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련의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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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WS21KHU (토론 | 기여)님의 2021년 6월 24일 (목) 00:04 판 (강명화와 장병천의 연애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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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비련의 곡>은 동아문화협회가 제작하고 일본인 조천고주(하야카와 마스다로)가 감독과 각본을 맡은 영화이다. 문수일과 문영옥과 문수일이 주연으로 출연했다. 조선극장에서는 1924년 11월 하순에 개봉된 것으로 보인다. 『시대일보』의 기사[1]에서는 11월 23일부터 개봉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KMDb 사이트에서는 11월 28일에 개봉된 것으로 되어 있다. 관련 기사들 대부분이 이 영화가 경상도 유지인 동경 유학생 장병천과 평양 기생 강명화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음을 시사한다. 이 사건이 워낙 대중에게 인기 있는 이야기였는지, 그들의 연애담을 영화로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화제성을 제법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극장에서도 꽤 흥행한 모양이었는데, 작품 자체만 놓고 보자면 이례적으로 영화계의 비판이 거세게 쏟아졌던 영화였다.

내용

강명화와 장병천의 연애 서사

이 영화의 사정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강명화와 장병천의 연애 이야기를 볼 필요가 있다. 이 둘의 이야기를 전한 기사들과 위키백과의 정보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평양 권번 기생인 강명화가 길에서 일본인들에게 희롱당하는 것을 경상도 유지의 아들인 장병천이 구해준다. 그 일로 두 사람은 가까워져 연인 관계로 발전하고, 강명화는 항상 장병천의 곁을 지켰다. 그러나 장병천의 집안은 강명화를 요부(妖婦)로 여기며 둘의 결혼을 반대했고, 이에 장병천은 집을 나와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며 강명화와 함께 도피 생활을 하가다 경성에서 동거 생활을 한다. 강명화는 그 과정에서 자신 때문에 세간에 부랑자 취급을 받고, 출세길도 막히게 된 장병천에게 미안함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던 중 강명화가 문득 온천에 가고 싶다는 말을 꺼내, 둘은 온양온천으로 여행을 떠난다. 강명화는 1923년 6월 12일 오전에 장병천이 잠시 외출한 틈을 타 쥐약을 먹고 자결한다. 자신이 죽으면 장병천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 출세길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외출을 나갔다가 돌아온 장병천은 강명화가 죽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후 두 차례의 시도 끝에 10월 29일에 경성 자택에서 쥐약을 먹고 자살했다.

지금으로써는 '집안의 반대로 인한 젊은 연인의 비극'은 사실 그렇게 특별하게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자유 연애가 흔하지 않았던 당시에는 제법 큰 사회적 이슈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주목에 관해서는 당시 이 둘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보도한 『동아일보』의 1923년 6월 16일자 기사[2]를 먼저 볼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주석

  1. 朝鮮劇塲의 活寫 悲戀의 曲이란 朝鮮의 侮辱」, 『시대일보』, 1924.11.30. 1면, 『대한민국신문아카이브』online, 국립중앙도서관.
  2.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3061600209203006&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23-06-16&officeId=00020&pageNo=3&printNo=1022&publishType=00020 꼿가튼몸이 생명을 끈키까지에]」, 『동아일보』, 1923.06.16. 3면,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online,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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