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중(朴世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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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생몰년 미상]. 조선 중기 선조~인조 때 활동한 무신. 내금위장(內禁衛將)에 제수되었다. 자는 군극(君極)이고, 호는 무은(霧隱)이며,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아버지는 증 참판(贈參判)박검종(朴儉宗)이다.

선조~인조 시대 활동

소년 때부터 씩씩하고 날래며 궁마(弓馬)에 능하여 무과(武科)에 급제하였다. 그 뒤 첨절제사(僉節制使)가 되고 사을고지(沙乙古池)에서 용마(龍馬)를 획득하였다. 1623년(광해군 15) <인조반정(仁祖反正)> 때 공을 세워 정사공신(靖社功臣) 1등에 녹훈되었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亂)>이 일어나자 원수장만(張晩)의 참모로 임금이 공주로 파천(播遷)하였을 때 옥쇄를 잘 보관하여 공주행재소(行在所)까지 도착한 공으로 진무공신(振武功臣) 2등에 녹훈되었다. 1630년(인조 8) 전라도 남원(南原)의 적(賊)들이 더욱 세력이 강해져서 사람을 죽이고 재물을 약탈하는 환란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는데, 이때 이 도둑들을 붙잡는데도 공을 세웠다. 뒤에 중추부사(中樞府事)가 되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의병을 일으켰으나 화의(和議)가 성립되자 통곡하면서 시(詩)를 지어, 구차하게 사는 것은 남아가 할 일이 아니며 삼학사(三學士)를 따르지 못한 것이 부끄럽고 한스러울 뿐이라고 하였다. 그 뒤 노비와 녹권(錄券)이 하사되고 내금위장에 제수되었으나 출사(出仕)하지 않았다.

참고문헌

  • 『인조실록(仁祖實錄)』
  • 『호남삼강록(湖南三綱錄)』
  • 『호남지(湖南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