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참역(古站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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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함길도 지역의 역도(驛道) 중 하나인 거산도에 속한 역으로, 오늘날의 함경북도 명천군에 위치해 있었음.

개설

조선시대 초기에는 함길도 지역으로 국경을 확장하면서 역참을 추가로 설치하였는데, 고참역(古站驛)은 세종대에 설치되었다. 이후 세조 연간에 역제(驛制)를 41역도-543속역 체제로 개편하는 과정에서, 거산도(居山道)를 구성하는 역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함길도 명천현에 위치해 있었으며, 갑오개혁 때까지 존속하였다.

설립 경위 및 목적

고참역은 조선 세종대에 함길도 지역으로 국경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설치되었다. 초기의 명칭은 고참(古站)이었다. 1440년(세종 22)에 홍원현 신은참에서 길주 고참에 이르는 21개 참을 거산도로 편성할 때, 여기에 소속되었다.

조직 및 역할

『여지도서(輿地圖書)』 명천현 조에 따르면, 고참역에는 역리(驛吏) 432명, 역노(驛奴) 297명, 역비(驛婢) 153명과 상등마(上等馬) 2필, 중등마(中等馬) 6필, 하등마(下等馬) 8필 등 총 16필의 역마가 배속되어 있었다. 북청(北靑)에 위치한 거산역(居山驛)에 속하였다.

변천

조선시대의 역참 제도가 정비된 『경국대전(經國大典)』 체제에서는 함원역(咸原驛)·신은역(新恩驛)·평포역(平浦驛)·오천역(五川驛)·제인역(濟人驛)·기원역(基原驛)·시리역(施利驛)·곡구역(谷口驛)·마곡역(麻谷驛)·영동역(嶺東驛)·임명역(臨溟驛)·웅평역(雄平驛)·명원역(明原驛)·종포역(終浦驛)·웅이역(熊耳驛)·허천역(虛川驛)·적생역(積生驛) 등 19개 역과 더불어 거산도에 소속되었다. 이후 조선시대 후기까지 존속하다가, 1896년(고종 33) 1월에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폐지되었다.

고참역의 위치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명천현 남쪽 36리 지점이었다고 하는데, 오늘날의 행정 구역으로는 함경북도 명천군에 해당한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의병장 정문부(鄭文孚)가 이곳에서 군사를 모아 활동했다고 한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 『만기요람(萬機要覽)』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조병로, 『조선전기 역제사연구』, 국학자료원, 2005.
  • 오일순, 「고려시대 역제의 변동과 잡색역」, 연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0.
  • 정요근, 「고려전기 역제의 정비와 22역도」, 『한국사론』45, 2001.
  • 정요근, 「高麗·朝鮮初의 驛路網과 驛制 硏究」,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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