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참(朝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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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문무백관들이 조정에 나가 왕에게 문안을 하던 조회.

개설

조참은 조선시대에 문무의 관원들이 궁궐의 조정에 나가 왕에게 사배례(四拜禮)를 행하고 왕명을 받는 조회(朝會) 의식이다. 매월 네 차례, 5일·11일·21일·25일에 행하였다. 당상관 위주의 소수 관원이 참여하는 상참(常參)에 비해 조참의 참여 관원은 당하관까지 광범위하였다.

내용 및 특징

조참은 중앙에 있는 문무백관들이 정전(正殿)에 모여 왕에게 문안드리는 조회의 하나로 행해진 의식이다. 조선 초부터 행해져 『세종실록』「오례」에는 ‘오일조참의(五日朝參儀)’로 수록되었고, 이후 지속적으로 시행되었다. 매일 왕에게 문안드리는 상참 의식에 참여하는 신하가 제한된 반면 조참 의식에 참여하는 신하들의 폭은 훨씬 커서 서울에 있는 관리의 상당수가 참여하였다.

구체적인 절차는 『국조오례의』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조참 1일 전에 액정서(掖庭署)에서 어좌(御座)를 근정문(勤政門)에 남향하여 설치하고 향안(香案) 2개를 설치한다. 전의(典儀)는 문관 2품 이상과 3품 이하의 자리를 영제교(永濟橋)의 북쪽과 남쪽에 각각 설치한다. 또 감찰·좌·우통례·전의·찬의(贊儀)·인의(引儀)·종친 및 무관의 자리를 각각 방향에 맞추어 설치한다.

초엄(初嚴)이 울리면 병조는 노부소장(鹵簿小仗)을 중도(中道)와 전정(殿庭)에 진설하고 군사를 규정대로 배열한다. 사복시정(司僕寺正)은 어마(御馬)장마(仗馬)를 진설한다. 종친과 문무백관이 상복(常服) 차림으로 조당에 모인다.

이엄(二嚴)이 울리면 종친과 문무백관은 문외위(門外位)로 나아가고, 호위하는 관원들은 각각 기명과 복색을 갖추어 합문 밖으로 나간다. 좌통례가 중엄(中嚴)을 계청하면 왕은 익선관에 곤룡포를 갖추고 사정전(思政殿)에 거둥하는데 산선(傘扇, 繖扇)과 시위(侍衛)는 평상과 같다.

삼엄(三嚴)이 울리고 북소리가 그치면 모든 종친과 문무백관이 들어와 배위(拜位?)에 나아간다. 좌통례가 바깥의 준비가 다 되었음을 아뢰면 왕은 여(轝)를 타고 나와서 근정문 앞의 어좌에 오른다. 모든 종친과 문무백관이 국궁(鞠躬) 사배(四拜)를 하고 일어나 몸을 바로 한다. 모든 종친과 문무백관이 국궁 사배를 하고 일어나 몸을 바로 하고 물러나 자리로 돌아간다. 왕은 여를 타고 사정전으로 돌아간다. 모든 종친과 문무백관이 차례로 나간다.

조참은 시기에 따라서 구체적인 절차에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또 조참이 시행되는 공간인 궁궐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었다. 조참은 상참과는 달리 많은 관원과 군사, 악공 등이 동원되는 대규모 행사였으므로 사헌부나 사간원의 관원이 참여하여 기강을 잡기도 하였다. 조참은 이런 성격으로 인해 실제적인 정무를 행하는 행사라기보다는 왕에게 의례를 올리는 의식이 되었다.

변천

조참은 조선 초 태종 때에는 한 달에 6번 아일(衙日)에 조회를 하였다(『태종실록』14년 8월 27일). 그러나 세종 때 5일 조참으로 바뀌면서 한 달에 4번 시행하게 되었고 이후 이것이 의례로 되었다(『세종실록』 오례 가례 의식 오일 조참의).

참고문헌

  • 『經國大典』
  • 『大典會通』
  • 『國朝五禮儀』
  • 강제훈, 「조선 성종대 조회 의식과 조회 운영」, 『한국사학보』27, 2007.
  • 홍순민, 「조선 후기 관원의 궁궐 출입과 국정 운영」, 『역사비평』76,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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