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형(象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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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육서의 하나로, 물체의 형상을 본떠서 글자를 만드는 방법.

개설

상형(象形)은 물체의 형상을 본떠서 글자를 만드는 방법으로, 인류 문명의 초기에 이미 문자를 만드는 기본 원리로 적용되었다. 인간의 기록에 대한 필요와 열망은 문자의 창안으로 이어졌는데, 초기 단계에는 소위 그림문자, 회화문자(繪畵文字)의 형태로 생활과 주변 환경 등을 묘사하는 방식이었으나, 이후 차츰 단어 단위의 문자를 이루면서 상형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상형의 방법은 고대 한자와 고대 이집트 문자에서 특히 많이 사용되었으며, 메소포타미아와 마야 문명 등의 문자에서도 상형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음소문자(音素文字)로 분류되는 훈민정음도 기본자의 경우 자음은 발음 기관의 모양을, 모음은 천지인삼재(天地人三才)를 본떠서 만들었으므로, 상형문자의 일면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상형은 한자 육서(六書)의 하나이다. 한자 육서란 한자의 구조 및 사용에 관한 여섯 가지의 명칭으로, 상형(象形)·지사(指事)·회의(會意)·형성(形聲)·전주(轉注)·가차(假借)를 말한다.

내용 및 특징

상형은 인류의 문자사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문명의 발달 과정에서 흔적을 남기고 싶었던 인류의 표현 욕구는 가장 먼저 문자를 통해 나타났으며, 그 일차적 단계가 실제 사물의 모양과 근접하게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회화문자가 성립하였으며, 이후 한 단계 발전하여 단어문자(單語文字)로 접어드는 과정에서 상형문자가 등장하였다. 중국의 한자, 이집트의 신성문자(神聖文字), 수메르 문자 등이 여기에 속한다.

중국 한자의 상형은, 한자 성립 초기 단계에서 나무의 모양을 본떠 만든 ‘목(木)’ 자를 비롯해 해·달·산·물 등 일상에 가까운 대상과 자연의 형상을 본떴다. 이후 서체가 예서(隸書)해서(楷書)의 단계로 발전하면서 추상화의 과정을 거침에 따라 사물과의 상사성(相似性)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상당수의 한자에는 상형의 흔적이 남아 있다. 후한(後漢) 때 허신(許愼)이 편찬한 중국 최초의 자전 『설문해자(說文解字)』에는 총 9,353자의 한자가 수록되어 있는데, 육서에 근거하여 각 글자의 자형을 분석하면 이 가운데 364자가 상형에 해당한다. 형성과 회의에 이르러 비로소 한자의 통일성과 글자 수의 확장이 이루어졌지만, 한자 형성 초기에는 지사(指事)와 더불어 상형이 글자를 만드는 주된 방법이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주도한 수메르 인은 농산물과 천체, 자연현상, 동식물 등의 모양을 본떠서 시각적으로 잘 정돈된 상형문자들을 개발해 오랜 기간 동안 사용하였다. 농산물이나 공작품 등을 기록하기 위해 사용된 상형문자는 이후 선형문자(線形文字)와 설형문자(楔形文字)의 모태가 되었으며, 인근 지역에까지 널리 퍼져 기록의 수단으로 쓰였다.

신성문자로 불리는 이집트의 히에로글리프는 5,000년 전에 주변 사물을 본떠서 만든 상형문자로, 장기간 동안 특히 사제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사용되었다. 변형된 사람의 얼굴 모양과 장식 등의 상형으로 특징지어지는 중앙아메리카의 마야와 아즈텍 문명에서도 돌기둥이나 파피루스 등에 새겨진 상형문자가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 이처럼 고대 문자의 발생기에는 주로 상형이 제자(制字)의 기본 원리로 적용되었으며, 특히 생활과 자연에 밀접한 사물들을 묘사하는 데서 비롯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글도 상형과 관련이 적지 않다. 한글은 표음문자(表音文字)이지만, 자모(字母)를 창제하는 과정에서 상형의 원리를 제자의 기본으로 채택하였다. 자음과 모음의 기본자를 창제할 때 각각 발음 기관과 삼재를 본떴다는 사실은 『훈민정음』「제자해(制字解)」에 명시되어 있다. 훈민정음 자음 제자의 기본자는 ‘ㄱ, ㄴ, ㅁ, ㅅ, ㅇ’의 다섯 글자인데, 이들은 각각 어금닛소리인 아음(牙音), 혓소리인 설음(舌音), 입술소리인 순음(脣音), 잇소리인 치음(齒音), 목구멍소리인 후음(喉音) 계열을 대표하는 글자이다. ‘ㄱ’의 경우는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고 있는 모양’을 본뜬 것으로, 연구개 파열음인 ‘ㄱ’이 터트려지기 직전의 혀 모양을 글자에 반영한 것이다. ‘ㄴ’은 ‘혀가 윗잇몸에 붙어 있는 모양’을, ‘ㅁ’은 ‘입 모양’을, ‘ㅅ’은 ‘이빨 모양’을, 그리고 ‘ㅇ’은 ‘목구멍 모양’을 각각 본뜬 것이다. 이러한 훈민정음 자음의 모양은 음성학적 이해를 갖춘 사람이라면 곧 해당 글자의 발음과 발음 위치를 추론해 낼 수 있게 한다. 한글을 제외하면, 현존하는 어떤 문자에서도 발음 기관과 발성 시의 모양을 문자로 추측할 수 있는 사례는 없기 때문에 한글을 독창성이 뛰어난 문자로 평가하는 근거가 된다.

한편, 모음은 ‘·, ㅡ, ㅣ’가 제자의 기본자인데, 이들은 삼재 즉 천·지·인을 각각 본뜬 것이다. ‘·’는 하늘의 둥글고 원만한 모양, ‘ㅡ’는 땅의 고르고 편편한 모양, ‘ㅣ’는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 곧게 서 있는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다. 이를 바탕으로 하늘이 땅의 위와 아래에 각각 있는 모양을 본떠서 ‘ㅗ, ㅜ’를 만들고, 다시 하늘이 사람의 안과 밖에 놓인 형상을 본떠서 ‘ㅓ, ㅏ’를 만들었는데, 이는 한자의 육서 중 지사와 흡사한 방식이다. 여기에 다시 반모음인 [j]와 결합한 ‘ㅑ, ㅕ, ㅛ, ㅠ’를 더하여 11모음을 갖추었다. 당시의 철학 이론인 삼재론을 바탕으로 모음의 모양을 정한 것은 매우 기발한 착상으로 평가할 만하다.

참고문헌

  • 『훈민정음(訓民正音)』
  • 스티븐 로저 피셔 지음, 박수철 옮김, 『문자의 역사』, 21세기북스, 2010.
  • 조옥구, 『21세기 新 설문해자』, 백암출판사,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