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묘악(文廟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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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를 제향하는 문묘에서 제사 지낼 때 아뢰는 제향 음악.

개설

문묘악(文廟樂)은 아악(雅樂)을 사용한다. 우리나라의 아악은 왕자지·문공미가 송나라로부터 1116년(고려 예종 11)에 대성아악(大成雅樂)을 들여온 후, 그해 10월 태묘(太廟)의 제향에 처음으로 사용되었고, 그 후 문묘에도 점차 사용되었다. 조선조에 들어서는 1398년(태조 7)에 문묘를 건축하고, 악장은 고려의 것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그 후 1430년(세종 12)에 박연이 『주례』·『통전』·『악서』·『석전악보』·『지정조격』·『성조통제』 등을 참고하여 아악을 정비하였다. 여기에는 원나라 때인 1309년(원 지대 2)에 편찬된 『성조통제』가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것은 다시 성종 때에 완성된 『국조오례의』와 『악학궤범』에 인용되고 있는데, 지금도 그 유습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문묘악은 임진왜란을 맞아 한때 중단되는 시련을 겪다가 광해군 때 『악학궤범』을 인용하여 다시 복원하였고, 영조 때에 이르러서는 점차 그 틀을 바로잡았다.

그러므로 『국조오례의』와 『악학궤범』에 수록된 문묘악은 황종(黃鍾)에서부터 응종(應鍾)까지 12율을 각기 궁(宮) 즉, 중심음으로 삼은 12곡과 신을 배웅하는 송신악(送神樂) 가운데 송신협종궁·송신황종궁·송신임종궁을 더해 15궁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오늘날 성균관 문묘에서 연주되고 있는 악곡은 황종궁·고선궁·중려궁·이칙궁·남려궁·송신황종궁의 6곡뿐이다. 이것들은 7음음계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 및 특징

문묘에서는 매년 2월과 8월 상정일(上丁日)에 두 차례 석전(釋奠)을 행했다. 석전의 석(釋)은 ‘놓다·두다’이고, 전(奠)은 ‘올린다·그치다’는 뜻이다. 『공묘예악고』에 정씨는 “석전은 찬(饌)과 술을 올린다.” 하였다.

제향 절차는 신을 맞이하는 ‘영신례’, 폐백을 올리는 ‘전폐례’, 첫 잔을 올리는 ‘초헌례’, 음악만 연주하는 ‘공악’, 두 번째 잔을 올리는 ‘아현례’, 세 번째 잔을 올리는 ‘종헌례’, 제사 지낸 그릇을 덮는 ‘철변두’, 신을 보내는 ‘송신례’, 축문과 폐백을 태우는 ‘망예’ 등의 순서로 이루어진다.

문묘악에는 팔음(八音)을 갖춘 아악기를 사용하는데, 금부(金部)에는 편종·특종, 석부(石部)에는 편경·특경, 죽부(竹部)에는 지·적·약·소, 사부(絲部)에는 금·슬, 토부(土部)에는 훈·부, 목부(木部)에는 축·어·박, 포부(匏部)에는 생황·부, 혁부(革部)에는 절고·진고·노고·노도 등이 쓰인다. 이러한 아악기들은 2개의 악기군으로 나뉘어 등가(登歌)헌가(軒架)에서 연주된다. 등가는 대궐 뜰 위에서 연주되며, 악기 편성은 편종·특종·편경·특경·금·슬에 노래가 따른다. 헌가는 대궐 뜰 아래에서 연주되는데, 주로 관악기와 타악기가 중심이 된다. 악기 편성은 훈·지·약·적·노도·진고·축·어·부 등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문묘악에서는 일무(佾舞)를 춘다. 가로 8줄, 세로 8줄로 모두 64명이 8일무를 춘다. 문무(文舞)는 왼손에 약(籥), 오른손에 적(翟)을 들고 추며, 무무(武舞)는 왼손에 간(干), 오른손에 척(戚)을 들고 춘다. 음악적 특징은 중국 아악 계통으로 궁(宮)·상(商)·각(角)·변치(變致)·치(致)·우(羽)·변궁(變宮)의 7음음계로 되어 있다. 선율은 장식음이 없는 1음 1박이고 리듬은 규칙적이며, 음악은 반드시 주음(主音)으로 시작해 주음으로 끝난다. 4음이 한 구(句)를 이루고, 이것은 8마루로 구성되며, 매구의 끝에 박(拍)이 1번씩 들어간 것이 특징이다.

의의와 평가

석전은 우리나라 유교 문화의 상징이자 교육 문화의 원류인 공자와 그 도통(道統)을 이은 성현의 위폐를 모시고 그 학덕을 추모하는 국가적 의례이다. 이는 성현의 학문과 인격을 우러러 받들고, 성군 정치의 요체인 예악의 실천을 중히 여기는 선성선사(先聖先師)의 사도정신(師道精神)을 체득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문묘에서 석전을 봉행할 때에 연주되는 문묘악 역시 예악일치의 가르침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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