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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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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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의 화장을 하려면 위선목의 더부륵한 털을 다깍거버리고 얼골로 부터목까지 ‘콜드크림’으로 ‘맛사-지’를 하십시오. 만일 목이 대단히 겁은사람이라든가 별하게 때물이 흐르는 사람은 특수한화장법으로써 ‘오-트밀’이나 ‘핑’가루를 풀가티 만드러 가지고 목에 발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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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목덜미 검은분은 이러케 화장하시오」, 『조선일보』, 1935.04.14,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online,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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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재 기름끼가 잇게--◇
(...)
서늘할알마즌화장을 하랴면 어떠케하면되나이것은 곳 손쉽게할수잇는일입니다 즉분을 둑겁게바르는대신기름끼가만히돌게화장을하야 자외선의 직사를방어하면되는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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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바다와 산에서는 화장을 이러케」, 『동아일보』, 1931.08.20,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online, 네이버.


1930년대의 잡지 및 신문에는 계절별, 상황별 화장법, 연지나 크림 사용법, 립스틱 칠하는 법 등 구체적인 화장법에 대한 설명, 미용 전문인의 화장과 외모관리에 대한 글의 기고등이 대거 실리게 된다. 또, 광고에서 화장품이 많은 비용을 차지하였다는 점에서 그만큼 화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화장품 사용이 일반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판매되었던 화장품의 종류와 유행하였던 화장법을 통해 1930년대 미의식을 추측해보고자 한다. 당시, 포마드 등과 같은 남성 화장품도 존재하였으나 해당 위키는 여성 화장품을 중심으로 작성하였다.

내용

1930년대 화장품

1938년 4월 21일에 실린 구라부 크림의 연지 광고


백분은 우리의 박가분이 시장을 지배했고, 크림 화장품과 향수 등은 일본 제품이 잘 팔렸다. 분(粉)은 조선시대에도 있었지만 수분이 함유된 크림 형태의 화장품은 한국 여성들이 처음 접한 화장품이었다. 크림 화장품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광고도 많이 한 상표는 1910년대에 들어온 ‘구라부’와 ‘레도’였다.[1] 1930년대에는 기존의 전통적 화장법에서 벗어나 외래 화장품이 여성들에게 본격적으로 소개된다.‘당고도랑, 풍조메루, 자생당, 조색크린싱, 이오스, 와세돈구’등 다양한 브랜드의 화장품이 소개되는데, 이 제품들은 피부 부착력이나 색조의 다양함이 전통적인 화장품들과 비교할 수 없이 뛰어나 많은 여성들이 선호 하였다. [2] 30년대에 이르러서는 한국인들의 화장품 제조 역시 증가하였는데 문영수의 '피가몬드', 임선환의 '동보 구리무', 서석태의 '광업향장연구소', 김동엽의‘에레나 화장품’등이 그 예이다. 국산 화장품으로서 '박가분'은 1930년대까지 신여성들의 인기를 독차지하였으나 연독 논쟁으로 인해 1937년 자진 폐업하게 된다. 하지만 수입 화장품이 장악한 시기에 조선의 화장품 산업의 발전에 기여함으로써 추후에 국산 화장품들이 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화장품의 종류로는 백분, 크림, 화장수 등이 있었고, 모던 문화의 영향이 커져가며 색조 화장품의 종류도 파우더, 립스틱, 아이 섀도, 펜슬 등 다양해졌다.[3]

기초 화장 :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피부표현'


구리무(크림)는 분 바르기 전에 사용하거나 피부를 부드럽게 하는데 혹은 피부가 ‘걸지 않게’ 하는 용도로 만들어진 제품이다. 1930년대 화장품 광고가 건강한 피부를 유지 혹은 만드는 것을 중요하게 강조하면서 ‘걸지 않게’라는 용어가 광고 문안에 빈번하게 등장 한다. ‘걸지 않게’는 햇볕에 타지 않은 자연스런 피부를 의미 한다.[4] 우테나 화장품의 광고를 보면 '살결을 정돈한다', '세안에 젊은 살에 우테나 설인 크림'이라는 표현을 담고 있다. 이 외에도“불그스름한 살빛", "색백한 건강미" 등과 같은 말들이 자주 나타나는데, 당시 모던 걸들도 피부 관리에 있어 화장과 화장품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이 있던 것으로 보인다.


화장 전에는 얼굴 피부의 성질을 따라 듣기를 잘하는 사람은 '중성크림' 기름끼 많은 사람은 '건성크림'을 잘 문질러 놓습니다. 그리고 얼굴이 붉은 이는 얼굴에 연지를 바르지 않아도 좋습니다마는 얼굴이 누르고 흰 분은 손에다 약간 묻혀 바르고 손으로 그 위를 문지르면 바른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 위에 또 가루분을 바를 때에 얼굴색을 따라 혹은 자색 혹은 황색 혹은 살색으로 선택하야 파우더에다 찍어서 콧잔등에 한 일 자로 쭉-내려 긋습니다. 그 다음은 입술 옆으로부터 시작하여 점점 위에로 올라가야만 합니다. 그러고 도중에서 피부의 분을 털거나 더 파우더에 찍어서는 안 됩니다.
-유소제「삼분간에 될 수 있는 여학생 화장법」,『신여성』5(4),1931.6, 99-102. [5]


상미당의 백분 광고에서는 '발는것가치안보이는', '자연화장!'이라는 문구를 사용하고 있으며, 위의 글에서도 바른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하는 분 사용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자연스러움과 건강미를 중요시하여, 연한 피부 화장에 분홍색 분을 약간 바른 화장법이 가장 선호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색조 화장 : '서구화된 미의 기준'

매스미디어를 통해 서양 여배우들의 뚜렷한 이목구비를 접하게 된 모던 걸들은 화장법에 있어, 서구적 외모를 지향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1930년대 중반에 이르러 화장품 광고는 점점 더 서구 여성의 이미지를 사용하기 시작하는데, 특히‘당고도랑’의 화장품의 경우, 금발머리의 백인 여성 이미지를 많이 사용하였는데, 이를 통해 서구적인 외모가 미의 기준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1940년대에 이르러 높은 코와 턱선, 쌍꺼풀의 커다란 눈 등을 강조한 광고들이 나타남으로써 더 분명해진다.



1936년의 '여성'과 '신가정'의 표지에서 당대 유행하던 색조 화장법을 확인할 수 있다. 가늘고 아치형의 눈썹, 쌍꺼풀이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홀 메이크업을 하였고 콧날은 서양의 여자처럼 오똑하며 윗입술은 길고 아랫입술은 약간 도톰하게 그린 형식으로 붉은색 입술을 그린 모양새를 선호하였다.[6] 1939년 6월 17일 조선일보에 개재된 '베니' 사용법에 대한 기사[7]를 보아도 '얼굴 윤곽에 따라서 지트고엷은것은 달라야 할것', '콧대가 넙죽한분은 그냥 여프로 베니를 약간길게 발라두면콧대가서보입니다'라는 표현을 씀으로써 서양인의 입체적인 얼굴을 표현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논문

웹사이트

주석

  1. 손성진,「구라부크림과 동동구리무」, 『서울신문』, 2021-03-21. , 『서울신문』online, 서울신문.
  2. 이숙연·정연자,「1930년대 한국 모던 걸(Modern Girl)의 化粧文化에 관한 연구」,『동양연구』(21), 한국동양예술학회, 2013, 105-143.
  3. 이숙연·정연자, 위 논문,2013
  4. 이숙연·정연자, 위 논문,2013
  5. 맹문재,「일제 강점기의 여성지에 나타난 여성미용 고찰-1930년대를 중심으로」,『한국여성학』19(3), 한국여성학회, 2003, 5-30.
  6. 이숙연·정연자, 위 논문,2013
  7. 산뜻한 여름화장 분보다"베니"로 얼굴특징을잘살립시다」, 『조선일보』, 1939.06.17『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online,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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