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원역(明原驛)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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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명원역 |
한글표제 | 명원역 |
한자표제 | 明原驛 |
상위어 | 거산도(居山道) |
동의어 | 명간참(明間站), 명원참(明原站) |
관련어 | 길주목(吉州牧), 명천현(明川縣), 역도(驛道), 역로(驛路) |
분야 | 경제/교통/육운 |
유형 | 집단·기구 |
지역 | 명천 |
시대 | 조선 |
집필자 | 정요근 |
폐지 시기 | 1896년(고종 33) 1월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명원역(明原驛)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태조실록』 7년 2월 3일 |
조선시대 함경도 명천에 위치했던 역.
개설
명원역(明原驛)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명천현(明川縣) 북쪽 5리(약 2㎞) 지점에 위치하였다. 고려시대에 존재하지 않았고 조선시대에 신설된 역(驛)이었다. 조선시대 명원역은 거산도(居山道)의 소속 역으로 편성되었다.
내용 및 변천
명원역이 위치했던 명천 지역은 천리장성 외부에 있어 고려의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던 곳이었으나, 고려말 쌍성총관부를 수복하는 과정에서 고려의 영토로 정식으로 편입되었다. 따라서 명원역은 그 이후에 설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명원역은 원래 길주의 영역이었으나, 이시애의 반란으로 인하여 1469년(예종 1) 길주의 영역을 분할하고 명천현을 신설하면서 그 읍치를 명원역에 두었다.
『태조실록』에는 1398년(태조 7) 명간참(明間站)을 명원참(明原站)으로 개명했다는 내용이 나오고(『태조실록』 7년 2월 3일),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명원역이 1398년에 신설되었다는 기록으로 볼 때, 1398년 이전에도 명간참이라는 이름으로 역(驛) 시설이 운영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함경도 지역의 역들은 남쪽의 안변 지역으로부터 북쪽의 두만강 연안에 이르기까지 해안가를 따라 남북으로 길게 편성된 교통로를 중심으로 설치, 운영되었다. 이 역들에 대한 역도(驛道) 편성은 몇 차례의 변동을 거친 후에 고산도(高山道), 거산도(居山道), 수성도(輸城道) 등 3개의 역도로 정비되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과 『대전회통(大典會通)』에는 함경도의 역들이 모두 이 3개의 역도로 편제되었다.
『세종실록(世宗實錄)』「지리지(地理志)」에 명원역은 시리도(施利道) 소속으로 기록되었지만, 이후 몇 차례의 역도 개편을 통해 『경국대전』에 이르러서 명원역은 거산도 소속의 역으로 기록되었다. 『대전회통』에도 변함없이 명원역은 거산도에 소속되었다. 시대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했으나 거산도는 대체로 남쪽의 홍원에서 동북쪽으로는 명천, 북쪽으로는 갑산 사이에 위치한 역들로 편성되었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명원역에는 상등마(上等馬) 2마리, 중등마(中等馬) 8마리, 하등마(下等馬) 12마리와 역리(驛吏) 426명, 역노(驛奴) 400명, 역비(驛婢) 241명이 배속되어 있었다.
명원역은 남쪽으로는 길주 방면, 북쪽으로는 경성 방면과 연결되는 한양~경흥 간 간선 교통로상에 위치하였다. 명원역에서는 남쪽으로 명천 고참역(古站驛), 북쪽으로 경성 주촌역(朱村驛) 등과 연결되었다.
1896년(고종 33) 1월에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전국의 역들이 폐지되면서 명원역도 폐지되었다.
명원역의 위치는 현재 북한의 행정 구역으로 함경북도 화성군 하평리에 해당한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호구총수(戶口總數)』
- 정요근, 「高麗·朝鮮初의 驛路網과 驛制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8.
- 정요근, 「조선초기 驛路網의 전국적 재편」, 『조선시대사학보』46, 조선시대사학회, 2008.
- 조선과학백과사전출판사·한국평화문제연구소 공편, 『조선향토대백과사전』, 평화문제연구소,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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