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우아파트 붕괴 사고
개요
와우아파트 붕괴사고는 1970년 4월 8일 오전 8시 경, 마포구 창전동에 위치한 와우 아파트 15동이 붕괴하여 33명이 사망하고 39명이 중경상을 입은 사고이다.
내용
와우아파트는 '시민아파트' 건립과정에서 지어진 아파트이다. 시민아파트는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김현옥이 1968년 판잡짓 등 불량 건축물 정리와 변두리로의 인구 분산을 위해 3년 계획으로 판자촌 지구 40곳 78만 평에 아파트 2000동을 지어 무주택자 13만구를 수용하겠다고 발표한 뒤 세워진 아파트이다.[와우아파트,경부고속도로, 그리고 주한미국 감축, 박태균]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지 마련을 명목으로 지어졌다.
단이주 무허가정착지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압축성장시대, 무허가 정착지의 형성과 해체 그리고 재산권, 조성찬] 시민아파트는 빈민을 위한 복리후생이라는 측면을 갖고 있으나, 판자촌 주민들이라는 이들을 서울 외곽, 또는 특정 공간으로 이주시키면서 주거 취약자들을 시민의 시야에서 멀어지게 만들도록 했다. 이것은 한국의 압축적 근대화라는 측면과 관련이 있다.
한국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황폐화된 국토를 얻었고, 많은 이들은 가난에 시달렸다. 이런 상황에서 식민지국가라는 제3세계의 정체성을 마주하게 되면서, 경제성장을 목표로 하는 성과 중심주의가 자리잡게 되었다. 이에 따라 진행된 압축적 근대화는 제도의 미비와 비리를 낳았으며, 와우아파트 붕괴사고는 압축적 근대화의 비극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3년만에 아파트 2000동을 짓겠다는 계획은 공사기간의 단축을 불러왔다. 뿐만 아니라 낮은 공사비 책정, 허술한 기초공사 등 총체적인 부실이 함께했고, 이에 더해 근본적인 원인은 해당 동을 시공한 대룡건설이 무면허 토건 업체에 하청을 주면서 공사비를 떼먹는 비리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이러다 또 무너진다] 와우아파트 붕괴로 시작된 50년 흑역사…후진적 인재 반복 https://www.yna.co.kr/view/AKR20220115031700003?input=1195m)
참고문헌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