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절(俗節)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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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속절 |
한글표제 | 속절 |
한자표제 | 俗節 |
상위어 | 제사(祭祀) |
동의어 | 속절제(俗節祭), 속제(俗祭) |
관련어 | 금형일(禁刑日), 사맹월(四孟月), 삭망일(朔望日), 오향대제일(五享大祭日) |
분야 | 생활·풍속/풍속/행사 |
유형 | 의식·행사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고려~조선 |
집필자 | 김자운 |
시행기관 | 예조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속절(俗節)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정조실록』 4년 4월 8일 |
철을 따라 지키는 풍속 상의 명절.
개설
속절(俗節)은 매개 시기의 관행과 지역의 풍속에 따라 차이가 있다. 속절에 지내는 제사를 속절제(俗節祭)라고 한다. 제사를 기준으로 보면 속절은 공식적인 제삿날 이외에 철을 따라 사당이나 묘소에서 차례를 지내는 날이라고 할 수 있다. 곧 설날·한식·단오·추석·중양·동지 등이 해당된다. 그중에서도 사중월속절(四仲月俗節)이라고 하여 봄에 한식, 여름에 단오, 가을에 추석, 겨울에 동지 등을 꼽는다. 왕실에서는 사시(四時), 즉 1월, 4월, 7월, 10월의 사맹월(四孟月)의 상순과 납일(臘日) 등 오향대제일(五享大祭日) 및 삭망일(朔望日) 이외에 제사지내는 날을 속절이라고 하였다.
연원 및 변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친향의(親享儀)」 소주(小註)에 속절은 정조(正朝)·동지·한식·단오·중추 등이라고 하였다. 왕실에서는 오향대제(五享大祭), 즉 사맹월의 상순 및 납일에 지내는 종묘대제와 삭망제(朔望祭) 외에 속절에 지내는 제사가 있다. 정조 등 5개 속절에 상원(上元)·중원(中元)·칠석(七夕)·중양(重陽) 등이 추가된다.
정동유(鄭東愈)는 『주영편(晝永編)』에서 유두(流頭)를 우리 고유의 속절로, 그리고 2월 초하루를 민중들의 절일(節日)로 보았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도 “내가 생각건대 고려명종 때의 학자 김극기(金克己)가 쓴 『김거사집(金居士集)』 중에 ‘경주의 옛 풍속에 6월 보름날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아 불길한 것들을 씻어 버리고, 그 자리에서 재앙을 물리치는 제를 지내고 술을 마시는데 이것을 유두연(流頭宴)이라고 한다.’고 했다. 지금 조선 풍속에서도 이것을 이어받아 속절로 삼고 있다. 경주에는 아직도 이런 풍속이 남아 있다.”고 하였다.
고려시대에 제사와 관련한 속절일(俗節日)로는 1015년(고려 현종 6) 정월 초하루와 오월 단오에 돌아가신 조부모와 부모에 대한 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고, 『고려사』「형법(刑法)」 금형조(禁刑條)에 고려의 속절로 원정(元正)·상원·한식·상사(上巳)·단오·팔관회·추석·중구·동지 등을 들었다.
조선에 들어오면 사대부가에서는 『주자가례(朱子家禮)』를 따르게 된다. 하지만 그것도 중기 이후의 현상으로서 시행되기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걸린 데다 수용 방식도 제각기 달랐다. 특히 속절 및 그에 따른 가례 행사에 대해서는 주자가 제시한 중국의 것과는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었으리라는 점은 자명하다. 『주자가례』에 따르면 속절은 청명·한식·중오(重午)·중원·중양 등이다. 이문건(李文楗)의 『묵재일기(黙齋日記)』를 보면 그는 상원과 초파일을 속절로 여겨 시식(時食)으로 신주 앞에서 천신(薦新)하였다.
절차 및 내용
고상안(高尙顔)은 『태촌집(泰村集)』 「유훈조(遺訓條)」에서 속절 제사는 시식을 올리는 것인데, 요즈음에는 속절 중에도 경중의 차이를 두어 정조·한식·단오·추석 등과 같은 경우는 중하게 여기고, 상원·답청·칠석·중원·중양·납일·동지 등과 같은 속절은 가볍게 여긴다고 하였다. 다음은 속절 제사의 간략한 내용이다.
○ 정조: 만두와 떡국[湯餠]을 쓰고 제물은 시사(時祀)보다 낮게 써도 좋다.
○ 한식: 묘제(墓祭)를 지낸다. 제물은 시사 때와 동일하게 쓴다.
○ 단오: 각서(角黍)로 떡을 대신하고, 어육은 적(炙) 1미와 탕(湯) 2미를 올린다.
○ 추석: 밀가루떡[糆餠]을 쓰고, 나머지는 단오 때와 같다.
○ 상원: 약밥[藥飯]을 올리고, 김치[沈菜] 및 어육 각 1미를 올린다.
○ 답청: 전화병(煎花餠)을 올리고, 김치 및 어육 각 1미를 올린다.
○ 칠석: 연병(軟餠)을 올리고, 어육 각 1미를 올린다.
○ 중원: 햅쌀[新稻米]을 올리고, 어육 각 1미를 올린다. 이때 햅쌀을 구하지 못하면 상화떡[霜花餠]으로 대신한다.
○ 중양: 대추떡[棗糕]을 올리고, 어육 각 1미를 올린다. 이때 대추떡이 없으면 밤[栗]과 감[柿]으로 대신한다.
○ 동지: 팥죽[豆粥]이나 면병(糆餠) 중 하나를 올리고, 어육 각 1미를 올린다.
○ 납일: 면병을 놓고, 어육 각 1미를 올린다.
이상의 속절제 내용을 보면 묘제에 대해서는 한식 때만 언급하고 있다. 또한 정조와 한식을 단오와 추석보다 비중을 더 두어 작헌(酌獻)은 정조와 한식 때만 삼헌(三獻)을 하고 나머지는 단잔(單盞)만 올린다고 하였다.
생활·민속적 관련 사항
초파일은 조선에 들어와 사대부들 사이에서는 속절로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정조 때인 1780년(정조 4) 4월 8일에 왕이 이를 백성의 속절로 인정하고 삼법사(三法司)에 명하여 통금을 풀었다(『정조실록』 4년 4월 8일).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 『묵재일기(黙齋日記)』
- 『주영편(晝永編)』
- 『주자가례(朱子家禮)』
- 『태촌집(泰村集)』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