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인명사전

법인스님(法印, 1930生, 비구니)

biguni
이병두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9월 17일 (화) 18:07 판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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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법인(法印)스님은 동진 출가하여 순천 송광사 말사인 부산 보덕사를 중창했으며, 속가 이모인 혜원 노스님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각처에서 대중외호에 진력한 대한민국의 비구니스님이다.

생애

연도 내용
1930 경북 경산 출생
1937 운문사 청신암에서 광호(光毫)스님을 은사로 출가
1937~1944 운문사 청신암 주석
1945 광주 흥룡사 주석
1948 운문사에서 구산(九山)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1951~1953 직지사, 윤필암 하안거 성만
1954 전라도 백운산 토굴의 구산스님 회상에서 수학
1955~1958 전라도 선암사에서 재무 소임(은사스님 주지시)
1956 범어사에서 동산(東山)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1959~1964 청도 운문사 사리암에서 5년간 원주
1960 운문사 강원 졸업
1965 부산 연화사[1]에서 무불스님을 모시고 정진
1966~1968 대전 동학사 재무
1975~2002 부산 보덕사 주지
1991~2002 부산 보덕사 법당 중창 불사, 낙성식 봉행
1995~1996 범어사 대성암 하 · 동안거 성만
1996~1999 대한불교 조계종 구족계 계단(별소계단 18, 19, 20 , 특1, 3회 존증아사리)
문중 두옥(斗玉)문중
수계제자(『한국비구니명감』) 지형(志炯)·지훈(志訓)·상욱·상경·지명(志明)·원만·현경
문중계보(『한국의 비구니문중』) 두옥(斗玉, 4)→경윤(5)→혜원(慧圓, 6)→광호(光毫, 7)법인(法印, 8)지형(志炯, 9), 지훈(志訓, 9), 상욱, 상경, 지명(志明, 9), 원만(9), 현경(9)

활동 및 공헌

출가

[순례길에서]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상 p415
[상좌들과 함께]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상 p416
[보덕사 경내]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상 p417
[은사 광호스님을 모시고]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상 p417

법인(法印)스님은 1930년 경북 경산군 용성면 송림동 418번지에서 아버지 정병덕과 어머니 최분이 사이의 1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본관은 연일이며, 이름은 정늠이이다. 오빠와 남동생이 태어나자마자 죽자 할머니께서 스님을 이모 혜원스님이 계신 청신암으로 데리고 갔다. 명이 길어지길 바라서였다. 이렇게 하여 스님은 일곱 살 때 삭발하고 승복을 입고 수행의 길에 들어섰다. 그러한 노스님의 영향으로 법인스님은 언제나 금강경 독송을 쉬지 않고 항상 올곧게 생활하며 조석예불을 거르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삼고 있다. 법인스님은 1937년 운문사 청신암에서 광호스님을 은사로 출가했고, 1943년에서 1954년까지 은사스님을 모시고 광주 흥룡사에서 생활했다.

법인스님의 속가 이모 혜원 노스님

이모 혜원 노스님은 일생 수행정진을 한 분으로 혜(慧)가 밝아서 돌아가실 때에 가는 시간까지 알던 도인이셨다. “나는 4월 8일 지내면 결정을 지을 것이니 연락할 곳 있으면 해라. 세 번 까지 해서 오지 않으면 허물이 없다.” 초파일 행사 후에 할머니 한 분이 뒷정리를 한다고 남아 있었는데, 혜원 노스님이 “저 할머니 빨리 가라고 해라. 왜 안 가노?"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노스님은 할머니가 막 대문 밖으로 나가자 입적하셨다. 생전에 혜원 노스님은 항상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고 성품이 자상했으며 정진 또한 열심히 하셨다. 평소에 누군가에게 도움 받기를 싫어했던 스님은 제사를 따로 차리는 번거로움을 없애 주려는 듯 초파일에 입적하셨다. 또 노스님은 “수행자는 시주물건을 아껴야 된다.”고 늘 가르쳐주셨다. 부지런히 정진하고 매사에 빈틈없는 청빈한 수행자의 모습을 보여주신 것이 법인스님에게 수행의 지침이 되었다.

수학

1948년 3월 15일 운문사에서 구산스님을 계사로 모시고 사미니계를 수지했고, 1951년에는 윤필암에서 하안거, 1952년에는 김천 직지사 서전에서 하안거를 성만했다. 이후 1956년 3월 15일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지한 스님은 1959년부터는 청도 운문사 사리암에서 5년간 원주를 살면서 1960년에 운문사 대교과를 졸업했다. 1955년부터 4년간 전라도 선암사에서 은사스님을 도와서 재무 소임을 살았으며, 1965년에는 부산 연화사에서 무불 큰스님을 모시고 정진했다. 1966년부터 1968년까지는 동학사 주지로 취임하신 은사스님을 모시고 재무 소임을 보면서 사중을 보살폈다. 법인스님은 동진 출가한 이후 혜원 노스님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언제나 그림자처럼 은사 광호스님을 도와서 각처에서 대중외호에 진력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정진의 고삐를 놓치지 않으려는 구도의 정신을 간직했다.

도량불사

서울에 올라온 스님은 절을 짓고자 했으나 신도가 없어 고민이었다. 그런데 문중으로 사숙님 상좌가 되는 사촌스님의 어머니가 땅을 선뜻 내주셔서 불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어렵고 가난한 시기에 직접 화주를 해서 법당과 요사채를 건립한 후, 10년을 살다가 다시 대웅전을 중창했다. 스님의 불사에 대한 원력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생전에 대웅전 앞에 뜰을 만들고 싶은 마음에 1억 3천만 원의 불사를 추진 중이다.

보덕사 법당 중수 불사

[부산 보덕사] 사진출처: 네이버 블로그 ‘한국불교사진연구소’

법인스님이 머물고 있는 보덕사는 1971년 김무상각 보살님의 기증으로 창건되었다. 창건 당시는 법당 30평의 조그마한 토굴이었으나 1991년 1월 법당 중수 불사를 시작하여 2000년에 낙성식을 가졌다. 법당 51평(목조건물, 건축비 10억)과 요사채 120평 불사를 했다.

수계제자

수계제자로는 지형(志炯)·지훈(志訓)·상욱·상경·지명(志明)·원만·현경스님 등이 있다.

부산 보덕사

조계총림 순천 송광사 말사인 보덕사는 1970년대 작은 암자로 시작했다. 청풍납자이자 비구니 금강계단의 초대 존증아사리 광호스님과 제자 법인스님이 터를 잡으면서 도량의 면모를 갖추었다. 작은 법당과 요사채 한 채가 전부였다. 여기에 무상선원을 개설하고 비구니 선원과 강원을 시작했다. 도심이 발전하면서 산 아래에 있던 민가가 점점 올라왔다. 도량주변이 번잡해지고 더 이상 선원과 강원에서 정진하기가 어렵게 됐다. 광호스님이 청암사에 비구니 강원을 개설해 보덕사 강원을 옮겼다. 청암사비구니승가대학의 시원이 바로 보덕사 강원인 것이다.
세월의 흐름 속에 보덕사는 도심사찰로 대중을 교화하는 도량이 되었다. 광호스님의 상좌 법인스님은 나반존자 기도도량으로 유명한 청도 사리암에서 기도 잘하는 스님이었다. 스님의 염 불소리는 마치 은쟁반에 옥구슬이 구르듯 청아했다. 부산 인근에서 스님의 염불소리를 듣고자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법인스님이 보덕사에서 기도를 시작했다. 스님은 운문산을 내려올 때 지장보살 석상을 모시고 왔다. 일념으로 기도하고 정진했다. 기도의 힘이 쌓이면서 불사를 시작했다. 20여 년의 세월이 흐르자 법당에 비가 새고 요사채 생활도 힘들었던 것이다. 1990년에 시작한 불사가 무려 10여 년이 흘러 2002년 회향했다. 대작불사였다. 대웅전은 전면 5칸 측면 3칸, 외 7포 내 11포로 근래에 보기 드문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대웅전 안에 모셔진 석가모니 부처님과 관음보살, 지장보살을 비롯해 후불탱화도 모두 나무로 조성했다. 나무가 주는 온화함으로 법당에서 기도하는 이들의 마음도 후덕해진다.
불사가 한창일 때 주지 현경스님은 강원생이었다. 대중들이 눈만 뜨면 일을 해야 했다. 일명 ‘샛별보기운동’이었다. 전날 법당에 들어갈 나무를 켠 톱밥을 자루에 담아 치웠다. 새벽 6시까지 작업장을 깨끗이 청소하면 아침 7시에 대목장 할아버지가 올라왔다. 3~4개월이 지나자 대목장이 말했다. “내 생에 남을 작품하나 남기고 싶으니 법당을 크게 키웁시다.” 대중들이 올곧게 살고 스님들이 직접 작업장을 청소하는 모습에 환희심이 났던 것이었다. 오늘의 대웅전이 웅장하면서도 당당하게 자리하게 된 뒷이야기이다.
광호스님과 법인스님은 오래전에 열반에 들었다. 그러나 보덕사에는 스님들의 수행과 땀이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다. 무엇보다 본사인 조계총림 송광사에 대한 정성은 부처님 모시듯 했다. 보덕사 대중은 예나 지금이나 공부에 게으르지 않다. 불사가 한창일 때도 매달 큰스님들을 초청해 법문을 들었다. 조계총림 초대방장 구산스님을 비롯해 일타스님, 혜인스님, 보성스님, 혜국스님 등 당대 선지식들이 보덕사에서 법을 설했다.

[출처] 승보종찰 송광사(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songgwang01/221385617550

참고자료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상. 뜨란출판사, 2007, pp. 414~418.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180.
  •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p. 260, 261.
  • 승보종찰 송광사(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songgwang01/221385617550
  • 한국불교사진연구소(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w5065/40177566972)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범주 유형 표제 한자 웹 주소
법인(法印)스님 본항목 법인스님(法印, 1930~) 法印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법인스님(法印,_1930生,_비구니)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항목2 관계 속성
법인스님(法印) 두옥문중(斗玉) ~의 일원이다
법인스님(法印) 광호스님(光毫) ~의 수계제자이다
법인스님(法印) 운문사 청신암 ~에서 출가하다
법인스님(法印) 구산스님(九山) ~(으)로부터 계를 받다 사미니계
법인스님(法印) 동산스님(東山) ~(으)로부터 계를 받다 비구니계
법인스님(法印) 운문사 강원(승가대학) ~에서 수학하다
법인스님(法印) 부산 보덕사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주지(감원)
법인스님(法印) 부산 보덕사 ~을(를) 중창하다
법인스님(法印) 계단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구족계단 비구니 증사(별소계단 18-20회, 특1회, 3회 존증아사리)
법인스님(法印) 안거 ~을(를) 성만하다 김천 직지사, 문경 대승사 윤필암, 기장 백운산 토굴(관음암), 부산 범어사 대성암(청룡동)

지도

  • 보덕사 : 부산광역시 금정구 부곡동 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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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관계망




주석

  1. 1970년 무불스님이 부산시 동래구 거제동에 창건한 사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