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준(犧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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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제사 의례에 사용된 제기(祭器)로, 몸체 표면에 희생(犧牲)을 새기거나 몸체 자체를 희생의 모양으로 만든 술동이.

개설

희준(犧尊)은 고대로부터 국가 제례에서 중요하게 사용된 6종의 준(尊) 중 한 종류이다. 6준은 몸체의 외형이나 몸체 표면에 새겨 넣는 문양에 따라 희준과 코끼리 문양의 상준(象尊), 받침이 없는 착준(著尊), 몸체가 불룩한 호준(壺尊), 산에 구름이 낄 형세의 문양이 있는 산준(山尊)과 입구가 넓고 몸체가 불룩하며 문양이나 장식을 새기지 않은 밋밋한 모양의 대준(大尊) 등으로 구분되었다.

연원 및 변천

희준은 중국 주나라 시대부터 사용된 술동이로서, 희생 중에서도 대생(大牲)인 소를 새기거나 그려 넣거나, 혹은 소의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다. 희준은 주로 상준, 산준과 짝을 이루어 봄, 여름, 가을, 겨울과 동지 뒤 세 번째 미일(未日)인 납일(臘日) 등에 지내는 오향제(五享祭)의 큰 제례에서 봄·여름 제사에 2병씩 진설되었다. 그중 1병에는 신령에게 올리기 위해 사용되는 다섯 가지 술로 탁주인 범제(泛齊), 단술인 예제(醴齊), 흰 빛이 도는 앙제(盎齊), 붉은 빛이 도는 체제[緹齊], 찌꺼기가 가라앉는 침제(沈齊) 등의 오제(五齊) 중 두 번째로 빨리 익는 비교적 탁한 술인 예제를 담았고, 다른 1병에는 밤에 거울로 달을 비춰 맺힌 이슬을 모아 만든 맑은 물이라고 하는 명수(明水)를 담았다. 또한 이보다 작은 제례에서는 산뢰와 짝을 이루거나, 희준만 1~2병 진설되었는데, 이 경우에도 예제와 명수를 담았다. 다만 드물게 상준 외의 준과 짝을 이루거나, 예제 대신 범제, 울창주(鬱鬯酒), 청주(淸酒) 등을 담기도 했다.

즉 성종대 이전까지 시행된 종묘의 협제(祫祭)에서 대준, 상준, 착준, 호준, 산뢰와 짝을 이루고 범제와 명수를 각각 담았으며, 대한제국 시기에 설행된 환구제(圜丘祭)에서 대준, 착준, 산뢰와 짝을 이루고 울창주와 명수를 담았다. 또한 문묘에서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문선왕(文宣王)인 공자(孔子)에게 올리는 삭망제(朔望祭)와 작헌례(酌獻禮)의 정배위(正配位)에는 희준 1병만을 진설하였는데, 이때에는 청주를 담았다. 6준 중에서도 희준과 상준은 착준, 호준, 대준 등에 비해 보다 많은 제례에서 다양하게 활용되었다.

형태

소는 희생 중의 으뜸이며 소로 만든 맛있는 음식이 봄에 어울리기 때문에, 소를 본뜬 희준을 제작하여 봄의 제사에서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국가 전례서에는 2종류의 희준의 그림과 규격이 수록되어 있다. 우선 『세종실록』 「오례」 길례서례 「제기도설(祭器圖說)」에는 표면에 소의 그림을 그린 것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는 북송대의 『사림광기(事林廣記)』에 수록된 내용을 계승한 것이다. 그에 따르면 이 유형의 희준은 기구(器口)의 지름이 1자 2치(약 36㎝), 밑바닥의 지름은 8치(약 24㎝), 위아래의 구멍 지름[空徑]은 1자 5푼(약 32㎝), 기물의 받침다리[足]의 높이는 2치(약 6㎝)라고 한다. 한편 성종대의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例)』와 정조대의 『춘관통고(春官通考)』에는 소를 본뜬 희준의 그림과 규격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는 남송대에 주희(朱熹)가 지은 『소희주현석전의도(紹煕州縣釋奠儀圖)』에 수록된 내용을 계승한 것이다. 그에 따르면 이 유형의 희준은 무게가 9근 11냥(약 5.8㎏), 희생인 소의 발까지 합한 높이는 6치 1푼(약 18㎝), 기구의 직경은 2치 4푼(약 7㎝), 소의 머리부터 발까지 합한 높이는 8치 2푼(약 25㎝), 소의 귀의 높이는 2치 1푼 5리(약 6.5㎝), 귀의 너비는 8푼 5리(약 2.5㎝), 몸체 내부 공간의 깊이는 3치 7푼(약 11㎝)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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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例)』
  • 『춘관통고(春官通考)』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