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년법(編年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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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기록할 때 시간을 구성하는 방법.

개설

역사를 기술할 때 시간을 구성하는 대표적인 방식에는 편년체(編年體)와 기전체(紀傳體)가 있으며, 강목체(綱目體)나 기사본말체(紀事本末體)를 원용한 역사서도 있다. 조선 세종 때는 『고려사(高麗史)』의 개찬에 관해 논의하면서, 사관인 박팽년(朴彭年)·이석형(李石亨)·하위지(河緯地) 등이 편년법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두고 열띤 토론을 펼치기도 했다. 결국 『고려사』는 편년법을 고쳐 『사기(史記)』의 체재를 본받아 세가(世家)·지(志)·표(表)·열전(列傳) 등 총 139권으로 후세에 전하게 되었다(『세종실록』 31년 2월 5일).

내용 및 특징

대표적인 편년법 중 하나인 편년체는 연대순에 따라 사실을 서술하는 역사 편찬 체재로, 동양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며 가장 보편적이다. 오늘날 전하는 편년체 역사서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중국의 『춘추(春秋)』이다. 이후 사마천과 반고 등이 기전체로 역사를 정리하면서부터 중국의 정사는 기전체로 편찬되었지만, 수나라와 당나라 때의 역사는 모두 편년체로 기술되었다. 특히 북송 때 사마광(司馬光)이 지은 『자치통감(資治通鑑)』을 계기로 편년체는 크게 발전하였다.

기전체는 기(紀)·전(傳)·지(志)·표(表) 등으로 구성하여 서술하는 역사 서술 체재로, 가장 중요한 기와 전에서 이름을 따왔다. 사마천이 지은 『사기』에서 비롯되었으며, 이후 『한서』와 『청사고(淸史稿)』 등 중국 역대 왕조의 정사를 서술하는 기본 체재가 되었다.

강목체는 역사를 연월일 순으로 강(綱)과 목(目)으로 기록하는 편찬 체재이다. 제목이나 줄거리에 해당하는 기사를 큰 글씨로 쓰고, 그에 대한 내용을 구체적이면서 상세하게 제목보다 작은 글씨로 기록하는 형식을 취한다. 강목체는 주희(朱熹)에 의해 체제가 잡혔는데, 『자치통감』을 기본 자료로 편찬한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이 대표적이다.

기사본말체는 사건별로 제목을 앞세우고, 그와 관련된 기사를 한데 모아 서술한다. 기전체와 편년체는 인물별·분야별로 항목을 나누거나 연대순으로 서술하여, 같은 사건에 대한 기록이 흩어지거나 섞이고 중복되는 단점이 있다. 그에 비해 기사본말체는 어떤 일의 원인과 발단, 전개 과정, 후세에 미친 영향까지 일관되게 서술하기 때문에 대상 사건을 체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중국 남송(南宋) 때 원추(袁樞)가 『자치통감』을 활용하여 『통감기사본말(通鑑紀事本末)』을 편찬한 데서 비롯되었다.

변천

편년체를 활용한 역사서는 굉장히 많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역사서인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해,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일성록(日省錄)』 등이 모두 편년체 역사서다. 또한 고려 왕조의 역사를 정리한 권근(權近)의 『동국사략(東國史略)』, 정도전(鄭道傳)의 『고려국사(高麗國史)』, 김종서(金宗瑞) 등의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서거정(徐居正) 등의 『동국통감(東國通鑑)』도 편년체로 기술되었다. 편년체는 역사 기록을 분산시키지 않고 쉽게 기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이 사용되었지만, 역사를 구조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고 연대가 부정확한 자료를 놓치기 쉬운 단점이 있다.

기전체는 김부식(金富軾)이 편찬한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조선 세종 때 김종서(金宗瑞)와 정인지(鄭麟趾) 등이 왕명으로 편찬한 『고려사』 등에서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기전체는 사건을 연대순으로 일괄 기술하지 않고 각 시대의 주요 인물과 전기, 제도와 문물 등으로 분류하여 서술하는 만큼 역사를 구조적으로 파악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1452년(문종 2)에 김종서는, 『세종실록』을 찬술할 때 기전체처럼 별도의 지(志)를 만들 것을 건의하였다. 이때 그는 정인지와 허후(許詡)의 말을 인용하여, "세종께서 강기(綱紀)를 제정하고 예악(禮樂)을 제작한 일이 매우 많으니, 의주(儀注)와 같이 마땅히 별도로 지(志)를 만들어 고열(考閱)에 편리하게 한다면 실록이 번거롭고 용장(冗長)한 데 이르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이 말에는 편년체와 기전체의 장단점이 분명히 드러나 있다.

강목체는 성리학이 심화된 17세기 이후에 주로 편찬되었다. 홍여하(洪汝河)의 『동국통감제강(東國通鑑提綱)』, 유계(兪棨)의 『여사제강(麗史提綱)』, 안정복(安鼎福)의 『동사강목(東史綱目)』 등이 대표적인데, 모두 주희의 『자치통감강목』을 원용하였다. 강목체는 기록에 앞서 유교적 정통과 명분 등을 밝혀 후대로 하여금 교훈적인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자세한 범례를 제시하는 만큼, 유교적 정통을 존숭하고 대의명분을 지키는 것을 이상으로 한다.

기사본말체 역사서는 이긍익(李肯翊)의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이 대표적이다. 이긍익은 「연려실기술의례(燃藜室記述義例)」에서, "지금 내가 편찬한 『연려실기술』은 대략 기사본말체를 모방해서, 자료를 얻는 대로 분류하고 기록하여 다음에 계속 보태 넣기에 편리하도록 하였다."라고 밝혔다. 그밖에 편찬자를 알 수 없는 『조야집요(朝野輯要)』 등이 이 방식으로 기술되었는데, 다른 편년법에 비해 크게 주목받지 못한 까닭에 역사서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다.

참고문헌

  • 김광철, 「『고려사』 편년화와 고려실록 체제의 재구성」, 『한국중세사연구』30, 2011.
  • 김남일, 「『동사강목』의 편찬 배경과 강목체 기년」, 『한국사학사학보』11, 2011.
  • 박인호, 「『조야집요』의 편찬과 편사정신」, 『역사교육논집』37, 2006.
  • 오항녕, 「朝鮮初期 實錄編纂體裁의 변화에 관한 史學史的 考察」, 『한국사학사학보』1, 2000.
  • 유영옥, 「『東國通鑑』體裁 분석」, 『지역과 역사』11, 2002.
  • 최준하, 「『史記』를 통해 본 역사교육 - 紀傳體와 論贊을 중심으로」, 『역사와 역사교육』21,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