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쾌(冊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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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상업적인 목적으로 서적의 매매를 중개하던 전문 서적상.

개설

조선후기에 서적을 상품으로 인식하게 되면서 책의 상업적 거래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고객과 흥정하고 서적 매매를 중개하는 상업적 유통업자인 책쾌(冊儈)가 등장했다. 조선시대에는 책을 중시한 데 비해 서점업이나 세책업(貰冊業)이 발달하지 못하고 지역 간 교류 및 유통 또한 활발하지 못했기 때문에, 책쾌가 서적 공급 및 수요 창출에 기여한 바가 크다. 책쾌는 오늘날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서적 외판원과 유사하다.

내용 및 특징

서점이나 세책점 등 책의 유통 체계가 갖춰지지 못한 조선시대에 책의 거래를 통해 지식 문화의 확산에 일정 부분 기여한 주체가 바로 책쾌였다. 세책점이 18세기 이후에야 등장하고 민간 서점은 19세기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본격적으로 설립되는 시대 상황에서, 책쾌는 국가의 검열과 통제 아래 개인적으로 서적을 주고받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중간자 노릇을 담당하였다.

책쾌는 서쾌(書儈)·서책쾌(書冊儈)·책거간(冊居間) 등으로도 불렸다. 박제가의 『북학의(北學議)』, 황윤석(黃胤錫)의 『이재유고(頤齋遺稿)』, 이건창(李建昌)의 「혜공(惠岡) 최공전(崔公傳)」 등에서는 이들을 서쾌라고 불렀다. 그에 비해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등 국가의 공식 문헌이나, 16세기 후반에 미암(眉巖)유희춘(柳希春)이 쓴 『미암일기(眉巖日記)』, 18세기 후반에 유만주(兪晩柱)가 쓴 일기 『흠영(欽英)』, 그리고 정조의 시문집인 『홍재전서(弘齋全書)』 등 다수의 문헌에서는 책쾌라고 표현하였다.

책쾌 중에는 서울에서만 활동한 이들이 많았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조신선(曺神仙)이다. 조신선은 거질(巨帙)의 책을 소매에 넣고 성 안을 돌아다니면서, 필요할 때마다 바로 꺼내 보여 주는 방식으로 거래를 했다. 더욱이 그는 ‘박아한 군자’와 같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책의 저자·주석자·권수·책수·문목 등의 서지 정보는 물론이고, 책의 소장자나 소장 연도까지 줄줄이 파악하고 있었다. 이처럼 서적 중개만을 전문으로 한 이들은 ‘전문가형 책쾌’라 부를 만하다.

그에 비해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거래하는 책쾌도 있었고, 지방 도시만을 집중적으로 돌며 영업하는 이들도 있었다. 영조대에는 특별히 명을 내려 불온서적이 지방에까지 유통되지 않도록 하고 포도청으로 하여금 책쾌를 철저히 조사해 서적의 유통을 금지하게 하였는데, 이 조치만 보더라도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서적을 유통시키던 책쾌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지방 도시에서 영업을 한 책쾌는 주로 지방 장시나 지방에 거주하는 지식인 양반 집을 돌아다니며 서적을 거래하였다.

서적 매매 외에 다른 업종의 일까지 겸하는 책쾌도 있었다. 서점이나 세책점, 인쇄소 같은 별도의 출판 및 유통업에 종사하며 책쾌 노릇도 했는데, 이들은 ‘겸업형 책쾌’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에 책쾌로 활동하다가 ‘화산서림’이라는 서점을 차리고 경영까지 했던 이성의(李聖義) 같은 이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또한 중인, 심지어는 양반임에도 불구하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임시로 책쾌 노릇을 한 이들도 있었다. 영조대에 책쾌 노릇을 한 양반 이양제(李亮濟)나, 독서와 학문에 힘썼으나 집이 가난해 ‘붓 가게나 책 가게가 있는 거리[筆肆冊市之間]’를 다니며 생계를 이어간 중인 홍윤수(洪胤琇) 같은 이들을 예로 꼽을 수 있다. 이들은 ‘지식인형 책쾌’라고 할 수 있다.

변천

16세기 초에 김흔(金訢)이 지은 시에 등장하는 ‘매서인(賣書人)’이 책쾌의 존재를 짐작케 하는 최초의 문헌 기록이다. 그 후 임진왜란 이전인 1567년(선조 즉위)에서 1577년(선조 10)까지 유희춘이 쓴 『미암일기』를 통해 책쾌의 존재와 그들의 영업 방식을 파악할 수 있다. 유희춘은 박의석(朴義碩)과 송희정(宋希精)이라는 책쾌를 통해 책을 구하곤 했다. 책쾌는 서책을 반가(半價)로 사서 전가(全價)로 파는 방법으로 이익을 취했다.

책쾌는 모든 곳의 서책[諸處書冊]을 취급 대상으로 삼았다. 책을 사거나 팔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가리지 않고 달려가 매매를 하였다. 특별히 사회의 중·상류층 지식인과 장서가, 사적으로 서적 구입을 희망하는 이들이 주요 고객이었다. 책쾌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새로운 책을 먼저 가져와 보여 주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고객이 필요로 하는 책에 대한 정보를 듣고 충분히 의논한 뒤, 지식인 독자들이 당시 관심을 갖고 있던 서적 중 쉽게 구할 수 없는 책들을 구해다 주기도 하였다. 따라서 책쾌는 서책의 서지 사항 및 내용에 정통하고, 최소한의 문자 독해 능력을 지니고 있어야 했다.

이들은 『궐리지(闕里誌)』·『천원발미(天源發微)』 등의 중국 서적과, 『국조보감(國朝寶鑑)』·『태평통재(太平通載)』 등의 국내 서적을 모두 취급하였다. 중국 서적은 16세기부터 공식 혹은 비공식적인 경로를 거쳐 국내에 유입되었는데, 서적 수입의 중심 역할은 역관이 맡았다. 그에 비해 책쾌는 들어온 서적을 국내에 유통시키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16세기 말과 17세기 초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전란으로 인해 서적 유통이 위축되었을 법도 하지만, 오히려 중국에서 더 많은 소설과 서적들이 유입됨에 따라 책쾌의 활동 역시 이전보다 더 활발하게 나타났다.

18세기는 책쾌의 최고 전성기로, 서울에서만 수백명의 책쾌가 활동할 정도였다. 1771년(영조 47)에는 책쾌가 『명기집략』 등의 불온서적뿐 아니라 중국의 일반 서적까지 유통시킨 사실이 드러났다(『영조실록』 47년 5월 26일). 이 사건의 여파로 100명이나 되는 책쾌와 상역(象譯)이 죽었다(『영조실록』 47년 6월 2일). 이때 죽음을 모면한 조신선은 신선으로 불릴 만큼 책쾌로서 명성이 자자했다.

영조 및 정조대에는 역관들의 서적 수입이 금지되거나 검열이 강화되면서 서적 유통이 위축되기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활기를 띠게 되었다. 19세기의 실학자 최한기(崔漢綺)는 좋은 책을 구해 읽는 데 온 힘을 쏟고, 다 읽은 책은 다시 헐값에 팔아 버렸다. 그런 까닭에 그는 많은 책을 사고팔기 위해 여러 책쾌와 거래를 하였다. 또한 18세기 이후에는 경화세족을 중심으로 장서가가 다수 생겨났는데, 이들은 개인적으로 많은 책을 입수하기 위해 책쾌와 직접 거래를 시도하였다. 조선시대 후기의 장서 문화는 책쾌를 통해 형성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는 근대식 서점이 등장할 뿐 아니라 다양한 매체를 통해 지식을 습득할 수 있게 되면서, 사사로이 도서를 거래하는 일이 점차 줄어들었다. 그에 따라 20세기 전반기에 활동한 책쾌들은 대개 학자나 문인, 식자층 등에게 일반인이 구하기 어려운 고서나 고문헌 자료를 구해 주는 방식으로 영업을 하였다. 이성의(李聖儀)를 비롯해 송신용(宋申用)·한상윤(韓相允)·김효식(金孝植) 등이 이 시기에 활동한 대표적인 책쾌들이다. 이들은 학자나 전문 연구자, 도서관, 고서점 등을 상대로 고문서를 거래하면서,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산재해 있던 서적들을 모으는 역할을 하였다.

의의

문화 사회사적 관점에서 볼 때, 책쾌의 존재와 역할은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첫째, 책쾌는 서적의 상업적 유통을 가능케 한 주체라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서점과 세책점을 대신할 뿐 아니라, 서적 거래 희망자들의 사적인 요구에 부응해 국내외의 각종 서적을 구해 공급해 주고 일정한 이윤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책쾌의 국내 활동은 중국 서적 및 고서를 쉽게 구입, 향유할 수 있게 하는 초석이었다고 할 수 있다.

둘째, 독자의 반응을 세책업자나 작자, 필사자에게 전달함으로써, 상업적 유통과 출판에 필요한 정보원 노릇을 수행했다.

셋째, 특정 수요자, 즉 상층 독자라 할 수 있는 지식인과 장서가를 주요 고객으로 삼아 그들의 독서욕을 충족시켜 줌으로써, 장서 문화와 지식 사회 발달에 영향을 미쳤다.

넷째, 당시 상층 지식인의 독서 지형도 형성 및 서적 출판의 형성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다섯째, 조선시대 후기에 일어난 지식의 확산과 전파, 독자층의 확대 등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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