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세자의 대례복
왕세자의 대례복 (王世子의 大禮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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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왕세자의 대례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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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표기 | 王世子의 大禮服 |
이칭별칭 | 면복(冕服)(7장복) |
분류 | 예복 |
착용신분 | 왕세자 |
착용성별 | 남성 |
목차
정의
조선의 왕세자가 제례나 책례, 가례 등 중요한 의례를 행할 때 면관(冕冠)과 함께 착용하는 복식 일습이다.[1]
내용
왕의 후계자로서의 권한을 상징하는 법복(法服)으로, 조선시대의 면복은 1402년(태종 2, 명 영락 원년)에 건문제(建文帝)로부터 사여받은 것을 기본 규정으로 삼았다. 국가의 길례, 가례, 흉례 등 다양한 성격의 의례에 착용하는 복식 일습이다. 종묘와 사직에 제사 지낼 때, 설날이나 동지 등의 하례식이나 절일(節日), 망궐례(望闕禮) 때도 착용했다. 흉례에서는 대렴(大殮)을 행할 때 입혀지기도 했다.[2] 면복은 면관(冕冠)과 곤복(袞服)으로 불리는 면복 상의(冕服 上衣)와 면복 하상(冕服 下裳)을 합쳐 부른다. 착용하는 사람의 지위에 따라 면관(冕冠)에 늘어뜨린 줄인 류(旒)와 곤복에 새겨진 장문(章紋)의 수가 다르다. 왕세자의 대례복은 8류면(八旒冕)과 7장복(七章服)이다. 목 부분에 덧다는 방심곡령은 제사 때만 착용한다.[3]
복식구성
면관(冕冠 : 관례 이전에는 공정책(空頂幘)을 쓴다), 의(衣), 상(裳), 중단(中單), 대대(大帶), 옥대(玉帶), 폐슬(蔽膝), 패옥(佩玉), 후수(後綬), 적석(赤舃), 적말(赤襪), 규(圭), 방심곡령(方心曲領)
착장 과정
바지와 저고리, 적말 등 기본 옷을 갖추고, 소창의, 창의, 중단을 입는다. 면복 하상을 입은 후에 면복 상의를 입는다. 대대, 옥대, 폐슬을 두르고, 패옥을 갖춘다. 면관을 머리에 쓰고, 규를 든다.[4]
바지와 저고리, 적말 차림.[5]
소창의를 입은 모습.[6]
창의를 입은 모습.[7]
중단을 입은 모습.[8]
면복 하상을 입은 모습.[9]
면복 상의를 입은 모습.[10]
대대를 두른 모습.[11]
옥대를 두른 모습.[12]
폐슬을 두른 모습.[13]
면관을 쓰고, 규를 들어 면복 착장 완성.[14]
착장 영상
- 왕세자의 대례복 착장 과정(ⓒ 김아람)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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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세자 | 왕세자의 대례복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왕세자의 대례복 | 면관(冕冠) |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왕세자의 대례복 | 상의(上衣) |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왕세자의 대례복 | 하상(下裳) |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왕세자의 대례복 | 중단(中單) |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왕세자의 대례복 | 폐슬(蔽膝) |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왕세자의 대례복 | 후수(後綬) |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왕세자의 대례복 | 패옥(佩玉) |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왕세자의 대례복 | 대대(大帶) |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왕세자의 대례복 | 적말(赤襪) |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왕세자의 대례복 | 적석(赤舃) |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왕세자의 대례복 | 규(圭) |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왕세자의 대례복 | 방심곡령(方心曲領) |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왕세자의 대례복 | 7장문(七章紋)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왕세자의 대례복 | 상의원 | A는 B에 의해 제작되었다 | A dcterms:creator B |
왕세자의 대례복 | 면복각 | A는 B에 보관되었다 | A edm:formerLocation B |
시간정보
시간 | 내용 |
---|---|
1402년 | 조선이 명나라에서 면복을 사여받았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
37.577850 | 126.989909 | 창덕궁 돈화문 근처 상의원에서 왕세자의 대례복을 제작했다 |
37.577850 | 126.989909 | 창덕궁 돈화문 근처 면복각에서 왕세자의 대례복을 보관했다 |
시각자료
갤러리
왕세자의 대례복을 착용한 효명세자의 예진.[15]
영상
주석
- ↑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18쪽.
- ↑ 김문식·김지영·박례경·송지원·심승구·이은주, 『왕실의 천지제사』, 돌베개, 2011, 101쪽.
- ↑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18쪽.
- ↑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22쪽.
- ↑ 궁중기록화팀 ⓒ김아람.
- ↑ 궁중기록화팀 ⓒ김아람.
- ↑ 궁중기록화팀 ⓒ김아람.
- ↑ 궁중기록화팀 ⓒ김아람.
- ↑ 궁중기록화팀 ⓒ김아람.
- ↑ 궁중기록화팀 ⓒ김아람.
- ↑ 궁중기록화팀 ⓒ김아람.
- ↑ 궁중기록화팀 ⓒ김아람.
- ↑ 궁중기록화팀 ⓒ김아람.
- ↑ 궁중기록화팀 ⓒ김아람.
- ↑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20쪽.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 국립고궁박물관(엮음), 『대한제국 잊혀진 100년 전의 황제국』, 민속원, 2011.
- 김문식·김지영·박례경·송지원·심승구·이은주, 『왕실의 천지제사』, 돌베개, 2011.
- 고광림, 『한국의 관복』, 화성사, 1995.
- 金明淑, 「朝鮮時代 冕服의 考察-國葬都監儀軌 服玩圖說을 中心으로-」,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3.
- 金明淑, 「朝鮮時代 王世子 冕服」, 『服飾』 18권, 한국복식학회, 1992.
- 金明淑, 「朝鮮後期 冕服의 變遷-國葬都監儀軌 服玩圖設을 통한 考察-」, 『服飾』 7권, 한국복식학회, 1983.
- 金明淑, 「한국과 중국의 袞冕에 관한 연구」, 동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4.
- 유희경, 「冕服에 關한 硏究」, 이화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72.
- 이민주, 『용을 그리고 봉황을 수놓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4.
- 이은진, 조효진, 「조선말기 왕실복식 소재에 관한 연구」, 『한복문화』 11권 3호, 한복문화학회, 2008.
- 이혜경, 「면복의 십이장문에 관한 연구-상징적 의미를 중심으로」, 『한복문화』 4권 4호, 한복문화학회, 2001
- 전혜숙, 「면복의 십이장문에 관한 연구-상징의의를 중심으로」, 동아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1.
- 최규순, 『中國歷代帝王冕服硏究』, 동화대학출판부, 2007.
- 국립고궁박물관, 『대한제국, 잊혀진 100년 전의 황제국』, 민속원, 2011.
- 최연우, 『면복』, 문학동네, 2015.
- 홍나영ㆍ신혜성ㆍ이은진 지음, 『동아시아 복식의 역사』, 교문사, 2011.
일러스트 참고문헌
- 최연우, 『면복』, 문학동네, 2015.
- 난사 전통복식문화재 연구소, 『어진에 옷을 입히다』, 민속원, 2016.
-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 이민주, 『용을 그리고 봉황을 수놓다』,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