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朴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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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587년(선조 20)~1663년(현종 4) = 77세]. 조선 중기 인조~현종 때 활동한 문신. 행직(行職)은 청주목사(淸州牧使)이다. 자는 소문(少文)이고, 본관은 반남(潘南)이다. 증조부는 사간원(司諫院)사간(司諫)박소(朴紹)이고, 조부는 사재감(司宰監)정(正)박응천(朴應川)이다. 아버지는 사간(司諫)박동현(朴東賢)이며, 어머니 한씨(韓氏)는 한창서(韓昌緖)의 딸이다.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다.

인조~현종 시대 활동

광해군의 난정으로 과거 볼 뜻을 접고 집에 들어앉아 독서를 하며 나날을 보내다가 1623년(인조 1) <인조반정(仁祖反正)> 후 6품관에 초수(超授)되었다. 곡성현감(谷城縣監)을 거쳐 충훈부(忠勳府)도사(都事)가 되었고, 그 뒤 토산현감(兎山縣監)과 진위현령(振威縣令)을 역임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丙子胡亂)> 때는 천안군수(天安郡守)로 있었는데, 적의 침입을 보고 곧 군졸을 동원하려고 하였지만, 관찰사의 허락을 얻지 못하여 하지 못했다. 그 뒤 공주목사(公州牧使)가 되었는데 1644년(인조 22) 10월 백성을 잘 다스리지 못하고 불법을 자행했다는 죄목으로 공청도암행어사(公淸道暗行御史)유심(柳淰)의 장계에 의하여 파직되었다. 얼마 뒤 철원부사(鐵原府使)에 서용되고 사복시(司僕寺)첨정(僉正)과 임천군수(林川郡守)·청주목사(淸州牧使) 등을 지낸 뒤 향리에서 세월을 보내다가 1663년(현종 4) 7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성품

박병은 성품이 대쪽같이 곧아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며, 한 번 싫다고 하면 비록 임금의 명령이라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참고문헌

  • 『인조실록(仁祖實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