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라인으로 보는 국도극장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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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W21KU (토론 | 기여)님의 2021년 12월 26일 (일) 21:48 판 (춘향전(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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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1913년부터 1999년까지 서울시 중구 을지로4가(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 164)에 있었던 영화관 국도극장(國都劇場)은 지금은 사라졌지만 그 역사적 의의가 많은 곳이다. 이 곳에서 직접 학교문화예술교육과 연계하 활동을 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지만 학생들에게 '영화'나 '극'을 매개로 그 역사적 의의와 그때의 문화예술 계승의 측면에서 '표석'과 그에 대한 해서만으로서 충분히 좋은 교육의 로케이션이 된다고 본다. 국도극장의 역사를 잠시 설명하면, 최초의 국도극장은 일제 강점기 일본인이 경성부 황금정(지금의 을지로)에 황금연예관이란 극장을 세웠는데 그것이 국도국장의 원조이다. 황금정은 그리스풍의 대리석 건물로서, 1925년에는 '경성보창극장', 1936년에는 '황금좌'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광복 이후 1946년 신축 개관하면서 ‘국도극장’이란 이름이 붙은 것이다. 국도극장에서 1923년에는 일본인 감독이 제작한 <춘향전>이 개봉되었고, 광복 후 1955년에 다시 한번 <춘향전>이 개봉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1999년에 건물을 허물고 호텔을 세우기 위해 폐관하였다. 이 때 건물이 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 개축을 못하기 때문에 건물주가 서둘러서 철거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지금은 호텔국도라는 명칭의 호텔이 자리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서울에 설립된 국도극장의 역사와 의미, 그리고 현대에 이어지는 관련 활동이나 터에 대해서 조금 더 깊이 있게 알아보고자 한다.

내용


타임라인으로 보는 국도극장의 역사


국도극장은 변천사가 많은 어쩌면 아쉬운 문화예술의 사적지 중의 하나이다. 설립 초기에 화려하고 다양한 영화나 극이 연출될 줄 알았고 실제로 그렇게 출발한 우리나라 최고의 극장 중 하나로 평가되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그 실체가 보존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국도극장의 시대적인 변천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국도극장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도움이될 뿐만 아니라 학교문화예술교육 중 '문화'와 '예술' 영역에서 초중등 학생 대상 교육적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해방 이후 방영된 한국 영화의 대표작


춘향전(1955)


국도극장에서 상영 된 최초의 영활이기도하고 대표작이기 때문에 학교문화예술교육 관점에서 더 큰 의의가 있다고 판단되어 여기서 조금 자세하게 알아보고, 그 외 상영작들은 간략하게 소개하였다. 춘향전은 무성영화 시기에 일본인 감독 하야카와 마쓰지로(早川孤舟)가 만든 최초의 <춘향전>(1923)을 시작으로, 토키영화의 시대를 연 것이 이명우 감독의 <춘향전>(1935)이 되었다.

이규환 감독의 <춘향전>(1955)은 한국전쟁 이후 영화제작 붐의 발동을 건 작품이었으며, 최초의 컬러시네마스코프 영화 역시 홍성기 감독의 <춘향전>과 신상옥 감독의 <성춘향>(1961)이었다. 1970년대 한국 최초의 70mm 영화도 <춘향전>(이성구, 1971)이었다.

제작될 때마다 대중을 열광시키고 새로운 스타를 탄생시켰던 춘향전은 영화산업의 부진과 함께 잊혀졌다가 2000년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으로 부활했고, 이는 한국영화사에서 최초의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이 되었다.

1923년 제작된 영화 <춘향전>은 당시 인기변사였던 김조성과 개성 기생 한명옥이 이몽룡과 춘향 역으로 출연했다. 식민지 조선에서 처음으로 제작된 완전한 형태의 영화(이전에는 ‘연쇄극’이라 하여, 연극 공연 중에 짧은 필름을 상영하는 형태를 띠고 있었다)로 소개되었다.

그러나 조선인 배우를 캐스팅하고 이야기의 실제 배경인 남원에서 로케이션 촬영을 했을 뿐, 영화 제작, 감독 및 각본, 촬영 등 주요 역할은 일본인 스태프들이 담당했다.

《춘향전》은 본래 정확한 작자와 연대를 알 수 없는 구전문학으로, 조선 숙종 말 혹은 영조 초에 판소리로 불리다가 소설로 정착되었으리라 추정된다. 소설의 이본(異本)만도 120여 종이나 되고 제목이나 내용이 이본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도 하다. 근대 들어 소설뿐 아니라 연극, 영화 등으로도 개작되어 명실공히 한국의 대표적인 고전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기생 딸이라는 미천한 신분의 춘향과 양반 자제 몽룡의 계급을 초월한 사랑은 유교적 신분질서가 엄격하던 시대에 서민들의 신분상승 욕망을 대리 만족시키는 것이었다. 한편 남원부사로 새로 부임하여 춘향에게 수청을 강요하고 온갖 만행을 일삼는 변학도의 모습은 부패한 사회를 조롱하는 것이었으며, 한양에서 과거 급제하여 암행어사로 돌아온 이몽룡은 당시 민중들이 갈구하던 새로운 위정자상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였다.

1935년 조선 최초의 토키영화 <춘향전>이 등장했다. 미국에서는 1927년 최초의 토키영화 <재즈 싱어, the jazz singer>가 나왔고, 이 무렵 이후 1930년대가 되면 조선의 극장들도 외국 토키영화 상영을 놓고 경쟁을 벌이는 등 토키영화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영화 제작만은 여전히 무성 시대에 머물러있었다.

따라서 <춘향전>의 등장은 조선영화인들의 오랜 숙원을 해결해준 것이었다. 더구나 <춘향전>의 발성 기술은 조선인이 자체 개발했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의가 크다.

이필우는 일본에서 촬영술을 공부하고 돌아온 후 1923년 <장화홍련전>(김영환)으로 조선인 최초의 촬영기사가 되었고 1935년 <춘향전>의 녹음을 맡으며 최초의 녹음기사로 기록되었다.

1931년부터 일본인 쓰치하시 다케오(土橋武夫)와 함께 녹음기술을 연구하여 토키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발성기술은 일본 쇼치쿠(松竹) 영화사의 최초 장편극 토키영화 <마담과 아내 マダムと女房>(1931)에 적용되었으나, 조선에서는 토키영화 제작을 뒷받침할 산업적 토대가 열악하여 이보다 4년 늦은 1935년에야 비로소 <춘향전> 제작으로 빛을 보게 되었다. 토키로 제작된 <춘향전>은 아직 대사 전달에는 문제가 있었지만 “다듬이 소리” “문 여닫는 소리”를 실감나게 들려준 것으로 크게 화제를 모았다.

조선 최초의 토키영화로 1935년 <춘향전>이 제작, 상영되었지만 사실 <춘향전>은 조선영화인들의 못다 이룬 꿈과도 같았다. 최초의 토키영화 <춘향전>은 기술적인 여러 결함과 배우들의 어색한 발성 연기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1941년 이병일 감독의 <반도의 봄>은 친일 프로파간다 영화로 분류되고 있지만 한편으로 영화 <춘향전>을 제작하는 조선영화인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영화 속의 영화로 보여지고 있는 <춘향전>은 조선영화를 대표하는 작품으로서, 조선영화에 대한 영화인들의 희망과 열정을 드러낸다.

1955년 <춘향전>은 이규환 감독이 전쟁 중에 시나리오를 썼고 1955년 1월에 개봉하여 서울 관객 18만 명(당시 서울인구 72만 명)이라는 흥행 신기록을 수립했다.

“훌륭한 것, 볼만한 것만 만들어내면 국산영화계도 함부로 대한민국 사람들로부터 괄시를 받지 않으리라”(《한국일보》 1955년 12월 22일 기사)는 기대와 흥분을 낳았다.

<춘향전>의 대성공은 이후 사극영화를 필두로 한국영화 제작 열풍을 불러왔고, <춘향전>은 명실상부 한국영화 중흥의 교두보로 자리매김했다.

영화의 필름은 아쉽게도 유실되었다.


춘향전.jpg

해방 후 처음 한국인 감독(이규환)이 연출한 또 다른 버전의 '춘향전'도 1955년 국도극장에 내걸려, 관객 12만 명을 기록했다.[1]

미워도다시한번(1968)


미워도다시한번.jpg

정소영 감독이 연출한 '미워도 다시 한 번'은 1968년 국도극장에서 개봉되어 370,005명의 관객을 기록했다.[2]

별들의고향(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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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호 감독의 데뷔작으로, 1974년 국도극장에서 개봉되어 464,308명의 관객을 기록했다.[3]

국도극장의 현재

국도극장을 주제로 한 영화

영화 '국도극장' 포스터

국도극장 터 표석


국도극장 터 표석


국도극장 터 표석은 2003년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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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도극장은 1936년 11월에 동양풍(東洋風)을 가미한 르네상스식의 황금좌로(黃金座) 개관하였다. 한국 영화 80년과 운명을 함께 해 온 이 극장은 1948년 국도극장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 극장은 광복 이후 ‘춘향전’ ‘미워도 다시한번’ 등 한국 영화 상영 중심지로서 영화인과 관객들의 사랑을 받아왔으나 1999년 10월 30일에 철거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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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국도극장 터 표석 전문>[4]



현재 국도극장 터는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 4가 310번지에 위치해있으며, 이는 국도극장이 철거된 후 세워진 국도호텔 입구 옆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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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주석

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