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판(冊板)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목판 인쇄에서 글자를 새겨 서적을 인출하기 위해 만든 판목(板木).

개설

근대 이전 전적의 인쇄 방식은 크게 목판 인쇄와 활자 인쇄로 나눌 수 있다. 목판 인쇄를 위해서는 그 기본 도구인 판목이 꼭 필요한데, 판목에 글자를 새겨 서적을 인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책판(冊板)이다.

내용 및 특징

책판의 종류로는 불경을 찍기 위한 경판(經板), 사서삼경을 찍기 위한 경서판(經書板), 다라니(陀羅尼)를 찍기 위한 다라니판(陀羅尼板) 등이 있으며, 그 외에 글씨를 베껴 새기고 찍기 위한 판목인 서판(書板)과 그림을 찍기 위한 판목인 도판(圖板)이 있다.

도판은 종류가 다양하여 초상화를 그린 초상판(肖像板), 산소를 그린 묘산도판(墓山圖板), 지도를 그린 지도판(地圖板), 계도를 그린 계도판(系圖板), 부적을 그린 부적판(符籍板), 글을 쓸 때에 줄을 맞추기 위한 선을 그은 괘지판(罫紙板), 편지나 시를 적는 데 쓰기 위해 그림을 새긴 전지판(箋紙板), 책 표지를 장식하기 위해 각종 꽃문양을 새긴 능화판(菱華板) 등이 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책판의 판각 기술과 함께 발달한 것으로 서적 인쇄에 서로 보완적으로 이용되었다.

책판의 소재로는 주로 대추나무, 가래나무, 배나무가 사용되었다. 판목이 정해지면 짠물에 담그거나 쪄서 결을 삭힌 다음 판목의 양쪽을 대패질하여 마구리를 붙인다. 그런 다음 판식과 계선을 갖춘 저지(楮紙)에 달필가가 깨끗이 쓴 정서본을 거꾸로 붙여 판각을 시작하는데, 각수(刻手)가 자획과 판식을 따라 그대로 새기며, 한 판을 다 새기면 권·장차·판의 끝 등 적절한 곳에 간기(刊記)와 각수의 이름을 표시하기도 하였다.

완성된 책판은 개판처에서 보관하거나 교서관, 사찰, 서원 등으로 옮겨서 관리하였다. 책판은 목재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항상 화재의 위험이 따랐으며 습기로 인한 곰팡이와 판이 어그러지는 완판(刓板) 현상을 피할 수 없었다. 이런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했으며, 또한 늘어나는 서적 수요에 맞추어 책판도 많아졌으므로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목록을 작성하기도 하였다.

책판의 목록집이 만들어진 것은 고려시대부터였다. 『고려사(高麗史)』에는 1087년(고려 선종 4) 2월에 왕이 대장경의 완성을 경하하기 위하여 개국사(開國寺)에 나아갔다는 기록이 있는데, 대장경을 인쇄하기 위해서는 목록이 필요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1090년(고려 선종 7) 대각(大覺) 국사(國師)가 편찬한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은 책판 목록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여겨지며, 1101년(숙종 6) 3월 비서성(秘書省)의 판목을 정비하였다는 기록 등으로 보아 판목의 목록을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으나 현재 실물은 전하지 않는다.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책판 목록은 『대장목록(大藏目錄)』이다. 1251년(고려 고종 38) 9월에 대장경의 조판이 끝났는데, 수기(守其)는 『고려국신조대장교정별록(高麗國新雕大藏校正別錄)』을 작성하여 고려대장경의 교정 결과를 기록으로 남겼다.

문치주의를 표방한 조선에서는 책판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았다. 세종은 1421년(세종 3) 2월 5일 각 관아의 서책뿐 아니라 판목도 함께 정리하도록 하였으며, 4년 뒤인 1425년(세종 7)에는 각 도의 관아에 있는 책판의 전장(傳掌)을 분명하게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또 1428년(세종 10) 1월 26일에는 책판 장치법(藏置法)을 정하는데, 각 도 감사에게 계문(啓聞)한 다음에 서책을 간행케 하였다.

이런 기록으로 보아 책판의 목록이 작성되었을 것으로 여겨지나 실물이 전하지 않아 확인하기 어렵다. 불교 경전이 아닌 서적의 책판 목록이 처음으로 정리된 것은 1554년(명종 9)에 어숙권(魚叔權)이 편찬한 『고사촬요』이다. 이 책의 팔도정도(八道程途) 조에 서울에서 해당 지방까지 가는 노정을 밝히면서 각 지방에서 소장하고 있는 책판을 두 줄로 작게 주를 달았다.

조선후기에는 『완영책판목록(完營冊板目錄)』(1759), 『규장총목(奎章總目)』(1781), 『누판고(鏤板考)』(1796), 『군서표기(群書標記)』(1799), 『각도책판목록(各道冊版目錄)』(1840) 등 다양한 책판 목록이 작성되었다. 이들 목록서는 단순히 소장처만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조선후기 지방의 인쇄 발달의 정도를 보여 주는 자료이며 분류가 체계화된다는 점에서 서지적인 면에서 중요한 자료들이라 할 수 있다.

그중 가장 의의를 둘 수 있는 목록서는 1796년(정조 20) 서유구(徐有榘)가 왕명을 받들어 작성한 『누판고』이다. 『누판고』는 전국의 책판을 조사하여 수록한 것으로 체재 면에서 다른 목록들과 뚜렷이 구분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누판고』의 체재는 어찬서·어정서·경부(經部)·사부(史部)·자부(子部)·집부(集部) 등 6개 분야로 나뉘며, 각 책판에는 서명·권수·저자와 내용을 담은 간단한 해제, 책판의 소장처, 완결 상태, 인지 장수 등을 기록하였다.

이와 같은 분류 체계는 중국 사부(四部) 분류의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세부적인 분류에서는 차이를 보인다는 점에서 정조대의 학문적 성과를 반영한 독자적인 목록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기존의 목록서에 비해 많은 수의 책판을 수록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변천

목판 인쇄를 이용해 처음 서적을 간행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불교가 전해져 불경이 널리 보급되는 통일신라시대로 소급할 수 있다.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 나온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 『보협인다라니경(寶篋印陀羅尼經)』,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 『교장(敎藏)』, 『재조대장경(再雕大藏經)』 등의 목판 인쇄 경험은 조선시대의 다양한 책판이 나올 수 있는 전제적 여건이 되었다.

목판 인쇄의 장점은 주자(鑄字) 인쇄에 비해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다량의 인쇄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학문이 발달하고 전적의 수요가 급증할수록 책판의 판각은 전국에서 대량으로 이루어졌다. 임진왜란 이전에 간행된 『고사촬요(攷事撮要)』에는 조선 전기 책판이 만들어진 지역이 수록되어 있다.

그에 따르면 경기도는 수원, 충청도는 충주·청주·공주·홍주·제천·임천 보광사(寶光寺)·한산, 황해도는 연안·해주·서흥 귀진사(歸眞寺)·수안·곡산·봉산·황주, 강원도는 춘천·횡성·원주·강릉·회양·영월·정선·양양·삼척·평해 등, 전라도는 고산·익산·금산·전주·옥구·금구·김제·용담·태인·진안·부안·정읍·고부·고창·장성·무장·남원·함평·장수·순창·진원·곡성·운봉·영광·옥과·담양·구례·광주·나주·창평·능성·남평·동복·무안·영암·보성·순천·광양·장흥·낙안·해남 등에서 책판 제작이 이루어졌다.

또 제주도는 제주, 경상도는 풍기·상주·영천·예천·안동·선산·비안·금산·개령·의성·청송·지례·의흥·성주·함양·대구·고령·영천·영해·청도·영덕·현풍·초계·합천·안음·창녕·경주·밀양·칠원·의령·산음·창원·함안·진주·김해·울산·양산·곤양·고성·하동·사천·남해·거제 등이 해당하며, 평안도는 중화·평양·상원·함종, 함경도는 안변·함흥·홍원·회령 등이 책판이 만들어진 지역으로 유명하였다. 이들 지역은 각 도의 행정 중심지였는데, 정치의 중심지와 출판문화의 중심지가 거의 일치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후기에 이르면 서적의 인쇄처가 거의 전국으로 늘어나서, 대부분의 군현에서 책판의 개판이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판 주체도 다양해져서 관서, 서원, 사찰, 사가(私家), 방각(坊刻)에서 책판이 만들어졌다. 정조 때에 전국의 책판을 조사 수록한 『누판고』에 의하면 전국 책판 610종 가운데 중앙 관서의 것이 11개 처 80종, 지방 관서의 것이 79개 처 356종이었다.

지방 관서의 책판으로는 경상도가 29개 처 124종, 전라도 21개 처 76종으로 영·호남 지역이 다른 지역보다 수적으로 우세하였다. 서원판은 경상도 127종, 충청도 22종, 전라도 21종, 황해도 8종, 경기·평안·함경도가 각각 2종으로 경상도의 서원 판본이 가장 많은데, 그중 도산서원(陶山書院)이 17종인 점이 눈에 띈다. 사찰판은 남한 개원사(14종), 합천 해인사(13종), 전주 위봉사(13종), 북한산 태고사(13종) 등이 많은 종류의 책판을 소유하고 있었다.

사가판은 문중을 중심으로 판각된 것으로, 대부분 가문을 현창하기 위해 선조의 문집이나 전기를 간행한 것이었다. 방각본은 민간에서 판매를 목적으로 찍어낸 책으로, 판각 기술은 떨어졌으나 서점인 서사(書肆), 판매상인 책쾌(冊儈) 등과 함께 조선후기에 서적 유통의 한 부분을 담당하였다.

의의

우리나라는 목판 인쇄의 역사가 통일신라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만큼 책판도 종류가 다양하고 기술적·심미적인 면에서 뛰어난 것들이 많다. 책판은 정부 기관은 물론 전국의 사찰·서원·문중 등에서 판각되어 인쇄되고 보관되었으며,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책판명·소장처·보관 상태 등을 수록한 목록이 따로 만들어졌다. 이들 책판과 책판 목록을 통해 그 지역의 인쇄 문화 수준뿐 아니라 목록서를 작성할 당시의 서지적인 인식 수준도 알아볼 수 있다.

참고문헌

  • 정형우·윤병태 편, 『한국책판목록총람』,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79.
  • 정형우·윤병태 편, 『한국의 책판목록』, 보경문화사, 1995.
  • 한국국학진흥원 편, 『기록문화와 목판의 세계』, 한국국학진흥원, 2003.
  • 한국국학진흥원 기초학문육성사업단 편, 『경북지역의 목판자료』, 한국국학진흥원, 2005~2006.
  • 한국국학진흥원 편, 『한국국학진흥원 소장 목판 목록집』, 한국국학진흥원, 2006.
  • 남권희, 『동아시아의 목판인쇄』, 한국국학진흥원, 2008.
  • 옥영정, 「책판목록을 통해 본 조선시대 선산지역의 목판인쇄문화 연구」, 『서지학연구』34, 2006.
  • 유탁일, 「책판의 연구영역 설정과 그 과제」, 『국학연구』6, 2005.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역사용어시소러스(http://thesaurus.history.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