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문역
개요
쌍문역 역명의 유래가 되는 쌍문동은, 동명이 어떻게 유래되었는지에 대한 다양한 설이 존재한다.
내용
쌍문역은 창동과 쌍문동의 경계에 위치해 있다. 그러나 4호선 계획 당시 이미 창동역 건설이 계획되어 있었기 때문에 창동이 아닌 쌍문동의 이름을 따서 역 이름을 지은 것으로 보인다.[1]
쌍문이라는 명칭은 어디서 유래되었을까?
- 열녀문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이문에서 유래했다는 설
쌍문동이라는 지명은 이 지역에 위치한 두 개의 열녀문을 일컬어‘쌍문’이라고 부른 데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고, 쌍갈래 길에 이문(里門, 도둑을 단속하기 위해 마을 입구에 세운 문)이 있었다는 뜻의 '쌍갈무늬' 가 쌍문으로 되었다는 설도 있다.[2]
- 쌍문동 계성의 아들의 효자문에서 유래했다는 설
그러나 또 다른 설도 존재한다. 쌍문동에 계성(鷄聲)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계성과 부인이 세상을 떠났을 때 아들이 한 행동에 관한 이야기이다. 계성의 아들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정성껏 효를 다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계성과 그 부인의 묘 앞에 움집을 짓고 여러 해 동안 살았다고 한다. 계성의 아들은 이 움집에 살다가 명을 달리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를 보고 그의 효성을 칭찬하며 계성의 아들의 묘지 근처에 효자문을 두 개 세웠다고 한다.[3]
- 각각 다른 사람에게 내려진 효자문 두 개에서 유래했다는 설
도봉구에는 효자라고 불리던 남궁지(南宮遲)라는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그의 아들 또한 효성이 자자해 효자라고 불렸는데, 이 부자가 고종으로부터 효자문을 받았다고 한다. 부자에게 각각 내려진 두 효자문이 옛 쌍문동 중심지에 위치해 있어 이를 '쌍문'이라 불렀다는 설이 존재한다.[4]
명칭과 문화
이처럼 쌍문동이라는 명칭은 그 기원에 다양한 설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모티프는 '효자문', '열녀문'과 같은 것인데, 효자문과 열녀문은 결국 효를 중시하던 유교문화가 기저에 깔려 있는 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