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월회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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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R21KHU (토론 | 기여)님의 2021년 6월 21일 (월) 01:27 판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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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전문극단 토월회가 유랑 극단으로 전락하여 사실상의 해체를 맞이한 토월회 1930에 대한 문서입니다.

내용

1930년, 토월회의 고질적 문제가 폭발했다. 토월회가 안고 있던 고질적 문제는 이미, 박승희토월회 1923 문서에서 어느 정도 언급을 하였지만, 이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후술할 계획이다. 일단 토월회는 1930년 1월 22일을 마지막으로 조선극장에서 그 흔적을 감추었다. 물론 박승희가 1932년 창립한 태양극장이 1933년 조선극장으로 복귀는 하지만, 태양극장은 전문 극단으로 보기에 매우 민망한 수준의 극단이었다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 태양극장은 신극 운동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박승희가 극단으로서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만든 극단인데, 태양극장이 올린 극이 대부분 토월회 시절의 극이었다는 점만 확인하더라도, 토월회에서 전혀 발전하지 못한 상태로 있었다고 볼 수 있다.[1] [2] [3] 이에 대해 각설하고 다시 토월회로 돌아오면, 토월회가 전문 극단으로 존재했던 것은 사실상 1930년이 마지막이다. 물론 이전에도 토월회에 대한 회의는 제기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버텨오던 토월회는 1930년 1월을 마지막으로 사실상 극단으로서의 명맥이 끊긴다. 그렇다면 1930년 1월, 조선극장에서의 토월회의 모습을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1930년 1월 24일자 조선일보에 의하면, 토월회는 극 「월요일」 상연 중, 일본 경찰에 의해 공연이 중단되는 일을 겪었다. 당대 일본 경찰은 상연 전, 공연의 각본을 확인하고 검열을 통과해야 상연 허가를 했다. 극 「월요일」도 미리 각본을 제출하여 검열을 통과했다. 하지만 공연 중 배우들이 각본과 다른 공연을 시작하자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월요일」의 각본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검열된 각본과 다른, 소위 '불온한' (혹은 탈선) 공연이 진행되자 종로 경찰서 고등계 형사들이 토월회 배우들을 공연 중 체포했다. 이로 인해 토월회 배우 리운영(이운영)과 김옥(전옥으로 추정, 조선일보에는 전옥으로 되어있음.)이 체포되었고, 25일간의 구류되었다.[4] 그리고 나서 조선극장에서의 토월회의 흔적은 태양극장의 공연 전까지 더 이상 찾을 수 없게 되었다. 토월회가 1930년 1월 혹은 2월 중으로 조선극장에서 임거정전(임걱정전으로 추정)을 각색하여 상연하고자 계획했다는 점을 보면, 1930년 1월 22일의 사건은 단순하게 넘어 갈 사건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5] 극 「월요일」 상연 이후, 토월회의 흔적은 진주, 부산, 통영 수원 등 지방에서 찾을 수 있다.[6] [7] [8] 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토월회가 지방을 순회하며 올린 공연은 제대로 된 극장에서 올린 공연도 아니었고, 정식 공연의 형태로 올린 공연도 아니었다. 1930년 1월 22일자 「월요일」 상연 이후, 토월회는 1달도 되지 않아서 급격하게 몰락을 했다. 지방 순회 공연 당시 40여 명의 단원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9] , 조직적으로 와해는 되지 않았지만, 부족하더라도 전문 극단으로서 존립하던 과거와 달리, 외적으로 급격하게 몰락한 모습은 확인할 수 있다. 1930년 2~3월 경에 진행된 지방 순회 공연 이후, 토월회의 흔적은 그 어느 신문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1930년 8월 경의 박승희의 근황은 신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토월회의 대표 박승희가 홍해성과 경성소극장을 조직한 것을 보면, 8월 이전에 이미 토월회는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았다고도 볼 수 있다.[10]

1930년 1월 22일의 사건에 대해선 해방 이후의 증언을 참고하려고 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이에 대한 자료를 찾게 된다면, 후에 다시 수정하겠다. 본고의 토월회에 대한 연구는 주로 증언과 신문 자료를 통해 이루어졌고 필자 또한 이의 한계를 알고 있다. 해방 이후, 박승희가 토월회에 대해 쓴 책이 있다는데, 그 책을 필자가 아직 참고하지는 못했다는 점은 양해 바란다.

참고문헌

조선 뉴스 라이브러리

주석

  1. 劇團 太陽劇場歸京公演」, 『조선일보』, 1933.12.15. 8면,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online, 네이버.
  2. 朝劇新年興行 太陽劇場上演」, 『조선일보』, 1934.01.01. 3면,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online, 네이버.
  3. 劇團 太陽劇團 新春公演」, 『조선일보』, 1934.01.30. 7면,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online, 네이버.
  4. 脚本과를린다고 土月會員檢擧」, 『조선일보』, 1930년.01월.24일. (석간 07면), 『조선뉴스 라이브러리 100』online, 조선일보.
  5. 土月會에서 林巨正傳을脚色上演」, 『조선일보』, 1930년.01월.15일. (석간 05면), 『조선뉴스 라이브러리 100』online, 조선일보.
  6. 讀者優待券 진주에서」, 『조선일보』, 1930년.02월.14일. (석간 03면), 『조선뉴스 라이브러리 100』online, 조선일보.
  7. 釜山丁卯夜學 音樂會開催」, 『조선일보』, 1930년.02월.20일. (석간 03면), 『조선뉴스 라이브러리 100』online, 조선일보.
  8. 土月會同情劇 통영유치원위해」, 『조선일보』, 1930년.02월.21일. (석간 03면), 『조선뉴스 라이브러리 100』online, 조선일보.
  9. 土月會同情劇 통영유치원위해」, 『조선일보』, 1930년.02월.21일. (석간 03면), 『조선뉴스 라이브러리 100』online, 조선일보.
  10. 洪海星氏主宰로 京城小劇塲組織」, 『조선일보』, 1930년.08월.28일. (석간 07면), 『조선뉴스 라이브러리 100』online,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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