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작품 속 우미관과 영화 '명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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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내용

우미관의 모습

서울역사아카이브:우미관의 모습

관철정 89((貫鐵町 89, 현 종로구 관철동)에 위치한 우미관(優美館)의 모습이다.[1]

우미관 프로그램

1930년대 이전까지 상설 관은 평일 1회, 주말이나 휴일의 경우 2회 상영이 원칙이었다. 그래서 평 일의 경우는 7시 즈음에 영화상영이 시작되었으며 휴일의 경우에는 낮에 한 번의 상영이 더 있었다. 그런데 1930년대 중반부터 평일에도 3회씩 영 화가 상영되기 시작한다. 이는 지금과 같은 하루에 여러 횟수의 상영이 처음으로 제도화 된 것이었다. 평일 3회 상영이 실시될 당시 영화시작 시간은 상설관 마다 조금씩 달 랐다. 우미관에서는 오전 11시, 오후 3시, 저녁 7시에 맞춰 총 3회의 상영 을 했다.

우미관 운영방식



문학작품 속 우미관의 상영영화 '명금'


영화 '명금' 포스터


이광수의 '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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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서늘하다. 종로 야시에는 '싸구려'하는 물건 파는 소리와 기다란 칼을 내두르며 약 광고하는 소리도 들린다. (중략) 아직도 장옷을 쓴 부인이 계집아이에게 등불을 들리고 다니는 이도 있다. 우미관에서는 무슨 소위 '대활극'을 하는지 서양 음악대의 소요한 소리가 들리고 청년회관 이층에서는 알굴리기를 하는지 쾌활하게 왔다 갔다 하는 청년들의 그림자가 얼른얼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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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광수, '무정'>


당시 매일신보 광고를 살펴보면, 1916년 6월 말 우미관의 주요 상영 프로그램은 23일부터 개봉된 '세계적 모험 탐정 대활극' 연속영화 <명금>(The Broken Coin,1915)이었다. 뉴욕의 탐정 소설가 키티 그레이(Kitty Gray)가 유럽 고대 왕국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파란만장한 모험을 펼치는 영화 <명금>은 미국 유니버셜사가 총 22편 44권으로 제작한 연속영화로서, 1910년대 후반 미국발 활동사진 열풍을 불러 일으키며 우미관의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시절을 장식한 흥행작이었다. 우미관은 1916년 개봉 이래 <명금>을 여러 차례 재상영했고, '명금 대회'라는 이름의 상영 행사를 열어 많은 관객들을 유인했다. [2]

박태원의 '오월의 훈풍'


박태원의 <오월의 훈풍>에는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수전동 골목 아이들이 우미관에서 본 영화를 흉내내며 '명금 놀이'를 하는 모습을 회고하는 대목이 있다. 아이들은 각자 <명금>에 나오는 인물-'기지꾸레','싸치오 백작','후레데리꾸 백작','로로'-이 되어 골목길을 누빈다. 이렇게 한국 근대 소설에는 우미관에서 <명금>이 상영되었을 당시를 회고하는 대목이 종종 등장한다. [3]

참고문헌

주석

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