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식사전: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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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의 | |
| 氅衣 | |
| ckid | costume0532 |
|---|---|
| 한글 | 창의 |
| 한자 | 氅衣 |
| 영문(음역) | Chang-ui |
| 영문(의미) | King’s and official’s everyday clothes |
| 분류 | 일상복 |
| 성별 | 남 |
| 시대 | 조선 |
| 연령 | 성인 |
| 신분 | 왕족, 사대부 |
| 데이터 소스: ☞ 한국연구재단 한국복식사전 【창의】 | |
정의
- 조선 후기 왕과 관리가 평상시에 입던 옷
- King’s and official’s everyday clothes worn during the late Joseon dynasty
해설
창의는 ‘대창의(大昌衣)’라고도 한다. 문헌 기록으로 조재삼(趙在三, 1808-1866)의『송남잡지(松南雜識』(1855)에는 창의의 기원과 뒤트임에 대해 간략히 언급하고 있는데 “장복(章服)의 받침옷으로 입는 창의는 도포의 뒷자락을 제거하여 만들어 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식자(識者)들은 “뒤가 트여져 북쪽이 허약해짐을 우려했는데 때를 맞추어 병자호란이 일어났다.”고 하였다. 임진란 이후 왕과 사대부의 외출복, 연거복(燕居服), 백관의 조복(朝服)과 제복(祭服), 단령(團領)의 받침옷으로 입기도 했다. 창의의 형태는 곧은 깃에 소매가 넓은 두리소매이며, 길 양옆에는 넓은 삼각무가 달려 있어 크고 풍성한 옷이며, 뒷트임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트임이 있는 옷은 트임 위치에 따라 명칭을 달리하는데, 뒷중심 솔기에 트임이 있는 창의가 가장 대표적이다. 무의 옆선만 트이고 소매가 넓은 옷으로 중치막[中赤莫]이 있으며, 중치막과 같은 옆선이 트여있고 소매가 좁은 것은 소창의(小氅衣), 뒷중심 솔기와 무의 옆선이 모두 트이고 소매가 좁은 옷으로 협수(狹袖)가 있다. 조선시대 출토복식을 통해 본 창의는 시대가 올라 갈수록 뒷트임이 길어 허리부분에 있으며, 시대가 내려가면 뒷트임도 내려가 트임의 길이가 짧아진다. 사대부가 외출할 때는 갓을 쓰고 세조대(細絛帶: 끈목으로 만든 실 띠)를 띠며 평상복에 신던 혜(鞋)나 태사혜(太史鞋)를 신었다. 국말 의복개혁 때 다른 소매 넓은 옷과 함께 착용이 금지되었다. 17C의 김확(金矱, 1572-1653)의 묘에서도 창의가 3점 출토되었는데 뒤트임이 있다. 18C의 의원군(義原君, 1661-1722)의 창의는 겹옷이며 3점 모두 뒤트임이 있다.
참고문헌
- 이은주.조효숙.하명은, 2006, 『17세기의 무관 옷 이야기』, 서울: 민속원 【REF0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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