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작(巡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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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와 조선시대에 순군만호부와 포도청이 담당한 순찰.

내용

순작(巡綽)은 크게 궁성 및 도성 순작과 지방의 순작으로 구분된다. 고려시대 궁성 순작은 친위군(親衛軍)이, 도성 순작은 순군만호부(巡軍萬戶府)가 담당하였고, 지방의 순작은 지방군으로 편성된 순작군(巡綽軍)이 12패로 나뉘어 실시하였다.

조선초 궁궐의 순작은 의흥삼군부(義興三軍府)의 지휘 하에 상호군(上護軍)·대호군(大護軍)·호군(護軍)갑사(甲士)와 성중애마(成衆愛馬)를 인솔하여 실시하였다. 1451년(문종 1) 위(衛)와 영(領)의 군사 제도 개편에 따라 갑사는 5사(司)로 편성시키고, 사에는 5영(領)을 두고, 각 영에는 70명을 배속시켰다. 이때 5사(司) 가운데 출번(出番)하는 3사가 일자(日子)에 따라 군사를 나누어 순작(巡綽)에 참여하였다. 조선후기 궁궐의 순작은 삼군문(三軍門: 훈련도감·어영청·금위영)이 관장하였다. 궁궐 안에는 위장(衛將)부장(部將)이 각 군사 5명씩을 거느리고 경(更)을 나누어 순행(巡行)하였다. 병조와 도총부의 낭관(郎官)은 매일 야간 순행을 검찰하고 궁궐 대문의 자물쇠를 검사하였다. 궁성 밖은 훈련도감·금위영·어영청에서 초관(哨官) 1명과 군사 20명이 경(更)을 나누어 순찰하였다.

조선초기 도성의 순작은 고려의 순군만호부(巡軍萬戶府)가 전습되어 실시되었다. 이후 1409년(태종 9) 순군만호부가 의용순금사(義勇巡禁司)로 개편된 후 순작은 중군(中軍)의 1사(司)를 순위사(巡衛司)로 조직하여 의용순금사와 함께 2번으로 나누고 3일씩 교대로 진행되었다. 1414년(태종 14) 군사적 기능의 의용순금사가 사법적 기능의 의금부(義禁府)로 개편된 이후, 도부외(都府外)가 의금부의 조직에 편입되어 순작 업무를 지속한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중종대 창설된 포도청(捕盜廳)이 도성의 전반적 치안 업무를 전담하면서 순작 업무까지 병행하였다. 그러나 조선후기 중앙군이 5군영 중심으로 편성되면서 도성의 순작은 포도청과 훈련도감·어영청·금위영의 공조로 실시되었다.

용례

議政府據兵曹呈 景福宮城外初更巡綽後 其餘各更 只令振鐸 甚爲未便 請自今每更巡綽 且於光化門建春門迎秋門北城門 竝置更籤 令巡綽官收納本曹 以憑檢覈 從之(『단종실록』 즉위년 6월 5일)

참고문헌

  • 서울시사편찬위원회, 『서울 600년사』, 1977.
  • 차인배, 「조선시대 포도청 연구」, 동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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