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준(權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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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578년(선조11)∼1642년(인조20) = 65세]. 조선 중기 광해군~인조 때 활동한 문신. 자는 도보(道甫)이고, 호는 상암(霜嵒)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인데, 단양(丹陽)에 거주하였다. 권세인(權世仁)의 아들이며 권집(權潗)의 동생이다. 또 이공헌(李公憲)의 외손자이고, 조응도(趙凝道)의 사위이다.

인조 시대 활동

1613년(광해군5) 증광시(增廣試)에 합격하여, 성균관 박사(博士) · 전적(典籍)으로 승진하였다. <인조반정(仁祖反正)> 이후에 1623년(인조1) 형조 좌랑이 되었다가, 결성현감(結城縣監)으로 나갔으며, 1627년(인조5) 예조 좌랑이 되었다가, 황해도사(黃海道都事)로 나갔다. 이어 1628년(인조6) 예조 정랑이 되었다가, 수안군수(遂安郡守)로 나갔는데, 그는 외방의 수령관으로 선정(善政)을 베풀어 이름이 났다.

1631년(인조9) 종묘서(宗廟署)영(令)에 임명되었다가 공조 정랑으로 전직되어, 춘추관(春秋館)편수관(編修官)을 겸임하였다. 태복시(太僕寺) 정(正)으로 전직되었다가 삼척부사(三陟府使)로 나갔다. 1635년(인조13) 장악원(掌樂院) 정을 거쳐 광주목사(光州牧使)로 나갔다. 1638년(인조16) 파주목사(坡州牧使)로 나갔다가, 상의원(尙衣院) 정에 임명되었다. 삼척 · 광주 · 파주 등지의 수령관을 역임할 때에도 치적이 뛰어나서, 나라에서는 표창을 하였고, 고을에서는 송덕비(頌德碑)를 세워서 그 업적을 칭송하였다.

묘소와 비문

묘소는 경상도 의령(宜寧) 박령산(縛嶺山)에 있는데, 조경(趙絅)이 지은 묘갈명(墓碣銘)이 남아 있다.(『용주유고(龍洲遺稿)』 권17)

관력, 행적

참고문헌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용주유고(龍洲遺稿)』
  •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