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위장(五衛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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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중앙군 조직인 오위(五衛)에 속했던 최고위직 장수.

개설

조선시대 중요 중앙군 조직인 오위의 최고위직으로 설치되었다. 처음 종2품직으로 12명이 정원이었다. 궐 안에서 숙직을 하고 순찰하되, 이상 유무를 왕에게 직접 보고해야 했다. 국가적 행사가 있을 때 시위하며, 대열 훈련 등에 참여했다.

임진왜란 이후 군제 개편으로 오위제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자 정3품직으로 낮춰지고 인원은 15명으로 늘었다. 더불어 입직 등의 직무도 의례적인 것으로 변질되었다.

담당 직무

위장(衛將)이라고도 한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하면 종2품직으로 정원은 12명이며 타관(他官)이 겸한다고 되어있다. 특정인이 특별히 지정된 위(衛)를 맡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예하의 병력을 항상 거느리며, 개인적으로 장악하는 것을 막았다. 아울러 병조와 도총부의 당상관·겸사복장·내금위 장 등과는 비록 같은 아문이 아니어도 모두 통틀어 친족 등이 같은 곳에서 벼슬 등을 하는 것을 피하도록 상피(相避)한다. 병권이 치우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였다.

평상시 궐내의 숙직 근무와 국가 의례의 호위, 군사 훈련 참여 등이 주된 직무였다. 궐내에 입직(入直)하려면 왕의 낙점(落點)을 받고서 군사를 거느려야 한다. 한 번에 3명이 입직하되, 동(東)·남(南)·서(西)의 삼소(三所)를 분정(分定)받았다. 3일 만에 교대하는데 교대하는 날에는 반드시 숙배(肅拜)하며, 대전 안에서 패(牌)를 받거나 반납해야 한다. 궁궐 안에서는 군사 10명을 거느리고 시간을 나누어 순찰한 뒤에 이상 유무를 왕에게 직접 보고했다.

왕이 궐 밖으로 행차하여 행재소(行在所)에 머물 때는 외진(外陣)을 대장(大將)의 지시에 따라 군사 10명을 거느리고 순찰했다. 나라에 행사가 있을 때 개최하는 크고 작은 조하(朝賀)나 연향(宴享)에서는 각각 그 군사를 거느리고 뜰에 정렬하여 시위하게 했다.

한편 대열(大閱)을 실시하기 위하여 궐내에서 첩종(疊鍾)이 발동하면 오위의 군사는 광화문 앞 길에서 종루(鍾樓)와 흥인문(興仁門)에 이르기까지 늘어서야 하는데, 이때 오위 장이 왕명을 받고 가서 군사를 거느린다.

궐 밖의 행재소에 머물 때, 소관(所管) 내의 범죄자 가운데 태형(笞刑) 이하는 직접 결정하여 처단하는데, 장형(杖刑) 이상은 임금에게 보고해야 한다.

변천

임진왜란 이후 중앙 군제가 대대적으로 바뀜으로써 오위는 제구실을 해내지 못하였다. 『속대전(續大典)』에 이르러 오위의 병제(兵制)는 모두 혁파하고, 관명(官名) 만 남겨 번을 나누어 궐내 입직과 야간 순찰 등을 하도록 했다. 품계도 정3품으로 낮추면서 그중 2명을 조사오위장(曹司五衛將)이라고 불렀다. 이들은 분군(分軍)을 전적으로 관장하였다. 일단 문과에 급제한 자로 임명했으나, 『대전회통(大典會通)』에 이르러 1명은 문관으로 하되, 다른 1명은 문관·음관·무관을 두루 임명하게 했다.

1795년(정조 19)에 정원을 3명 더 늘렸다(『정조실록』 19년 12월 28일). 더불어 입직 인원도 4명으로 해서 동서남북 4곳으로 나누어 숙직하도록 했다. 그런데 동소의 위장은 충의위(忠義衛) 3~4명, 혹은 5~6명과 충순위(忠順衛) 2명을 거느리며, 남소의 경우에는 충찬위(忠贊衛) 2명을 거느리도록 했다.

『대전통편(大典通編)』에서는 충의위 5명, 충순위와 충찬위 각 1명씩을 거느리게 했다. 이들은 공신 후손과 고위급 관료의 자손 등으로 편성된 병종이다. 특별히 군사적 재능을 갖춘 자들은 아니었다. 입직의 의례적 면모가 강해졌으며 노인을 우대하기 위해 오위 장에 제수하거나(『정조실록』 14년 9월 12일), 혹 상가(賞加)를 실시하고자 가설(加設)하기도 했다(『고종실록』 3년 7월 22일).

참고문헌

  • 『경국대장(經國大典)』
  • 『대전통편(大典通編)』
  • 『대전회통(大典會通)』
  • 『속대전(續大典)』
  • 민현구, 『조선초기 군사제도와 정치』, 한국연구원, 1983.
  • 육군사관학교 한국군사연구실, 『한국군제사 : 근세조선전기편』, 육국본부, 1968.
  • 천관우, 『근세조선사연구』, 일조각, 1979.
  • 차문섭, 「군사조직」, 『한국사 23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국사편찬위원회,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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