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보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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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찰명 : 부산 보덕사(普德寺)(순천 송광사 말사)
  • 주소 : 부산광역시 금정구 부곡동 697

조계총림 순천 송광사 말사인 보덕사는 1970년대 작은 암자로 시작했다. 청풍납자이자 비구니 금강계단의 초대 존증아사리 광호스님과 제자 법인스님이 터를 잡으면서 도량의 면모를 갖추었다. 작은 법당과 요사채 한 채가 전부였다. 여기에 무상선원을 개설하고 비구니 선원과 강원을 시작했다. 도심이 발전하면서 산 아래에 있던 민가가 점점 올라왔다. 도량주변이 번잡해지고 더 이상 선원과 강원에서 정진하기가 어렵게 됐다. 광호스님이 청암사에 비구니 강원을 개설해 보덕사 강원을 옮겼다. 청암사비구니승가대학의 시원이 바로 보덕사 강원인 것이다.
세월의 흐름 속에 보덕사는 도심사찰로 대중을 교화하는 도량이 되었다. 광호스님의 상좌 법인스님은 나반존자 기도도량으로 유명한 청도 사리암에서 기도 잘하는 스님이었다. 스님의 염 불소리는 마치 은쟁반에 옥구슬이 구르듯 청아했다. 부산 인근에서 스님의 염불소리를 듣고자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법인스님이 보덕사에서 기도를 시작했다. 스님은 운문산을 내려올 때 지장보살 석상을 모시고 왔다. 일념으로 기도하고 정진했다. 기도의 힘이 쌓이면서 불사를 시작했다. 20여 년의 세월이 흐르자 법당에 비가 새고 요사채 생활도 힘들었던 것이다. 1990년에 시작한 불사가 무려 10여 년이 흘러 2002년 회향했다. 대작불사였다. 대웅전은 전면 5칸 측면 3칸, 외 7포 내 11포로 근래에 보기 드문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대웅전 안에 모셔진 석가모니 부처님과 관음보살, 지장보살을 비롯해 후불탱화도 모두 나무로 조성했다. 나무가 주는 온화함으로 법당에서 기도하는 이들의 마음도 후덕해진다.
불사가 한창일 때 주지 현경스님은 강원생이었다. 대중들이 눈만 뜨면 일을 해야 했다. 일명 ‘샛별보기운동’이었다. 전날 법당에 들어갈 나무를 켠 톱밥을 자루에 담아 치웠다. 새벽 6시까지 작업장을 깨끗이 청소하면 아침 7시에 대목장 할아버지가 올라왔다. 3~4개월이 지나자 대목장이 말했다. “내 생에 남을 작품하나 남기고 싶으니 법당을 크게 키웁시다.” 대중들이 올곧게 살고 스님들이 직접 작업장을 청소하는 모습에 환희심이 났던 것이었다. 오늘의 대웅전이 웅장하면서도 당당하게 자리하게 된 뒷이야기이다.
광호스님과 법인스님은 오래전에 열반에 들었다. 그러나 보덕사에는 스님들의 수행과 땀이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다. 무엇보다 본사인 조계총림 송광사에 대한 정성은 부처님 모시듯 했다. 보덕사 대중은 예나 지금이나 공부에 게으르지 않다. 불사가 한창일 때도 매달 큰스님들을 초청해 법문을 들었다. 조계총림 초대방장 구산스님을 비롯해 일타스님, 혜인스님, 보성스님, 혜국스님 등 당대 선지식들이 보덕사에서 법을 설했다.
※ 출처 : 승보종찰 송광사(네이버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