(역주)경국대전: 주석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7.
  • 장병인, 「조선초기의 관찰사」, 『한국사론』 4,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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