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경찰폭사사건

DH Edu
KYW21KHU (토론 | 기여)님의 2021년 6월 23일 (수) 03:27 판 (부산 경찰폭사사건 배경)
이동: 둘러보기, 검색

개요

박재혁

[1]


1920년 9월 14일 의열단원 박재혁(朴載赫)이 부산경찰서에 들어가 경찰서장에게 폭탄을 던진 의거이다.[2] 부산경찰서 서장 하시모토 슈헤이(橋本秀平)의 암살을 계획하였다.[3]

내용

박재혁

1895년 5월 18일 현재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에서 태어나 1921년 5월 27일 사망하였다. 부산진공립보통학교(현 부산진초등학교)를 거쳐 부산공립상업학교(구 부산상고 전신, 현 부산 개성고등학교)에 입학하였고, 학생시절부터 반일운동 단체를 조직하는 등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4] 부산공립상업학교 2학년 재학 중 최천택(崔天澤), 오택(吳澤) 등과 함께 일제에 의해 금지된 대한제국 보통학교의 국사교과서인 『동국역사(東國歷史)』를 비밀리에 등사하여 배포하였고, 부산진 출신 죽마고우들과 함께 비밀결사단체인 구세단(救世團)을 조직하여 독립운동에 앞장서고자 하였다.[5]20세 시절에 부산공립상업학교를 졸업한 박재혁은 경상북도 왜관에서 무역상으로 근무하면서 자금을 모아 상하이로 건너갔[6]고, 국외에서 항일투쟁의 뜻을 같이 한 여러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하면서 의열투쟁 단체인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였다.[7]
대구형무소에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으며, 2012년 7월 14일 부산 동구청에서는 그의 생가가 있는 조방로 630m 구간을 박재혁거리로 명명하였다.[8]

박태원의『약산과 의열단』을 통해 본 박재혁 독립운동

부산 경찰폭사사건 배경


의열단의 1차 계획 실패 이후, 의열단 단장 김원봉은 의열단원 대부분이 검거 당한 부산경찰서에 대해 복수하고자 했다. 김원봉은 당시 싱가포르에 있었던 박재혁에게 전보를 쳐서 상해로 불렀다. 박재혁이 김원봉의 전보에 상해로 달려온 것은 의열단 공약 10조 중 7조에 의한 것이었다.

의열단의 「공약 10조」


Quote-left.png

1. 천하의 정의의 사(事)를 맹렬히 실행하기로 함.
2. 조선의 독립과 세계의 평등을 위하여 신명(身命)을 희생하기로 함
3. 충의의 기백과 희생의 정신이 확고한 자라야 단원이 됨.
4. 단의(團義)에 선(先)히 하고, 단원의 의(義)에 급히함.[9]
5. 의백(義伯[편주 : 의열단의 우두머리]) 일인을 선출하여 단체를 대표함.
6. 하시하지(何時何地[편주 :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매월 일차식 사정을 보고함.
7. 하시하지에서나 초회(招會)에 필응(必應)함.
8. 피사(被死)치 아니하여 단의에 진(盡)함.[10]
9. 일(一)이 구(九)를 위하여, 구가 일을 위하여 헌신함.[11]
10. 단의에 반배(返背)한 자를 처살(處殺)함.

Quote-right.png
출처: 박태원, 『약산과 의열단』, 깊은샘(2000), p.34



전보를 받은 박재혁은 상해로 달려왔고, 김원봉은 그에게 부산 경찰서장을 죽이고 올 것을 명하였다. 그러나 부산경찰서장에게 대한 김원봉의 지극한 분노와 지극한 증오는 그냥 단순히 그 목숨을 빼앗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어[12] 한 가지 명을 더하였다.

부산 경찰폭사사건 경과

참고문헌

  • 박태원, 『약산과 의열단』, 깊은샘(2000)

주석

  1. "박재혁",『나무위키』online, 위키피디아.
  2. "박재혁",『위키백과』online, 위키피디아.
  3. "박재혁",『위키백과』online, 위키피디아.
  4. "박재혁",『위키백과』online, 위키피디아.
  5. "박재혁",『위키백과』online, 위키피디아.
  6. "박재혁",『위키백과』online, 위키피디아.
  7. "박재혁",『위키백과』online, 위키피디아.
  8. "박재혁",『위키백과』online, 위키피디아.
  9. 동지를 애호하고, 단결을 공고히 하자는 뜻임.
  10. 수명을 온전히 마치자는 관념을 타파하려는 것임.
  11. 개인이 아니면 전체를 이룰 수 없고, 전체를 떠나서는 개인이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이다.
  12. 박태원, 『약산과 의열단』, 깊은샘(2000),p.49

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