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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박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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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박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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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dh.aks.ac.kr/hanyang/wiki/index.php/%EC%A1%B0%EC%84%A0%EB%B0%95%EB%9E%8C%ED%9A%8C 조선박람회]
 
[http://dh.aks.ac.kr/hanyang/wiki/index.php/%EC%A1%B0%EC%84%A0%EB%B0%95%EB%9E%8C%ED%9A%8C 조선박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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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에 조선에 식민지를 건설한 일본은 1929년, 조선을 강점한지 20년이 되는 해에 박람회라는 거대한 시각적 이벤트를 통해 그간의 통치성과를 기념하고 선전하고자했다. 일반적인 박람회의 개최가 상품을 전시하여 생산 및 소비지형의 판도를 넓히는 식산흥업에 1차적 목적이 있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경복궁에서 열린 조선박람회가 ‘시정 20주년 기념’이라는 정치적 기획에서 출발하였음은 이미 많은 연구논저를 통해 밝혀진 바이다. 김태웅, 2002, 「1915년 경성부 물산공진회와 일제의 정치선전」, 『서울학연구』 제18호, 1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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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일제는 박람회를 비문명국이었던 조선이 일본의 지배로 인해 문명화되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이를 시각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지배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데 이용했다. 따라서 조선박람회에 대한 연구는, 일제가 지배자로서 식민지 권력을 어떻게 표상하고, 그 안에서 식민지화 전후의 상황이 전시라는 장치를 통해 전략화 되었는지 그 안의 식민주의를 밝히는 작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왔다. 또한 연구자들은 그러한 선전이 당대의 조선의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진 것이었는지를 지적하기도 했다. 최석영, 『한국 근대의 박람회․박물관』, 서경문화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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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는 ‘박람회의 시대’라 할 만큼 크고 작은 군소박람회가 범람하는 시대였다. 상품간의 우열을 따져 품평하는 소규모의 박람회격인 바자회, 장려회부터 가정박람회, 수산박람회, 기차박람회에 이르기까지 당대 산업의 특색과 계몽적 성격을 띤 박람회가 전국각지에서 개최되었다. 이렇듯 물산의 전시를 목적으로 하는 박람회는 백화점, 박물관 등과 함께 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근대적 시각문화의 한 축으로서 자리잡아가고 있었다. 안현정, 「일제강점기 시각매체와 조선미술전람회 연구 : 근대의 시각주체와 규율권력을 중심으로」, 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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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박람회가 기존의 박람회와 갖는 차이점은 그 단위가 일반적인 단체, 시, 도에서 벗어나 국가단위에서 개최되어 압도적인 전시규모와 물적인 풍부함을 자랑했다는 점에 있다. 조선 뿐 아니라 만주, 대만 훗카이도, 일본 본토에 이르기까지 출품과 선전의 범위는 제국 일본의 판도를 망라하였고, 50여 일 동안 개최되어 당시로서는 상당한 재정과 인원, 물량이 동원되었다. 뿐만 아니라 박람회장 안은 놀이기구, 불꽃발사, 전광판, 1인 곡예사 등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각종 스펙타클로 가득하였다. 회장 밖에서는 박람회를 선전하는 선전탑과 같은 화려한 건축 장식이 조영되고, 각종 문구와 선전포스터(광고)가 경성 시내곳곳을 장식하였다. 이렇듯 박람회는 제국주의, 소비사회, 대중오락의 세 가지 요소가 융합된 곳으로서, 대중이 근대의 상품세계와 만나는 최초의 장소였다고 할 수 있다. 요시미순야, 이태문 역, 『박람회 : 근대의 시선』, 논형, 2005, 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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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은 조선에 대한 지배자로서 조선을 대상화하고, 객체화시켜나갔다. 서구사회가 그들이 정복한 식민지의 문화를 오리엔탈리즘의 틀 안에서 해석하고 대상화시켜 보았듯이, 조선박람회에서도 일본에 의해 타자화된 조선의 표상들이 전시되었다. 그렇다면 박람회장 안에서 조선과 조선적인 것은 어떻게 표현되었는가. 박람회는 총독부의 적극적인 선전에 힘입어 본토의 일본인도 다수 참가하였지만, 대부분의 관람객은 조선인들이었다. 조선에 대한 문화적 표상은 곧 전시관을 관람하는 조선인들을 의식한 결과이기도 했다. 당시 조선총독부의 일본어 기관지였던 『京城日報』의 1929년 9월 12일자 기사에서 회장 건축조영에 중심적 역할을 했던 이와이(岩井) 건축과장은 다음과 같은 소감을 게재하였다. “박람회의 건축시설을 어떠한 풍(風)으로 하면 좋을 것인가라는 문제도 상당히 중대한 문제입니다. [중략] 조선에 있어서는 이외에도 또 한 가지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여기에 조선의 맛을 나타내고 싶다는 것입니다.그리하여 조선인이 갖는 느낌이 좋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내지에서 온 관람객도 조선의 박람회에 대해서는 무언가 조선의 맛을 기대하고 올 것이 틀림없으므로 거기에 딱 맞는 건축시설을 하지 않으면 진정한 조선박람회의 의의를 달성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에 고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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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 조선적인 것은 일제가 타자화환 이미지인 동시에 한편으로는 일제가 조선인에게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 즉 일제가 조선인이 이렇게 되기를 ‘바라는’ 모습도 투영되어 있었을 것이다.
  
 
===조선박람회 기록물 현황===
 
===조선박람회 기록물 현황===

2020년 7월 16일 (목) 03:54 판

논문개요

논문 제목(교수님 제안)

1929년 조선박람회의 재현을 위한 메타 아카이브 구현

목차

  1. 서론
  2. 연구 목적 및 배경
    1. 연구대상
    2. 연구방법
  3. 대상 자원 분석 및 선행 연구
    1. 조선박람회(인문학적 연구)
    2. 조선박람회 기록물 현황
      1. 국가기록원
      2. 국립중앙도서관
      3. 전국 박물관 소장품
  4. 조선박람회 메타아카이브 구현
  5. 데이터 수집 및 정리
  6. 온톨로지 설계 및 구축
  7. 데이터 및 아카이브 활용
  8. 결론
  9. 참고문헌

개념 및 용어정리

※인문정보학과 석사학위 논문 김현규, 3.1운동에 관한 개방적 연계데이터 구축, 2018 다수 참고.

논문 지도

1차 피드백(2020.07.01)

Ⅰ. 서론

1. 연구 목적 및 배경

문제제기: 흩어져 있는 조선박람회 기록물과 관련 지식세계

조선박람회라는 지식세계를 포괄하는 통합된 데이터베이스의 구축의 필요성 -> 김현 교수님이 제시한 메타아카이브 개념을 적용하여 전국에 흩어진 개별 기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박람회(1929)'를 탐구할 수 있는 이용자 중심의 디지털아카이브 구축

연구목적: 조선박람회 기록물의 통합 아카이브 구축 및 활용 연구

  • 개별기관에 흩어진 조선박람회 기록물의 통합 아카이브[메타아카이브] 구현

- 모두 각기 다른 사이트에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유관한 정보들끼리 한데 모아서 열람하는데 제한이 있음.
- 조선박람회의 실체를 전자상으로 복원; 이때 주제, 공간, 시간 값의 메타데이터를 활용해 조합하여 데이터베이스화
- 구체적인 형태는 시맨틱데이터베이스 구축을 통한 '전자지도'.

  • 문서 단위가 아닌 데이터 단위의 아카이브 모델 제안-> "시맨틱웹"

※ 문서 단위 웹 VS 데이터 단위 웹 [1]

문서 단위의 연결 데이터 단위의 연결
구체적인 개념들 간의 관계를 사람만 읽고 이해할 수 있음 기계가독형// 데이터와 데이터를 의미적 연관성에 따라 연결
'조선박람회'에 관한 지식들이 문서 상의 텍스트로만 존재 웹에서 개별 페이지가 주소를 갖듯, 데이터의 웹에서는 하나의 개체가 다른 개체로부터 유일하게 식별될 수 있도록 하는 고유의 주소를 갖는다.

예시: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조선박람회기념사진첩 "문헌 단위가 아닌, 문헌 안에 있는 '내용'을 데이터로 쪼개어 유관한 지식요소끼리 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

2. 연구 대상

조선박람회의 기획과 개최, 운영과 정리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요소를 추적할 수 있는 기록물 및 연구논저를 대상으로 함. 

조선박람회 운영주최 측의 개회 및 운영 경위에 관한 기록물

① 총독부 기관지: 조선총독부 관보[2], 경성일보, 매일신보[3]
② 총독부 공식 간행물: 『조선박람회기념사진첩(1930)』[4], 『(조선박람회)경성협찬회보고서』[5]
③ 조산박람회 건축조감도, 배치도 등 [6]
④ 조선박람회 안내서, 팸플릿: 『경성편람(1929)』[7]
⑤ 그외 조선박람회 관련 선전포스터, 광고, 엽서 등의 시각매체 자료[8]

민간기록물

 js1929_Press data
  • 잡지: 『별건곤』

3. 연구 방법

3.1 전자지도 위에 표현할 콘텐츠설계

전자지도의 기본 3요소 : ①주제(내용) ②공간 ③시간
  • 주제:

a. 박람회 출품물 b. 박람회 개최 운영과 관계된 인물 및 단체(조직) c. 박람회 출품 기업(대부분이 일본기업;웹 자원과 연결)
그 외 박람회 기록물에서 얻을 수 있는 지식 요소
js1929_Contextual Data

  • 공간: 박람회장 내 공간(전시관) + 경성역 ~ 숭례문 ~ 광화문으로 이어지는 경성시가지

js1929_Spatial Data

  • 시간: 박람회 개최를 전후로 일어난 사건 사고(법원 기록물 및 신문기사를 토대로)

+ 박람회 기간 동안 일어난 각종 행사 및 이벤트
js1929_Temporal Data

3.2 설계된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DB설계

1) 조선박람회 관련 선행연구 및 콘텐츠 현황 분석
2) 데이터 수집 및 정리
- 웹상의 각 개별 기관에서 해당 데이터에 관해 제공하는 정보를 모두 수집</br>

- MS-Excel 이용

- 데이터 저장은 관계형 데이터베이스인 MS-SQLserver 사용

  • 유형별 데이터 정리
조선박람회와 관련한 '공간(전시관)-시간(사건)-주제(인물,단체)-웹 자원'데이터를 수집하고 정리
  • 온톨로지 설계
데이터를 분류하고 연계하기 위한 기술 체계로, 일반적으로 클래스- 속성- 관계성 설계 순을 따른다.

ⓐ 클래스 설계
클래스 분류는 헌국문화 엔사이브 온톨로지(EKC) 참고

ⓑ 속성설계

클래스에 속하는 각 개체들이 갖고 있는 특질적인 정보를 기술해주기 위한 틀

- 클래스별 속성의 종류 선정은 데이터 수집과정에서 대부분 완료
- 설계과정에는 속성을 기술하는 구체적 어휘 부여
- 속성의 기술체계는 RDF형식을 따름
- 속성 설계에서는 RDF 형식에서 데이터와 데이터값을 연결하는 서술 어휘(관계어)를 정의해주어야 한다.
EX) 손병희 - 태어나다(birth)-1861년

ⓒ 관계성 설계

개체와 개체간 관계에 대한 정보 기술

- 관계의 종류를 체계화하고 이를 나타내는 서술 어휘를 정의하는 작업
- RDF형식에서 Object Property에 해당(데이터와 데이터를 연결해주는 속성)

※'속성'과 '관계성'의 차이

Datatype Property(속성) Object Property(관계성)
데이터와 데이터의 속성인 데이터 값을 연결 데이터와 데이터를 특정한 관계로 연결
속성(Attribute)에 해당 관계성(Relation)이 이에 해당

3.3 웹기반 서비스 구현(위키 플랫폼 활용)

  • 데이터베이스 구축(RDF문 형식)

- RDF 형식의 모든 데이터는 URI라는 고유의 웹주소를 갖는다. URI는 각 데이터에 접근하고 다른 데이터와 연결되도록 하는 접근점이자 연결점.
- 본문의 온톨로지 모델에서 정의한 모든 개체 및 관계 데이터의 URI는 주소를 데이터의 ID앞에 기재한다.
-> 이러한 URI체계에 따라 RDF문 구성
-> 클래스, 데이터타입 속성, 오브젝트 속성, 개체 등 크게 4가지의 기술 영역

  • 전자지도 구현 형태
조선왕조 태실 데이터 세슘지도

- 교수님께서 참고하라고 하심.

Ⅱ. 대상 자원 분석 및 선행 연구

조선박람회

조선박람회

1919년에 조선에 식민지를 건설한 일본은 1929년, 조선을 강점한지 20년이 되는 해에 박람회라는 거대한 시각적 이벤트를 통해 그간의 통치성과를 기념하고 선전하고자했다. 일반적인 박람회의 개최가 상품을 전시하여 생산 및 소비지형의 판도를 넓히는 식산흥업에 1차적 목적이 있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경복궁에서 열린 조선박람회가 ‘시정 20주년 기념’이라는 정치적 기획에서 출발하였음은 이미 많은 연구논저를 통해 밝혀진 바이다. 김태웅, 2002, 「1915년 경성부 물산공진회와 일제의 정치선전」, 『서울학연구』 제18호, 164쪽. 
요컨대 일제는 박람회를 비문명국이었던 조선이 일본의 지배로 인해 문명화되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이를 시각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지배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데 이용했다. 따라서 조선박람회에 대한 연구는, 일제가 지배자로서 식민지 권력을 어떻게 표상하고, 그 안에서 식민지화 전후의 상황이 전시라는 장치를 통해 전략화 되었는지 그 안의 식민주의를 밝히는 작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왔다. 또한 연구자들은 그러한 선전이 당대의 조선의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진 것이었는지를 지적하기도 했다. 최석영, 『한국 근대의 박람회․박물관』, 서경문화사, 2001. 
1920년대는 ‘박람회의 시대’라 할 만큼 크고 작은 군소박람회가 범람하는 시대였다. 상품간의 우열을 따져 품평하는 소규모의 박람회격인 바자회, 장려회부터 가정박람회, 수산박람회, 기차박람회에 이르기까지 당대 산업의 특색과 계몽적 성격을 띤 박람회가 전국각지에서 개최되었다. 이렇듯 물산의 전시를 목적으로 하는 박람회는 백화점, 박물관 등과 함께 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근대적 시각문화의 한 축으로서 자리잡아가고 있었다. 안현정, 「일제강점기 시각매체와 조선미술전람회 연구 : 근대의 시각주체와 규율권력을 중심으로」, 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54쪽
  조선박람회가 기존의 박람회와 갖는 차이점은 그 단위가 일반적인 단체, 시, 도에서 벗어나 국가단위에서 개최되어 압도적인 전시규모와 물적인 풍부함을 자랑했다는 점에 있다. 조선 뿐 아니라 만주, 대만 훗카이도, 일본 본토에 이르기까지 출품과 선전의 범위는 제국 일본의 판도를 망라하였고, 50여 일 동안 개최되어 당시로서는 상당한 재정과 인원, 물량이 동원되었다. 뿐만 아니라 박람회장 안은 놀이기구, 불꽃발사, 전광판, 1인 곡예사 등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각종 스펙타클로 가득하였다. 회장 밖에서는 박람회를 선전하는 선전탑과 같은 화려한 건축 장식이 조영되고, 각종 문구와 선전포스터(광고)가 경성 시내곳곳을 장식하였다. 이렇듯 박람회는 제국주의, 소비사회, 대중오락의 세 가지 요소가 융합된 곳으로서, 대중이 근대의 상품세계와 만나는 최초의 장소였다고 할 수 있다. 요시미순야, 이태문 역, 『박람회 : 근대의 시선』, 논형, 2005, 42쪽.
 일본은 조선에 대한 지배자로서 조선을 대상화하고, 객체화시켜나갔다. 서구사회가 그들이 정복한 식민지의 문화를 오리엔탈리즘의 틀 안에서 해석하고 대상화시켜 보았듯이, 조선박람회에서도 일본에 의해 타자화된 조선의 표상들이 전시되었다. 그렇다면 박람회장 안에서 조선과 조선적인 것은 어떻게 표현되었는가. 박람회는 총독부의 적극적인 선전에 힘입어 본토의 일본인도 다수 참가하였지만, 대부분의 관람객은 조선인들이었다. 조선에 대한 문화적 표상은 곧 전시관을 관람하는 조선인들을 의식한 결과이기도 했다. 당시 조선총독부의 일본어 기관지였던 『京城日報』의 1929년 9월 12일자 기사에서 회장 건축조영에 중심적 역할을 했던 이와이(岩井) 건축과장은 다음과 같은 소감을 게재하였다. “박람회의 건축시설을 어떠한 풍(風)으로 하면 좋을 것인가라는 문제도 상당히 중대한 문제입니다. [중략] 조선에 있어서는 이외에도 또 한 가지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여기에 조선의 맛을 나타내고 싶다는 것입니다.그리하여 조선인이 갖는 느낌이 좋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내지에서 온 관람객도 조선의 박람회에 대해서는 무언가 조선의 맛을 기대하고 올 것이 틀림없으므로 거기에 딱 맞는 건축시설을 하지 않으면 진정한 조선박람회의 의의를 달성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에 고심한 것입니다.” 
조선과 조선적인 것은 일제가 타자화환 이미지인 동시에 한편으로는 일제가 조선인에게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 즉 일제가 조선인이 이렇게 되기를 ‘바라는’ 모습도 투영되어 있었을 것이다.

조선박람회 기록물 현황

Ⅲ. 조선박람회 기록물의 메타아카이브 구현

데이터 수집 및 정리

온톨로지 설계 및 구축

온톨로지_설계_1차

Ⅳ. 데이터 및 아카이브의 활용

Ⅴ. 결론

참고문헌

author title publication edition URL
최석영, 「조선박람회와 일제의 문화적 지배」 웅진사학회, 『역사와 역사교육』3·4, 1999
최석영, 『한국근대의 박람회․박물관』, 서경문화사, 2001
이순우 『제자리를 떠난 문화재에 관한 조사보고서』 하늘재,2002
신명직 『모던뽀이, 京城을 거닐다 : 만문만화로 보는 근대의 얼굴 /』 현실문화연구, 2003
주윤정, 「‘朝鮮物産共進會’(1915)에대한 연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석사학위논문, 2003
하세봉 「식민지권력의 두 가지 얼굴-조선박람회(1929년)와 대만박람회(1935년)의 비교」 『역사와 경계』51, 2004
신주백 「「박람회-과시· 선전· 계몽· 소비의 체험공간, 『역사비평』67, 2004
권혁희, 『(조선에서 온) 사진엽서 』, 민음사, 2005
요시미순야, 이태문 역, 『박람회 : 근대의 시선』 논형, 2005
남기웅 「1929년 조선박람회와 식민지 근대성」,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韓國學論叢』43, 2008
차문성, 「근대박물관 형성과정에 대한 연구」 중앙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08
안현정, 일제강점기 시각매체와 조선미술전람회 연구」, 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이각규, 『한국의 근대박람회』 커뮤니케이션북스, 2010
송인호, 김제정, 최아신 「일제강점기 박람회의 개최와 경복궁의 위상변동*」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서울학연구 』55, 2014
정윤희, 「일제시기 조선박람회(1929년) 연구-조선인의 근대적시각체험을 중심으로 한양대 석사학위논문, 2016
건국대학교 아시아콘텐츠연구소, 『1929년, 조선을 박람하다. 조선박람회 기념사진첩』, ,2018
염복규, 「조선박람회 전시관 양식에 보이는 제국과 식민지, 수도와 지방」.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人文論叢』75, 2018
하세봉 『동아시아 엑스포의 역사 : 메가 이벤트의 감성공학 』 산지니,2019

학위논문 작성시 유의사항

  • 김현규,「 3.1운동에 관한 개방적 연계데이터 구축」, 한국학중앙연구원 석사학위논문, 2018
  • 조선총독부관보
  • 대한민국신문아카이브
  • 국립중앙도서관 원문서비스
  • 국립중앙도서관 원문보기 서비스
  • 국가기록원
  • [1]
  • 박물관 소장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