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경(金升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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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430년(세종 12)∼1493년(성종 24) = 64세]. 조선 전기 세조(世祖)~성종(成宗) 때의 문신. 승정원(承政院) 도승지(都承旨)와 사헌부(司憲府)대사헌(大司憲) 등을 지냈다. 자는 현보(賢甫)이다.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거주지는 서울이다. 아버지는 중추부(中樞府) 지사(知使)김신민(金新民)이고, 어머니 남양 홍씨(南陽洪氏)는 홍수명(洪守命)의 딸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개국공신(開國功臣)인 계림군(鷄林君)김곤(金稇)이다. 이재(吏才)에 뛰어나서 성종의 사랑을 받았는데, 특히 옥사(獄事)를 공평하고 민첩하게 처결하여 칭송을 받았다.

세조~성종 시대 활동

1456년(세조 2) 식년(式年) 문과에 정과(丁科)로 급제하였는데, 그때 나이가 27세였다.[『방목(榜目)』] 그는 급제하기 전부터 재주가 있다는 이름이 났고, 벼슬하고 나서부터 현명하다는 명망이 있었다.[『허백정집(虛白亭集)』 권3 「형조참판김공묘명(刑曹參判金公墓銘) 이하 「김승경묘비명」으로 약칭」]

세조 때 당하관(堂下官)으로 형조 정랑(正郞)과 호조 정랑을 역임하였고, 성종 때 종부시(宗簿寺)정(正)·봉상시(奉常寺) 정·사헌부 집의(執義) 등을 지냈다.(『세조실록』 6년 8월 17일),(『세조실록』 11년 7월 14일),(『성종실록』 2년 윤9월 22일),(『성종실록』 6년 8월 7일),(『성종실록』 8년 1월 13일) 당상관으로 병조 참의(參議)를 지냈으며, 승정원 동부승지(同副承旨)로 발탁되어 여러 번 옮겨서 승정원 좌승지(左承旨)에 이르고 승정원 도승지로 영전되었는데, 왕명의 출납을 잘한다고 칭찬을 받았다.(『성종실록』 8년 7월 17일),(『성종실록』 8년 8월 17일),(『성종실록』 9년 11월 14일),(『성종실록』 10년 10월 25일) 한성부우윤(漢城府右尹)을 거쳐 세 번 대사헌(大司憲)을 역임하였는데, 그때마다 조정의 기강을 숙정(肅正)하였다.(『성종실록』 12년 12월 13일),(『성종실록』 13년 윤8월 22일) 외직으로 나가서 경기도관찰사(京畿道觀察使)가 되었고, 내직(內職)으로 들어와서 호조 참판(參判)·예조 참판·공조 참판·형조 참판이 되었다. 김승경은 성종 때 중요한 관직을 맡아서 명성에 걸맞는 실적이 있었으므로, 성종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김승경묘비명」]

성품과 일화

김승경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성품이 어질고 신의가 있었으며, 행동이 신중하고 민첩하였다. 어버이를 효성으로 섬기고, 종족(宗族)을 인애(仁愛)로 대우하며, 벗에게 신의가 있어서 인륜을 져버리지 않았다. 임금에게 충성하고, 정사를 처리할 때 신중하였다. 이재가 뛰어났는데, 특히 옥사를 판결하는 데에 능하였다. 나라에서 죄수를 심의하여 처결할 때 의심스러운 문제가 있으면 반드시 김승경에게 맡겨 의혹을 밝히도록 하였는데, 김승경은 기꺼이 옥사를 맡아서 공정하고 민첩하게 처리하여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평생토록 옥사를 맡아서 현명하게 처리하는 수고를 하였으므로, 그 자를 현보라고 하였다.[「김승경묘비명」]

승정원에 있을 때에 여러 승지들은 모두 은대(銀帶)를 매는데, 성종은 특별히 김승경에게 금대(金帶)를 하사하여 허리에 매게 하였다. 사헌부 대사헌이 되었을 때 성종이 그 직무를 잘 수행하는 것을 훌륭하게 여겨 수찰(手札)을 내려서 격려하기를, “경이 내 마음을 알고, 내가 경의 뜻을 안다”고 하였다. 임금과 신하가 서로 크게 뜻이 맞았는데, 김승경의 품계가 참판에 머물고 판서(判書)에 오르지 못한 것은 두 사람이 비슷한 시기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죽은 뒤에 성종 때 최측근으로 활동하였던 것이 도리어 화근이 되어서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甲子士禍)> 때 연산군(燕山君)의 생모 윤씨(尹氏)를 폐비(廢妃)하는 데에 연루되었다고 하여 부관참시(剖棺斬屍)의 추형(追刑)을 받았다.[「김승경묘비명」]

묘소와 후손

묘소는 인천 주안리(朱岸里)의 언덕에 있는데, 홍귀달(洪貴達)이 지은 묘지명(墓誌銘)이 남아있다.[「김승경묘비명」]

부인 밀양 박씨(密陽朴氏)는 박준(朴峻)의 딸인데, 자녀는 3남 1녀를 낳았다. 장남 김전(金琠)은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보덕(輔德)을 지냈고, 차남 김영(金塋)은 사옹원(司饔院)봉사(奉事)를 지냈으며, 3남 김서(金瑞)는 상서원(祥瑞院) 부직장(副直長)을 지냈다. 딸은 참봉(參奉)이숭우(李崇禹)에게 출가하였다.[「김승경묘비명」]

참고문헌

  • 『단종실록(端宗實錄)』
  • 『세조실록(世祖實錄)』
  • 『성종실록(成宗實錄)』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국조방목(國朝榜目)』
  • 『허백정집(虛白亭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