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시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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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wseo21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2년 8월 15일 (월) 22:03 판 (생애 및 활동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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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모든 서씨 시조 서신일(徐神逸) 시제는 매년 11월 첫째주 토요일 오전 10시에 효양산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 산21(경기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 329)에서 거행된다. 서필 (徐弼)선생,서희 (徐熙)선생 시제는 매년 11월 첫째주 토요일 오후 2시에 경기 여주시 산북면 후리 166-1에서 거행된다.

이천 서씨는 통일신라 아간대부 서신일(徐神逸),내의령 서필(徐弼),내사령 서희(徐熙),문하시중 서눌(徐訥) 좌복야 서유걸(徐惟傑),평장사 서정(徐靖),우복야 서균(徐均) 판대부사 서린(徐嶙), 평장사 서공(徐恭) 추밀원사 서순(徐淳) 등 7대가 연속 재상이 되어 고려의 최고 문벌 귀족 가문으로 성장한다.

고려 초기에 나라의 기틀의 튼튼히 한 서필(徐弼)이다. 이어 손자 서희(徐熙)와 증손자 서눌(徐訥) 서유걸(徐惟傑) 서유위(徐惟偉) 서주행(徐周行), 고손자 서정(徐靖) 서존(徐存),서균(徐鈞) 서린(徐璘), 서원(徐元) 서공(徐恭) 서성(徐成) 서순(徐淳),서숭조,서희찬,서능(徐稜),서효손,서신계, 서린(徐鱗),서성윤,서념,서원경,서충,서신,서윤,서후상,서윤현 등이 15대를 이어 재상이 되었다.

대구달성서씨(달성 서씨 대구 서씨)(大丘達城徐氏) 계보는 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주행(徐周行 달성군)-서한(徐閈 군기소윤 종3품.차관)-서신(徐愼 이부판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무질(徐無疾 밀직사 종2품.부총리 재상)-서진(徐晉 판도판서 정3품.장관)-서기준(徐奇俊 문하시중찬성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영(徐穎 문하시중찬성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균형(徐鈞衡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 서익진(徐益進 판전객시사 종2품.부총리 재상)-서침(徐沈 조봉대부 정3품.장관) 서의(徐義 호조전서 정3품.장관) 이다

연산 서씨 계보는 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유걸(徐惟傑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존(徐存 병부상서 정3품. 장관)-서청습(徐淸習 판전의시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효리(徐孝理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찬(徐贊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희팔(徐希八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직(徐稷 연성군)-서준영(徐俊英 연성군)- 서보(徐寶 공조전서.정3품 .장관) 으로 이어진다.

부여 서씨 계보는 온조왕(溫祚王)-근초고왕(近肖古王)-무령왕(武寧王)-의자왕(義慈王)-부여융(扶餘隆)-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유걸(徐惟傑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존(徐存 병부상서 정3품. 장관)-서청습(徐淸習 판전의시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효리(徐孝理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찬(徐贊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희팔(徐希八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춘(徐椿 판내부사사 정2품.부총리 재상) 서박(徐樸 봉례공) 으로 이어진다.

남양당성 서씨(남양 서씨 당성 서씨) 계보는 서간(徐趕 태사.남양군. 종1품. 국무총리 재상)-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유걸(徐惟傑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존(徐存 병부상서 정3품. 장관)-서청습(徐淸習 판전의시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효리(徐孝理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찬(徐贊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희팔(徐希八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적(徐迪남양군)으로 이어진다.

 중화서씨(中華徐氏) 계보는 단군조선 여수기(余守己)-번한조선(番韓朝鮮) 서우여(徐于餘)-고조선(古朝鮮) 소호(少昊), 고도(皋陶), 백익(伯益)의 아들 약목(若木)-서국(徐國)에 30세 서구왕(駒王=徐駒王), 32세 서언왕(徐偃王)-진나라 재상 서복(徐福)-삼국시대(三國時代) 서선(徐宣),서유자(徐孺子; 徐穉) 서서(徐庶), 오(吳) 나라에는 서성(徐盛),부여 동명왕(東明王),백제 온조왕(溫祚王)근초고왕(近肖古王)무령왕(武寧王)의자왕(義慈王),신라 서두라(徐豆羅)- 남송(南宋) 서희(徐煕), 서도(徐道), 서도(徐度), 서숙향(徐叔嚮), 서중융(徐仲融), 서문백(徐文伯), 서사백(徐嗣伯)- 북제(北齊) 서지재(徐之才), 서임경(徐林卿), 서동경(徐同卿)- 원위(元魏) 서건(徐謇), 서웅(徐雄)- 수 나라 서민제(徐敏齊) -.명나라 말기 호족 서수휘(徐壽輝)청나라- 지리학자 서진객(徐震客),대학자 서광계(徐光啓)

서씨일가연합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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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어려서부터 효심이 지극했던 효자.

개설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입지(立之), 호는 전귀당(全歸堂).

생애 및 활동사항

어려서부터 조부모 및 부모 섬기기에 지극한 정성을 다하였으니, 맛있는 음식을 얻으면 반드시 부모님께 가져다 드렸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성을 지키기 위하여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집을 떠나자 15살 어린 나이로 홀로 집에 남아서 조상의 사당을 지켰고, 할머니와 어머니를 모시고 공산(公山)의 삼성암(三省菴)에 피난하였다.

정유재란 때는 산속에 피신시켜 걸어서 동래까지 왕래하면서 쌀을 구하여 부모를 공양하였다. 부사가 이를 가련하게 여겨 이웃 고을의 세미(稅米)를 바꾸어주었다. 당시 이호민(李好閔)이 그 지역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그 효행의 지극함에 감동하여 진상할 밀과(蜜果)·어육(魚肉) 등을 내려 할머니를 봉양하게 하고, ‘全歸(전귀)’의 두자로써 당호(堂號)하게 하였다. 1639년(인조 17) 참찬관(參贊官) 이경증(李景曾)이 그의 효행을 추천하여 관직에 제수되기도 하였다.

전란으로 학문을 못다한 것을 탄식하면서 서사원(徐思遠)·정구(鄭逑)·장현광(張顯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벼슬은 참봉에 이르렀다. 좌랑에 증직되고, 대구의 백원서원(百源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전귀당유집(全歸堂遺集)』이 있다.


전귀당유집(全歸堂遺集)

조선시대 학자 서시립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21년에 간행한 시문집.

2권 2책. 목판본. 1921년 후손 서석류(徐錫類)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유척기(兪拓基)의 서문이, 권말에 민겸(閔謙)·장석영(張錫英)의 발문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과 성균관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수는 삼성록(三省錄), 권1은 시 11수, 잠(箴) 4편, 수록실기(手錄實記) 1편, 부록으로 상량문·행장·묘갈명 각 1편, 만(挽) 10편, 제문 4편, 봉안문·상향축문(常享祝文) 각 1편, 권2는 역시 부록으로 수창시(酬唱詩) 91수, 서찰 12편, 행록 1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삼성록」은 저자의 할아버지 서언겸(徐彦謙)이 임진왜란 때 온 가족을 데리고 피난했던 일을 기록한 것이다. 1592년 4월 20일부터 1595년 9월 3일까지 그 때의 참담했던 일들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시는 모두 차운(次韻)한 것으로, 수량은 얼마 되지 않으나 수준이 높다. 잠은 「효자잠(孝子箴)」·「우애잠(友愛箴)」·「권학잠(勸學箴)」·「수기잠(修己箴)」 등으로, 자손들에게 훈계할 목적으로 쓴 것이다. 「수록실기」는 임진왜란 때 자신이 겪었던 일과 남에게 들은 이야기를 종합해 기록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