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사복시(內司僕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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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왕의 말과 수레를 관리하던 궁궐 내의 관청.

개설

조선시대에 여마(輿馬)구목(廐牧) 및 목장을 관리하는 관청으로 사복시(司僕寺)가 있었다. 이를 외시(外寺)라 하고, 왕의 어승마(御乘馬)와 수레 등을 관리한 내사복시(內司僕寺)를 흔히 내시(內寺) 또는 내구(內廐)라고 하였다. 내사복시에는 분사(分司)로서 덕응방(德應房)을 두어, 궁궐 내의 승여(乘輿)와 말안장 등에 관한 사무를 맡아보게 하였다. 내사복시에서 관리하는 마필에 대해 초기에는 일정한 규정이 없었으나, 1450년(문종 즉위)의 사복시 마필 검사 조목에 의하면 덕응방의 관장 아래 평상시에는 20필, 바쁠 경우엔 30필을 교대로 타도록 하였다. 『관직명사전』에 따르면, 내사복시에서는 어승마(御乘馬) 30필, 재보마(載寶馬) 15필, 주마(走馬) 15필을 관리했다고 한다.

설립 경위 및 목적

1394년(태조 3) 김사형에게 홀적방동(忽赤房洞)에 내구를 짓게 하여 내구 및 어승(御乘)을 관장하게 하였다. 이후 사복시 부속 관아의 하나로, 특히 궁궐 안에 별도의 내사복시를 설치하여 내구·어승을 담당하게 하였다. 관원으로는 내승(內乘) 3명을 두었는데, 그중 1명은 사복시정(司僕寺正)이 겸하였다. 연산군 때 7명을 증원하였으나, 중종이 즉위한 뒤 도로 감하였다가 경희궁으로 이어(移御)할 때 다시 1명을 더 두었다. 이속으로는 외사복시에서 차출한 서리(書吏) 5명을 두었다. 내사복시는 어승마의 조련 및 관리, 관마(官馬)와 사마(私馬)의 조련 외에 왕을 배종(陪從)하고 호위하는 임무도 함께 수행하였다.

조직 및 역할

관원으로는 내승 3명이 있었는데, 그중 1명은 사복시의 정(正)이 예겸(例兼)하고, 나머지 2명은 종2품 가선대부(嘉善大夫)로부터 9품까지의 관원이 겸하였다. 왕이 경희궁으로 이어할 때는 1명을 추가로 차출하였다. 7품 이하의 참하관(參下官)은 600일의 근무 일수를 채우면 출육(出六) 즉 6품으로 승진하였다. 잡직(雜職)으로 마의(馬醫) 1명, 이마(理馬) 4명, 양마(養馬) 6명, 견마배(牽馬陪) 21명, 거달(巨達) 57명이 있었으며, 이속으로는 서리 4명, 연직(輦直) 3명, 대청직(大廳直) 1명, 마방군사(馬坊軍士) 1명이 있었다.

내사복시에 소속된 마필[馬籍]은 어승마 30필, 재보마 15필, 주마 15필 등이었다. 그러나 1508년(중종 3)에 사복시 제조신용개(申用漑)가, 내구에서 기른 말의 수가 ‘겨울철에는 400필, 여름철에는 300필이 구례(舊例)’라고 한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많은 마필을 사육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내사복시의 마필을 사육하는 데 필요한 사료는 군자감의 분감(分監)이나 광흥창(廣興倉)에서 가져다 쓰거나, 경기·충청의 공세(貢稅)에 포함시켜 사복시에서 수납한 것을 지급받아 사용하였다.

내구마는 주로 왕의 행차에 사용되었지만 때로는 연향(宴享)에 쓰이기도 하였다. 또 공신(功臣)이나 대군(大君)들에게 하사하였으며, 심지어는 외국 사신이나 사복 제조, 병조 당상 등 신하들에게 지급하기도 하였다.

변천

내사복시는 고려시대의 내승에서 비롯되었다. 내승은 고려 말기에 궁중의 승여(乘輿)를 맡아보던 관청으로, 사복시와는 별도로 궁궐 안에 설치되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내사복시 또는 별칭으로 내구라고 하였으며, 대한제국 때는 태복사(太僕司)로 바뀌었다. 한편 1755년(영조 31)의 기록을 보면, 내사복시가 친국(親鞫)의 장소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속대전(續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육전조례(六典條例)』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경세유표(經世遺表)』
  • 『태복정례(太僕定例)』
  • 『태복정례횡간(太僕定例橫看)』
  • 『관직명사전(官職名辭典)』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남도영, 『제주도목장사』, 한국마사회, 2001.
  • 남도영, 『한국마정사』, 한국마사회, 1996.
  • 남도영, 「상승국에 대하여 - 선초의 내사복시·겸사복 성립에 대한 일고」, 『동국사학』9·10, 1966.
  • 남도영, 「조선시대의 마정연구(1)」, 『한국학연구』1, 1976.
  • 조병로 외, 「조선시대 사복시 재정운영 연구(Ⅰ) - 『太僕定例』 및 『太僕定例橫看』을 중심으로」, 『사학연구』84, 2006.
  • 조병로 외, 「조선시대 사복시 재정운영 연구(Ⅱ) - 『太僕定例』 및 『太僕定例橫看』을 중심으로」, 『사학연구』8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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