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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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1920년 창간된 조선일보는 현재 대한민국의 1위 신문사이다. 대한민국의 사회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신문사이며, 많은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다양한 시사분야를 다루고 있는 신문사이다. 1920년부터 1940년대까지 조선일보는 대한민국에서 매일신보, 동아일보와 함께 큰 규모의 신문사였으며, 당시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내용

조선일보의 창간

조선일보는 1920년 3월 5일 서울 관철동 249에서 타블로이드 배대판(倍大版) 4면의 6일자 석간을 창간호로 내놓았으며, 제2호는 창간 특집으로 8면을 발행하였다.사장 조진태(趙鎭泰)를 비롯하여 당시 경제단체인 다이쇼실업친목회(大正實業親睦會)의 중견 인물들이 간부진을 형성하였다. 발행인 겸 부사장 예종석(芮宗錫), 편집국장 최강(崔岡), 이 밖에 서만순(徐晩淳)·최원식(崔瑗植)·최남(崔楠)·방한민(方漢旻)·최국현(崔國鉉) 등이 참여하였다. 창간 당시의 발행 목적은 ‘신문명진보주의(新文明進步主義)의 선전’이었다.[1]

친일단체였던 대정실업친목회가 창업한 것과 다르게 조선일보는 창간 이후 6개월 동안 30여 차례의 기사를 압수 당했다. 또한 총독부로부터 1주일간의 정간 처분을 받았다.

조선일보의 변화

1924년 9월에 송병준이 경영을 포기하고 독립운동가 신석우가 조선일보를 인수했다. 이 시기에 조선일보는 다양한 사상이 공존하는 이념에 구애받지 않는 신문사였으며, 이로 인하여 총독부의 지속적인 감시 아래 검열과 탄압을 받았다. 1921년 4월에는 남궁 훈(南宮薰)이, 1924년 9월에는 이상재(李商在)가 사장에 취임하였고, 안재홍(安在鴻)·백관수(白寬洙)·이상협(李相協)·김동성(金東成) 등이 이사진에 취임하면서 ‘조선민중의 신문’이라는 기치 아래 혁신을 단행하였다. 그리고 1924년 7월 22일에는 한국 신문 최초의 지방판으로 4면의 경북판(慶北版)을 발행하였다.[2] 또한 1927년에 신간회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했으며, 합법적인 공간에서 독립운동과 사회활동 계몽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1933년 7월 조만식 사장을 고문으로 추대하고 방응모가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태평로 1가 61에 현대식 사옥을 신축하고 전광식 고속윤전기·자동주조기·통신용 비행기 등을 도입함으로써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오게 하였다.1933년에는 조선어학회(朝鮮語學會)가 마련한 ‘한글통일맞춤법’을 채용, 과감히 지면에 옮김으로써 민족문화 향상에 기여하였다. 특히, 학예면을 활용하여 인문 발전에 정성을 쏟았으며, 같은 해 신춘문예작품 모집을 시작하여 문예를 통해서 발산되는 민족혼을 앙양하고 젊은 인재들 발굴을 꾀하여 오늘날까지도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1934년에는 출판부를 두고 『조선명인전』 등 서적 간행사업을 펼쳐 일제가 퇴색, 왜곡시키려고 애쓰는 민족역사의 참모습과 민족적 위인들을 널리 알리는 데 진력하였다.아울러 1935년 월간 종합지 『조광(朝光)』을 창간·발행하였고, 1936년에는 여성교양지 『여성(女性)』을 월간으로 펴내 우리 나라 여성의 역할과 지위 향상을 유도했으며, 학생들을 위한 잡지로서 월간 『소년(少年)』을 출판하였다.또, 향토문화사업위원회를 사내에 두어 우리 고유의 민속과 향토문화의 전통을 계승하기 위한 각종 사업을 주관했으며, 관련 기사를 장기 연재하는 한편, 축구 등 운동경기의 보급과 백두산·금강산 탐승단을 조직, 젊은 기상을 함양하고 체력단련을 꾀하였다. [3]

조선일보의 변절

1933년 친일반민족행위자인 방응모에게 소유권이 넘어간 조선일보는 점차 친일신문이 되어 민족을 배신했다. 1936년 새해 첫 날 신문에 조선총독의 연설을 실은 내용을 시작으로 조선일보는 친일적인 행위를 시작했으며, 동아일보가 총독부의 압력에 의해 폐쇄를 당한 것을 자축하였다. 또한 1937년 중일전쟁이 시작되자, 조선일보는 일본군의 승전보를 지속적으로 중계하였으며, 일본이 중일전쟁에서 난징을 점령했을 때는 축제에 비유하여 기사를 작성하였다. 1939년에는 세계대전을 일본이 발전할 수 있는 계기라고 하였으며, 침략전쟁을 지속적으로 미화하고 조선인들로 하여금 침략 전쟁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게 하였다.

조선일보 폐간

1940년 조선총독부에서 같은 논조의 신문들이 여러가지가 있을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폐간시킨다. 8.15 광복과 함께 1945년 11월 조선일보는 복간되었으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위키백과online, 위키피디아.

주석

  1. "조선일보(朝鮮日報)", 언론·방송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2. 조선일보(朝鮮日報)", 언론·방송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3. 조선일보(朝鮮日報)", 언론·방송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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