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2024-C250
사라진 고택 외성당
이야기
광주광역시 광산구 안청동에는 조선 후기 문인 박광후(朴光後)가 거처하던 고택 외성당(畏省堂)이 있었다. 박광후는 자를 사술(士述), 호를 안촌(安村) 또는 외성당이라 하며, 조선 현종 연간에 성균관에 들어가 송시열에게 “은산과 철벽이 될 인물”이라 칭찬받은 인물이다. 그는 1678년 자택인 외성당에서 42세로 생을 마쳤고, 이후 이 집은 아들 박중회(朴重繪)가 물려받아 거주하였다.
외성당은 1930년대 철거된 뒤 지금은 건물이 남아 있지 않지만, 마당의 은행나무가 그 흔적을 전한다. 이 집과 관련된 기록으로는 기우만이 남긴 「외성당기-기우만」과, 박광후의 후손 박만동의 요청에 따라 최익현이 집필한 「외성당기-최익현」이 있다. 특히 최익현은 당호인 ‘외성(畏省)’의 의미를 빌려, 서양 문물 유입으로 전통이 흔들리던 당대의 사회상을 비판하였다.
스토리 그래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