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곡역(麻谷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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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함경도 지역의 역도 중 하나인 거산도에 속한 역.

개설

마곡역(麻谷驛)은 조선 건국 후 동북 지방의 행정 체계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단주(端州) 지역에 설치되었다. 다만 역의 설치 시기는 문헌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태조실록』에는 태조 연간에 설치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태종대로 되어 있다.

태종 연간에는 함길도의 역도(驛道)인 시리도에 소속되었다가 세종대에는 거산도(居山道)에 편제되었고, 성종대 반포된 『경국대전(經國大典)』의 역도 체제하에서 거산도의 속역으로 유지되다가 1896년 폐지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1398년(태조 7)에 정도전(鄭道傳)이 동북면 지역의 행정 체계와 관할 구역을 정하면서 단주의 구마이참(仇麻耳站)을 마곡참(麻谷站)으로 고쳤다는 『태조실록』의 기사를 참고하면, 마곡역이 설치된 시기는 조선 태조대임을 알 수 있다(『태조실록』 7년 2월 3일). 그런데 『신증동국여지승람』 단천군 조에는 마곡역이 1409년(태종 9)에 설치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차이를 보인다. 이 두 사서의 기록을 고려하면, 마곡역은 조선시대 초기에 동북면 지역의 행정 체계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설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직 및 역할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 함길도 조에 따르면, 당시 마곡역에는 역리(驛吏) 545명, 역노(驛奴) 350명, 역비(驛婢) 261명과 상등마 2필, 중등마 8필, 하등마 13필 등 총 23필의 역마가 배속되어 있었다.

한편 세조대에는 이시애(李施愛)가 반란을 일으킨 뒤 300여 명의 군사들과 함께 이곳에 주둔하기도 하였다(『세조실록』 13년 6월 2일).

변천

마곡역은 조선 초기에 마곡참으로 불리웠는데, 참은 곧 역을 의미하며 원의 참적(站赤)에서 유래한 것으로, 조선시대 한양-의주간 역로상의 역 중에 황해도에 위치한 지역을 총칭하는 보통명사로 사용되었다.

1398년(태조 7) 정도전(鄭道傳)이 동북면 지역의 행정 체계와 관할 구역을 정하면서 구마이참을 마곡참으로 개칭한 이후, 마곡참은 1417년(태종 17) 이후 세종 즉위 이전까지 홍원 신은역과 두만강변의 경흥 회유역 사이의 시리도의 속역으로 편제되었다. 이는 『세종실록』 「지리지」 함길도 조에 시리도의 속역으로 마곡역이 언급되고 있는 사실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후 1445년(세종 27) 함길도관찰사가 북청(北靑)에서 마곡참(麿谷站)까지를 거산도(居山道)로 일컫고 찰방을 혁파하고 역승을 설치할 것을 주장하면서 세종대에 마곡역은 거산도에 소속되었다. 이는 1446년(세종 28)에 평안도·함길도도체찰사황보인(皇甫仁)의 건의에 따라, 홍원의 함원역(咸原驛)에서 단천의 마곡역까지를 거산도로 삼아 함길도의 역로를 정비했다는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세종실록』 28년 11월 17일).

이후 성종대에 『경국대전』이 반포되면서 확정된 조선시대 전기의 역도 체제에서는 거산도의 속역으로 되었다. 이후 조선시대 후기까지 존속하다가, 1896년(고종 33) 1월에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폐지되었다.

『여지도서』 함경도(관북읍지) 함경남도 단천부지에 따르면, 당시 마곡역은 단천부 북쪽 45리 지점에 위치하였으며, 거산도에 소속되어 있었다.

참고문헌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조병로, 『한국근세 역제사연구』, 국학자료원, 2005.
  • 정요근, 「조선초기 역로망의 전국적 재편」, 『조선시대사학보』4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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