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련의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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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WS21KHU (토론 | 기여)님의 2021년 6월 23일 (수) 23:42 판 (강명화와 장병천의 연애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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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비련의 곡>은 동아문화협회가 제작하고 일본인 조천고주(하야카와 마스다로)가 감독과 각본을 맡은 영화이다. 문수일과 문영옥과 문수일이 주연으로 출연했다. 조선극장에서는 1924년 11월 하순에 개봉된 것으로 보인다. 『시대일보』의 기사[1]에서는 11월 23일부터 개봉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KMDb 사이트에서는 11월 28일에 개봉된 것으로 되어 있다. 관련 기사들 대부분이 이 영화가 경상도 유지인 동경 유학생 장병천과 평양 기생 강명화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음을 시사한다. 이 사건이 워낙 대중에게 인기 있는 이야기였는지, 그들의 연애담을 영화로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화제성을 제법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극장에서도 꽤 흥행한 모양이었는데, 작품 자체만 놓고 보자면 이례적으로 영화계의 비판이 거세게 쏟아졌던 영화였다.

내용

강명화와 장병천의 연애 서사

이 영화의 사정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강명화와 장병천의 연애 이야기를 볼 필요가 있다. 이 둘의 이야기를 전한 기사들과 위키백과의 정보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평양 권번 기생인 강명화가 길에서 일본인들에게 희롱당하는 것을 경상도 유지의 아들인 장병천이 구해준다. 그 일로 두 사람은 가까워져 연인 관계로 발전하고, 장병천의 곁을 항상 지켰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장병천의 집안은 강명화를 요부(妖婦)로 여기며 둘의 결혼을 반대했고, 이에 장병천은 집을 나와 경성, 일본 등을 옮겨 다니며 강명화와 함께 도피 생활을 한다. 강명화는 그 과정에서 자신 때문에 세간에 부랑자 취급을 받고, 출세길도 막히게 된 장병천에게 미안함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던 중 강명화가 문득 온천에 가고 싶다는 말을 꺼내, 둘은 온양온천으로 여행을 떠난다. 강명화는 6월 12일 오전에 장병천이 잠시 외출한 틈을 타 쥐약을 먹고 자결한다. 자신이 죽으면 장병천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 출세길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외출을 나갔다가 돌아온 장병천은 강명화가 죽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이때의 충격으로 인해 약 한 달간 식음을 전폐하다가, 결국 7월에 강명화가 죽은 온양에서 마찬가지로 자결한다.

참고문헌

주석

  1. 朝鮮劇塲의 活寫 悲戀의 曲이란 朝鮮의 侮辱」, 『시대일보』, 1924.11.30. 1면, 『대한민국신문아카이브』online, 국립중앙도서관.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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