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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27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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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보안도 |
한글표제 | 보안도 |
한자표제 | 保安道 |
하위어 | 보안역(保安驛), 인람역(仁嵐驛), 부창역(富昌驛), 원창역(原昌驛), 연봉역(連峯驛), 천감역(泉甘驛), 연평역(延平驛), 약수역(藥水驛), 평안역(平安驛), 여량역(餘粮驛), 창봉역(蒼峯驛), 갈풍역(葛豐驛), 오원역(烏原驛), 벽탄역(碧呑驛), 호선역(好善驛), 안흥역(安興驛), 유원역(由原驛), 신흥역(新興驛), 양연역(陽淵驛), 단구역(丹丘驛), 신림역(神林驛) |
관련어 | 춘주도(春州道), 평구도(平丘道), 명주도(溟州道), 대창도(大昌道), 역승(驛丞), 찰방(察訪), 역도(驛道) |
분야 | 경제/교통/육운 |
유형 | 개념용어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朝鮮) |
왕대 | 조선(朝鮮) |
집필자 | 조병로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보안도(保安道)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세조실록』 1년 12월 3일, 『세조실록』 8년 8월 5일 |
조선시대에 강원도의 춘천·홍천·횡성·원주·평창·정선·강릉 등지에 설치된 역을 관할한 역도.
개설
보안도(保安道)는 조선시대의 41역도(驛道) 가운데 하나로, 고려시대의 춘주도(春州道)·평구도(平丘道)·명주도(溟州道)에 속한 일부 역들이 세종 연간에 하나의 역도로 재편되면서 성립하였다. 한때 대창도(大昌道)에 통합되기도 했으나, 1462년(세조 8)에 역제(驛制)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은계도(銀溪道)·평릉도(平陵道)·상운도(祥雲道)와 더불어 강원도의 역도가 되었다. 초기에는 역승(驛丞)이 역무를 맡아보았으나, 세조대부터는 찰방(察訪)이 관할하였다. 보안도는 춘천을 중심으로 홍천과 원주를 잇는 역로(驛路), 원주에서 진부·횡계를 넘어 강릉으로 연결되는 역로, 그리고 원주에서 평창과 정선을 지나 강릉에 이르는 역로 등으로 구성되어, 경기도와 강원도를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로 역할을 하였다.
내용 및 특징
조선시대의 보안도는 고려시대 춘주도, 평구도 그리고 명주도를 개편하면서 성립되었다. 그리하여 세종 연간에 고려시대의 강원도 역도는 보안도·대창도·평릉도로 재편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이때 보안도에는 보안역(保安驛)·인람역(仁嵐驛)·부창역(富昌驛)·원창역(原昌驛)·연봉역(連峯驛)·천감역(泉甘驛)·연평역(延平驛)·약수역(藥水驛)·평안역(平安驛)·여량역(餘粮驛)·창봉역(蒼峯驛)·갈풍역(葛豐驛)·오원역(烏原驛)·벽탄역(碧呑驛)·호선역(好善驛)·안흥역(安興驛)·유원역(由原驛)·신흥역(新興驛)·양연역(陽淵驛)·단구역(丹丘驛)·신림역(神林驛) 등 21개 역이 소속되었으며, 역승이 관리하였다.
1455년(세조 1)에는 강원도의 역로가 조폐할 뿐 아니라 역승의 직급이 낮고 경력이 부족해 역참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자, 보안도를 대창도에 통합하고 찰방을 파견하였다(『세조실록』 1년 12월 3일). 그 뒤 1462년(세조 8)에는 병조의 건의에 따라 다시 역로를 정비하면서, 강원도의 역도를 보안도·은계도·평릉도·상운도로 개편하고 보안도와 은계도에는 찰방을, 평릉도와 상운도에는 역승을 파견하였다. 그 과정에서 보안도는 보안역·인람역·부창역·원창역·연봉역·천감역·창봉역·갈풍역·오원역·안흥역·유원역·단구역·신림역·신흥역·연평역·약수역·평안역·벽탄역·호선역·안창역·안보역·양연역·여량역·운교역·방림역·대화역·진부역·횡계역·고단역·임계역 등 30개 속역으로 대폭 확대 편성되었다(『세조실록』 8년 8월 5일).
이후 성종대의 『경국대전(經國大典)』 체제에서는 보안역·안보역·감천역·인람역·원창역·부창역·연봉역·창봉역·오원역·안흥역·단구역·유원역·안창역·신림역·신흥역·양연역·연평역·약수역·평안역·벽탄역·호선역·임계역·고단역·횡계역·진부역·대화역·방림역·갈풍역·여량역·운교역 등 30개 역을 관할하였다.
한편, 보안도 속역의 역속 및 역마 현황을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를 통해 살펴보면 <표1>과 같다. 그 중 보안역의 경우 『관동읍지(關東邑誌)』「춘천부읍지여사례대개병록성책(春川府邑誌與事例大槩幷錄成冊)」 역원 조에 따르면, 역리(驛吏) 5명, 역노(驛奴) 71명, 역비(驛婢) 32명과, 대마 2필, 기마 2필, 복마 4필 등 총 8필의 역마가 배속되어 있었다.
보안도에 소속된 30개 역에 역리 380명, 역노 743명, 역비 481명과 역마 120필이 배속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변천
보안도는 고려시대의 춘주도·평구도·명주도의 속역을 바탕으로 성립되었다. 조선전기 세종대의 역도 개편에 따라 강원도의 역도가 보안도·대창도·평릉도로 재편되었다. 그리하여 조선시대 보안도 속역 조직의 변천은 <표2>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세종대 21개 속역, 『경국대전』 시기 30개 속역으로 편성되어 조선후기까지 존속되었다가 1896년(건양 1) 1월에 갑오개혁이 마무리되는 과정에서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철폐되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대동지지(大東地志)』
-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 『해동지도(海東地圖)』
- 『관동읍지(關東邑誌)』
- 조병로,『한국근세역제사연구』, 국학자료원,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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