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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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R21KHU (토론 | 기여)님의 2021년 6월 19일 (토) 21:32 판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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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박승희의 신극 운동 의의에 대한 문서입니다.

내용


박승희를 마냥 긍정적으로만 평가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토월회의 실패의 원인을 박승희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박승희 혼자만의 책임으로 돌리기에 당대 식민지 조선의 상황은 너무나 좋지 않았다. 토월회라는 이름을 갖고 활동했다고 볼 수 있는 1923년 ~ 1931년은 다른 식민지 시기에 비해서 일본 당국의 검열과 탄압이 상대적으로 적었을 뿐이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모든 공연의 상연은 일본 당국의 승인 하에 이루어져야 했고, 검열을 통과하지 못하면 상연을 할 수 없었던 시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대 연극계는 기반이 약했다. 박승희 본인이 조선일보에 기고한 것처럼, 토월회는 시작부터 자본, 인물, 각본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1] 동인제로 시작한 만큼, 다양한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인물들이 있았지만, 연극 상연의 기본은 각본,무대, 그리고 배우이다.

참고문헌

주석

  1. 박승희, 「新劇運動七年 (五) 【土月會의過去와現在를말함】」, 『조선일보』, 1929년.11월.05일. (05면), 『조선뉴스 라이브러리 100』online, 조선일보.

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