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식사전: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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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비 | |
| 半臂 | |
| ckid | costume0448 |
|---|---|
| 한글 | 반비 |
| 한자 | 半臂 |
| 영문(음역) | Ban-bi |
| 영문(의미) | Outer clothes or upper garment |
| 분류 | 일상복 |
| 성별 | 남녀공용 |
| 시대 | 통일신라, 고려, 조선 |
| 연령 | 성인 |
| 신분 | 군인, 귀족, 사대부, 무동 |
| 데이터 소스: ☞ 한국연구재단 한국복식사전 【반비】 | |
정의
- 소매가 짧은 남녀용 덧옷
- Short-sleeved clothes; upper garments worn during the Unified Shilla period (654~935)
해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3 잡지(雜志) 2 색복(色服) 조에 기록되어 있는 통일신라 흥덕왕 9년(834) 복식금제에 처음 ‘반비’ 명칭이 보인다. 남녀가 함께 착용하였는데 내의 위에 혹은 표의 안에 입었다. 남자의 경우, 진골대등(眞骨大等)은 표의(表衣)와 마찬가지로 계(錦)·수(繡)·금(錦)·라(羅)를 사용할 수 없었으며 오두품(五頭品)은 내의와 동일한 소문릉(小文綾)·시(絁)·견(絹)·포(布)를 사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두품(四頭品) 시·견·면주(綿紬)·포를 사용하도록 하였다. 여자의 반비는 남자의 옷감보다 좋은 것을 사용할 수 있었는데 진골녀(眞骨女) 반비는 계·수·금·라를 사용할 수 없었으며 육두품녀(六頭品女)는 계·수·금·라·세라(繐羅)를 사용할 수 없었다. 오두품녀(五頭品女) 는 계·수·금·야초라(野草羅)·세라를 사용할 수 없었으며 사두품녀(四頭品女)는 소문릉·시·견 이하를 사용할 수 있었다. 일본 정창원(正倉院)에는 반비 유물이 전해지고 있어서 그 모습을 짐작해 볼 수 있는데 좁은 깃이 달리고 100cm가 약간 넘는 길이에 짧은 소매가 달린 옷이다. 교임으로 착용하여 돌띠처럼 길게 달린 고름을 허리에 둘러 입는데 특히 길 부분과 허리 아래 부분이 소재가 다른 것이 특징이다. 한편 고려시대에도 반비를 입었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원나라 『궁사(宮詞)』 중에 고려양(高麗樣)인 방령 반비가 원나라에서 유행하였다고 하는 기록이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권60 앙엽기(盎葉記)에 보이는데 일본 정창원에 있는 반비와는 형태가 다른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고려사(高麗史)』 권132에는 신돈(辛旽, ?-1372)이 반비를 입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조선시대에도 반비가 있었는데 비갑(比甲) 등의 명칭으로 방령 반비와의 관련성을 짐작할 수 있다. 비갑이나 괘배처럼 짧은 길이의 반비도 있었으나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권8 흉례(凶禮)에 답호[褡複]를 ‘반비의(半臂衣)’라고 한 것을 보면 답호처럼 길이가 긴 반비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순조(純祖) 28년(1828)의 『무자진작의궤(戊子進爵儀軌)』에는 첨수무(尖袖舞)를 추는 무동(舞童)이 반비의를 입었다고 하는데 그 도상에 ‘반비’로 기록되어 있으며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사소절(士小節)에는 아무리 덥더라도 반비만 입지 말라고 하는 대목이 보인다. 따라서 반비라는 옷은 시대에 따라 형태가 다르지만 간편하게 덧입을 수 있는 옷이라는 공통점을 보인다.
도판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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