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츄사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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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1915년 시마무라 호게츠(島村抱月)의 동경 예술좌가 내한하여 <카츄사>를 공연하여 화제를 모았는데, 이를 따라 신파극단 예성좌가 바로 다음해에 <카츄샤>를 공연함으로써 세간의 주목을 끌었던 것이다. 그리고 1923년에는 신극 공연을 표방한 토월회에 의해 공연되면서 이후 한국 연극의 대표적인 레퍼토리로 자리잡았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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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우수진, 「카츄샤 이야기<부활>의 대중서사와 그 문화 변용」, 2014. | ||
톨스토이의 소설 <부활>은 조선 연극, 영화계의 단골 스토리였다. 특히나 1915년 예성좌의 연극을 시작으로 연극계에서 다양하게 재창작되었다. 카츄사의 이야기는 애정극, 가족신파극의 내용으로 각색되어 큰 인기를 끌었으며, 이런 맥락에서 토월회에서도 <카츄사>를 공연했던 것으로 보인다.
내용
우선 조선극장을 통해 보는 식민지 조선의 연극·영화계 연구에서 등장하는 카츄사의 공연 기록들은 다음과 같다.
| 날짜 | 연극 제목 | 공연 제목 |
|---|---|---|
| 1923.09.15. | 카추샤 | 토월회 2회 공연[2] |
| 1929.12.13. | 카추샤[3] | - |
1923년 <토월회2회공연>의 상연 목록에 포함되어 있으며, 1929년 공연 때는 <카츄사>만 단독 공연되었다. 그러나 당시 기사에서도 '토월회의『카추—사』는이미세상에 정평이잇는 연극'[4]이라고 언급되어 있는 것을 보면, 조선극장 외의 무대나 명확히 기록되지는 않은 <카츄사>의 상연이 더 있었을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우수진은 2013년[5]과 2014년[6]의 연구에 걸쳐 <카츄사>를 둘러싼 당대의 문화현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그 중 <카츄사>의 인기 요인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1.신선하면서도 매력적인 캐릭터성
<부활>은 원전 자체보다도, 재구성 번역 및 속편과 연극, 유행가요 등을 통해 재/생산되는 대중서사를 중심으로 하여 주로 수용되었다.[7] 즉, 원전에 충실한 번역이나 재해석이 이루어지기보다는, 대중적인 흐름을 붙잡고 있는 작품을 만드는 작업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카츄샤>의 서사도 주로 <부활>의 주인공인 네플류도프와의 연애 이야기나, 카츄샤의 굴곡진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재구성되었다. [8] 카츄사는 기존 신파극에서 볼 수 없었던 여주인공이었다. 이와 관련된 설명은 다음의 인용문에 언급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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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신파극의 여주인공들은 대부분 시/부모의 며느리/딸이나 남편의 아내, 자식의 어머니라는 역할에 의해 스테레오타입적으로 성격화된다. [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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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우수진, 「카츄샤 이야기<부활>의 대중서사와 그 문화 변용」, 2014. | ||
즉, 종으로 태어나 창녀로 전락했다가, 감옥의 죄수들에게 봉사하는 성녀의 모습으로 변화하는 카츄사의 서사는 평면적인 주변인물에 그쳤던 기존 신파극의 여성 인물들과는 차별점이 있었다. 또한 우수진은 그 캐릭터의 인기가 당시 남성중심 문화에서의 남성 욕망의 대상으로써 형성된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하여 토월회의 <카츄사>가 성공한 요인은 기존의 신파극 극단들이 여성 배역에 여장을 한 남배우를 올렸던 것과 달리, 여배우인 이월화가 카츄사를 직접 연기함으로 인해 더욱 큰 대중적 반향을 일으켰던 것으로 보기도 했다.[10]
2.<카츄샤> 극중가의 유행
참고문헌
주석
- ↑ 우수진, 「카츄샤 이야기<부활>의 대중서사와 그 문화 변용」, 『한국학연구』32,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4.03, 209~241쪽.
- ↑ 관련 기사
土月會二囘劇」, 『조선일보』, 1923.09.10. 3면,『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online , 네이버.
「土月會 二回公演凖備」, 『동아일보』, 1923.09.11. 3면,『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online , 네이버.
「2회 공연에 분망, 토월회, 15일부터 조선극장에」, 『매일신보』, 1923.09.13. 3면,『대한민국신문아카이브』online , 국립중앙도서관.
「土月會의二回公演」, 『조선일보』, 1923.09.14. 3면,『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online , 네이버.
「土月會劇온延期오는십팔일로」, 『조선일보』, 1923.09.16. 3면,『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online , 네이버.
「土月會公演은今日」, 『동아일보』, 1923.09.18. 3면,『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online , 네이버.
「演劇과 活動」, 『조선일보』, 1923.09.22. 조선일보 3면,『조선뉴스라이브러리』online , 조선일보. - ↑ 「土月會에서 카주샤上演」, 『조선일보』, 1929년.12월.13일. 5면,
『조선뉴스 라이브러리 100』online , 조선일보. - ↑ 「土月會에서 카주샤上演」, 『조선일보』, 1929년.12월.13일. 5면,
『조선뉴스 라이브러리 100』online , 조선일보. - ↑ 우수진, 「무대에 선 카츄샤와 번역극의 등장-<부활> 연극의 수용 경로와 그 문화 계보학」, 『한국근대문학연구』28, 한국근대문학회, 2013.10, 403~437쪽.
- ↑ 우수진, 위의 논문, 2014.
- ↑ 우수진, 위의 논문, 2014.
- ↑ 우수진, 위의 논문, 2013.
- ↑ 우수진, 위의 논문, 2014.
- ↑ 우수진, 위의 논문, 2014.
기여
CWS21KHU: 최초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