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반에서 세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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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에서 세속으로

혜안 서경수(徐景洙)(1925~1986) 교수의 외모를 상징하는 표현이다. 그의 서거 30주년을 맞아 『서경수 저작집 Ⅲ권-열반에서 세속으로』가 출간됐다. 이와 함께 ‘서경수 열반 30주기 추모제’가 15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돈화문로 한국불교연구원 구도회(회장 홍명자) 법당에서 봉행된다.

1986년 10월 그의 타계 이후 한국불교연구원 구도회 회원과 그의 제자 그리고 그를 평소 잘 알고 좋아했던 사람들은 ‘서사모(서경수 사랑 모임)’를 만들어 정기 모임을 열면서 추념해왔다. 이들은 서경수 교수의 탁월한 학문과 예리한 사상은 오늘날에 더욱 가치를 발할 것이라는 데에 의견을 모으고 2009년 <서경수 저작집>을 구상했다.

이에 따라 서거 25주년을 앞둔 2010년 12월 『서경수 저작집 Ⅰ․Ⅱ권』이 출판됐다. 불교와 인도철학에 관한 백과사전에 가까울 정도로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 ‘살아있는 도서관’이라 불린 서경수 선생의 진면목을 실감할 수 있는 『불교를 젊게 하는 길』, 『기상의 질문과 천외의 답변』이 바로 그것이다.

Ⅲ권에는 앞쪽에 서경수 교수의 제자 정병조(전 동국대 부총장, 금강대 총장)의 ‘발간사’, 이민용(전 불교연구원 원장)의 ‘서경수 평전’에 이어 서 교수의 저서 『법구경-히말라야의 지혜』(1부)와 『인도불교사』(2부)가 전재됐다. 3부 ‘불교사상사’에는 ‘원시불교사상’ 등 서경수 교수의 학술논문과 신문 및 잡지 기고문을, 4부 ‘불교적 인생’에는 『불교신문』에서 주최한 좌담회 등 서경수 교수가 주관한 여러 좌담 기사를 각각 실었다.


5부 ‘서경수 선생을 그리며’에는 이민용, 황용식, 김인수 등 제자들의 논평 및 추모의 글, 그밖에 서경수 교수와 학문적 삶을 함께 했던 고(故) 이기영 박사(전 동국대 교수)의 서거 추도의 글과 서경수 교수의 저서『 불교적 인생』 서문, 동국대 인도철학과의 동료 교수였던 박성배 박사(미국 뉴욕주립대)의 추도문이 함께 수록됐다. 또 『서경수 저작집』의 발간 과정과 의미에 대해 신대현 교수(능인대학원 대학교)가 ‘발문’에서 자세히 밝히고 있다.

최고의 불교 지성답게 서 교수의 글은 친절하다. 대부분의 기고문들은 마치 여행 에세이처럼 편안하고 불교와 사상적인 것에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보다 불교를 쉽게 이해하게 하기 위한 그의 배려가 묻어있다. 일반인들이 알기 어려운 산스크리트, 한문 경전 용어들을 쉽게 풀어쓰고 가급적 글속에서 모든 설명이 다 되어 읽는 이들이 불교에 보다 가깝게 다가 갈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한마디로 논문과 에세이의 구분이 없는 그의 글은 ‘에세이적 논문’ 또는 ‘논문적 에세이’라고 불린다.

소재 역시 묵직한 종교적인 얘기만 다루지 않았다. 삶을 통찰하고 되돌아보는 방법이나 사유로 세상을 뚫고 나가는 방법을 일러주면서 개인과 불교, 그리고 인도철학과 불교의 교감 접경을 넓혀준다. 여기에 실린 글들은 사람들이 모른다고 해서 당장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들이다. 그러나 만약에 알게 되면 사람들 머릿속에 변화의 작은 불씨를 일으킬 것들, 그런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무엇보다 서경수 교수의 학문은 그를 알았던 사람들의 개인적 추억의 범위를 벗어나 오늘날 불교를 생각하는 우리 모두가 경청해야 할 이야기이고, 그의 존재는 우리현대불교사의 중요한 한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비록 그를 몰랐던 사람이라도 이 『서경수 저작집』을 읽고 나면 이 ‘한 평범한 불교학자’가 사실은 가장 비범한 인물이었음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이 바로 그를 아는 사람들이 그가 세상을 떠나고 30년 되도록 잊지 못하고, 추억을 역사로 승화시키고자 이 저작집을 펴낸 까닭이다.


한편 이번 책을 펴낸 효림출판사는 1966년에 나온 서 교수의 에세이집 『세속의 길 열반의 길』도 함께 출간했다.


서경수(徐景洙) 교수.

본관은 이천서씨 양경공파

가족 관계

1세 시조 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阿干大夫). 부총리)의 후손

2세 서필(徐弼 내의령(內議令). 종 1품. 국무총리)

3세 서희(徐熙 내사령(內史令). 종 1품. 국무총리)

4세 서유위(徐惟偉 장야서령(掌冶署令).정 3품.장관)

5세 서면(徐冕 주부(注簿).정 4품.차관보)

6세 서린(徐嶙 판대부사(判大府事).정 2품.부총리)

7세 서찬(徐瓚 장령(掌令). 정 4품. 차관보)

8세 서인(徐諲 교수(敎授).도승지(都承旨).정 3품.장관.대학자)

9세 서욱(徐勖 도승지(都承旨).정 3품. 장관)

10세 서효손(徐孝孫 판사재사(判司宰事).종 2품.부총리)

11세 서유(徐愈 예조판서(禮曹判書).이성군(利城君). 정2품. 장관.양경공파(良敬公派))

12세 서경흥(徐敬興. 목사(牧使). 정3품.당상관.차관)

13세 서미수(徐眉壽.사직(司直). 정5품.국장)

14세 서석손(徐碩孫. 모의당공(慕義堂公)

15세 서세호(徐世豪. 연순교위(衛尉)

16세 서희안(徐希顔. 사용공(司勇公)

17세 서득천(徐得天. 의병장(義兵將).부사용(副司勇) · 창의순절(副司勇 · 倡義殉節)

18세 서사도(徐思道. 의병장(義兵將).율곡 이이(栗谷 李珥) 문인.임진란 순절(壬辰亂殉節 )

서사근(徐思近 통정대부 판결사(通政大夫判決事)·.의병장(義兵將))

서사원(徐思遠 조선 중기 의병장(義兵將))

서사적(徐思迪) 조선 중기 의병장(義兵將))

19세 서일원(徐一元 .용기위사정(龍驥衛司正).학자(學者)

서종언(徐從彦 이흥군(利興君).오위부총관(五衛副摠官). 종 2품.차관)

서일회(徐一會)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


1925년 함경북도 경성 출신으로 중학교 재학 시 항일운동을 하다 6개월 동안 감옥생활을 했다. 1956년 서울대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에서 불교를 전공했다.

국내 최초로 『인도불교사』를 출간했으며 영어와 산스크리트 실력이 뛰어났던 그는 인도에서 5년 동안 한국의 언어 역사 문화 등을 가르친 인도철학자로 인도 네루대 최초의 한국학 교수이기도 하다. 동서양 종교 비교연구에도 일가견이 있었고, 기독교에서 개종한 경력은 불교와 기독교간의 대화를 시도하게 만들었다.


인도 네루대학을 거쳐 동국대 인도철학과 교수로 활동하던 1970~80년대, 그는 불교학 연구풍토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기독교와 불교비교, 서양철학의 관점에서 본 불교 등의 논문을 발표해 불교학 연구의 지평을 확대한 것이다. 동국대학교 인도철학과 초대 교수, 불교신문사 주필로 알려져 있는 그의 저서로는 불교와 인도에 대해 수필 형식으로 쉽게 풀어 쓴 『세속의 길 열반의 길』, 『길에서 길로』, 『불교적 인생』, 『인도 그 사회와 문화』 등이 있다.


1965년 삼보학회(三寶學會)간사를 맡아 『한국 근대 불교 100년사 자료집』을 편찬했으며, 1974년 이기영 박사와 함께 한국불교연구원을 창설하기도 하는 등 불교연구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불교신문사 주필로 활약하며 대학생들의 불교운동을 이끌기도 했다. 1986년 10월 14일 윤화(輪禍)로 타계했다.

고려시대 권문세족은 이천 서씨,인주 이씨,해주 최씨,남양 홍씨가 4대 문벌귀족이다. 조선시대에는 이천서씨에서 분파한 대구 서씨(大丘徐氏) 서성(徐渻 증 영의정) 후손이 3대 정승(서종태(徐宗泰 영의정),서명균(徐命均 좌의정),서지수(徐志修 영의정)),3대 대제학(서유신(徐有臣 대제학),서영보(徐榮輔 대제학),서기순(徐箕淳 대제학))을 최초로 6대 연속과 서명응(徐命膺 대제학),서호수(徐浩修 직제학), 서유구 (徐有榘 대제학) 3대 대학자를 연속 배출하여 조선에서는 서지약봉(徐之藥峰)이요.홍지모당(洪之慕堂) 으로 유명했고, 연리광김(延李光金)와 더불어 대구 서씨,풍산 홍씨,연안 이씨,광산 김씨가 조선 최고 4대 양반 가문으로 꼽힌다. 숙종때 이런 일화가 전한다. 영의정 서종태(徐宗泰)를 비롯한 서씨 성을 가진 참판급 이상 중신이 30여명 이었다. 어느날 조회를 소집한 숙종이 용상에서 가만히 내려다보니, 오가는 대신들이 대부분 서씨들이라, “마치 어미 쥐가 새끼쥐를 거느리고 다니는 듯 하다!” 라고 말해 주변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숙종의 말씀이었으나, 영의정 서종태(徐宗泰)를 어미쥐로 빗대 그 아래 웅성거리는 서씨대신들의 융성함을 나타내는 기막힌 표현이였다.대구 서씨달성 서씨라고도 부른다.

이천서씨는 통일신라 아간대부 서신일(徐神逸),내의령 서필(徐弼),내사령 서희(徐熙),문하시중 서눌(徐訥) 좌복야 서유걸(徐惟傑),평장사 서정(徐靖),우복야 서균(徐均) 판대부사 서린(徐嶙), 평장사 서공(徐恭) 추밀원사 서순(徐淳) 등 7대가 연속 재상이 되어 고려의 최고 문벌 귀족 가문으로 성장한다.


고려 초기에 나라의 기틀의 튼튼히 한 서필(徐弼)이다. 이어 손자 서희(徐熙)와 증손자 서눌(徐訥) 서유걸(徐惟傑) 서유위(徐惟偉) 서주행(徐周行), 고손자 서정(徐靖) 서존(徐存),서균(徐鈞) 서린(徐璘), 서원(徐元) 서공(徐恭) 서성(徐成) 서순(徐淳),서숭조,서희찬,서능(徐稜),서효손,서신계, 서린(徐鱗),서성윤,서념,서원경,서충,서신,서윤,서후상,서윤현 등이 15대를 이어 재상이 되었다.


대구달성서씨(大丘達城徐氏)(달성 서씨 대구 서씨 계보는 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주행(徐周行 달성군)-서한(徐閈 군기소윤 종3품.차관)-서신(徐愼 이부판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무질(徐無疾 밀직사 종2품.부총리 재상)-서진(徐晉 판도판서 정3품.장관)-서기준(徐奇俊 문하시중찬성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영(徐穎 문하시중찬성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균형(徐鈞衡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 서익진(徐益進 판전객시사 종2품.부총리 재상)-서침(徐沈 조봉대부 정3품.장관) 서의(徐義 호조전서 정3품.장관) 이다


연산 서씨 계보는 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유걸(徐惟傑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존(徐存 병부상서 정3품. 장관)-서청습(徐淸習 판전의시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효리(徐孝理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찬(徐贊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희팔(徐希八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직(徐稷 연성군)-서준영(徐俊英 연성군)- 서보(徐寶 연성군(連城君) 으로 이어진다.

부여 서씨 계보는 온조왕(溫祚王)-근초고왕(近肖古王)-무령왕(武寧王)-의자왕(義慈王)-부여융(扶餘隆)-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유걸(徐惟傑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존(徐存 병부상서 정3품. 장관)-서청습(徐淸習 판전의시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효리(徐孝理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찬(徐贊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희팔(徐希八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춘(徐椿 판내부사사 정2품.부총리 재상) 서박(徐樸 봉례공) 으로 이어진다.

남양당성 서씨(남양 서씨 당성 서씨) 계보는 서간(徐趕 태사.남양군. 종1품. 국무총리 재상)-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유걸(徐惟傑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존(徐存 병부상서 정3품. 장관)-서청습(徐淸習 판전의시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효리(徐孝理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찬(徐贊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희팔(徐希八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적(徐迪남양군)으로 이어진다.

중화 서씨(中華徐氏) 계보는 단군조선 여수기(余守己)-번한조선(番韓朝鮮) 서우여(徐于餘)-고조선(古朝鮮) 소호(少昊), 고도(皋陶), 백익(伯益)의 아들 약목(若木)-서국(徐國)에 30세 서구왕(駒王=徐駒王), 32세 서언왕(徐偃王)-진나라 재상 서복(徐福)-삼국시대(三國時代) 서선(徐宣),서유자(徐孺子; 徐穉) 서서(徐庶), 오(吳) 나라에는 서성(徐盛),부여 동명왕(東明王),백제 온조왕(溫祚王)근초고왕(近肖古王)무령왕(武寧王)-의자왕(義慈王)부여융(扶餘隆),신라 서두라(徐豆羅)- 남송(南宋) 서희(徐煕), 서도(徐道), 서도(徐度), 서숙향(徐叔嚮), 서중융(徐仲融), 서문백(徐文伯), 서사백(徐嗣伯)- 북제(北齊) 서지재(徐之才), 서임경(徐林卿), 서동경(徐同卿)- 원위(元魏) 서건(徐謇), 서웅(徐雄)- 수 나라 서민제(徐敏齊) -.명나라 말기 호족 서수휘(徐壽輝)청나라- 지리학자 서하객(徐震客),대학자 서광계(徐光啓)

서씨일가연합회 [[1]] [[2]]

열반에서 세속으로

혜안 서경수(徐景洙)(1925~1986) 교수의 외모를 상징하는 표현이다. 그의 서거 30주년을 맞아 『서경수 저작집 Ⅲ권-열반에서 세속으로』가 출간됐다. 이와 함께 ‘서경수 열반 30주기 추모제’가 15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돈화문로 한국불교연구원 구도회(회장 홍명자) 법당에서 봉행된다.

효양산 전설문화축제(孝養山 傳說文化祝祭)

장위공 서희(徐熙) 선생을 되새겨 볼 수 있고, 서신일(徐神逸)선생의 은혜 갚은 사슴과 황금송아지 전설이 있는 효양산의 주요 6개소(물명당, 효양정, 금송아지상, 은선사, 서씨(徐氏)시조 서신일(徐神逸)묘, 금광굴)를 탐방하며, 효양산의 청취를 만끽할 수 있다. 서희문화제(徐熙文化祭)로 명칭 변경

이섭대천(利涉大川)

창전동 이천시민회관 구내에 세워져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면서 후백제와 마지막 일전을 치르기 위해 출정길에 올랐다가 장마로 물이 불어난 복하천(福河川)을 건너지 못해 곤경에 빠졌을 때 '서목(徐穆)'이라는 이천 사람의 도움으로 무사히 복하천을 건너 후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다. 그 후 왕건이 서목(徐穆)의 도움에 대한 보답으로 '이섭대천'이라는 고사에서 따다가 이 지역에 ‘이천(利川)’이라는 이름을 내렸다고 한다.

이천의 유래에 관한 이 일화를 기념하기 위해 1989년 11월 이천 지역 토박이 원로들의 모임인 이원회(利元會)가 중심이 되어 이천시민회관 구내에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2단으로 된 방형의 대좌 위에 길고 커다란 자연석 형태의 흑요암을 올려놓았으며 흑요암 중앙에 '利涉大川(이섭대천)'이라는 글씨를 커다랗게 새겨 넣었다.

서씨 시조 서신일 추향대제(徐氏 始祖 徐神逸 秋享大祭)

모든 서씨 시조 서신일(徐神逸) 시제는 (음력) 매년 10월 첫째 토요일 오전 11시에 효양산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 산21(경기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 329)에서 거행된다. 서필 (徐弼)선생,서희 (徐熙)선생 시제는 (음력) 매년 10월 첫째 토요일 오후 2시에 경기 여주시 산북면 후리 166-1에서 거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