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실험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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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극단 실험극장(實驗劇場)은 서울대학교·고려대학교·연세대학교 연극부 출신들이 중심이 되어 1960년 10월 3일에 창단되었다. '실험극장’이라는 명칭은 단원 각자가 연극을 위한 실험도구가 될 것을 자청한데서 비롯되었으며, 창립 회원들은 1960년대 다른 극단들에서 널리 수용되었던 ‘동인제’, 즉모든 단원이 극단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지는 운영방식을 채택했다.[1] 김의경, 서동철, 이순재, 최진하, 허규, 이기하, 김성옥, 유용환 등이 창립회원으로, 이들은 ‘연극을 학문으로서 공부하고, 연극을 직업으로서 한다’는 것을 극단목표로 삼았다.[2]

내용

창단

1960년 당시 이승만의 부정개표 사건 이후 일어난 4·19혁명 등으로 정권이 교체되고 한국 역사가 전환점을 맞게 되면서, 이런 시대적 배경과 더불어 연극계에서도 기성 연극 제도에 반기를 들고 일어나 대학생을 중심으로 실험극장이 창단되었다.[3] 아래는 실험극장의 창단회원인 배우 이순재가 창단 당시를 떠올리며 했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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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하고 싶은데 국립극단, 신협, 그리고 제작극회의 단원으로 들어가서 연극을 하는 기회밖에 없어서 우리들이 원하는 새로운 연극을 우리의 힘으로 스스로 주도하여 연극을 하자는 의견이 모아져 당시 명동국립극장 옆 청동다방에 모두 모여 극단을 창단하기로 모의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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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순재, 구태환과의 개인 인터뷰.[4]


1960년 10월 2일 명동에 소재한 청동다방에 모인 창단원들은 고천산, 김의경,배병권, 서동철, 양태조, 유달훈, 이기하, 이순재, 최진하, 한경완, 황은철 이상 11명으로, 이들은 대부분은 고등학교, 대학교 동창생들로서 일종의 예술 동아리 형태로 모임을 가졌으며, 극단의 운영비는 모두 회비로 충당하고 공동 투자, 공동 분배, 공동 책임의 형식으로 출범하여 창단작으로 유진 이오네스코의 <수업>을 동국대 소극장에서 공연하였다.[5] 실험극장은 다섯 가지 공약을 걸고 창단하였는데 그 결의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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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는 능력 있고 열성 있는 연극인의 실험도구가 될 것을 맹세하며 실험극장을 결성한다.

2. 우리는 연극을 위해서 자기 희생조차 감수할 동인으로 구성한다.

3. 우리의 목적은 연극을 통한 실험무대의 구축과, 이념에 찬 연극을 이 땅에 수립하는 데 있다.

4. 우리는 우리 자신의 회비로써 실험극장을 키워 간다.

5. 우리의 기본적 운영방법은 아래와 같다.

a. 연극의 모든 부문에 일반 이론을 지향하여 작품의 무대화를 중심으로 실험적이며 구체적인 지식 경험을 추구한다.

b. 무대수법, 연출수법의 구도목표를 계획한다.

c. 실험무대를 통하여 동인 각자는 자기 재능을 발견 육성한다.

d. 상연작품은 동인작품에 우선권을 주고, 외국작품인 경우, 희곡작법상 또는 무대 이론상의 시도적 작품을 선택한다.

e. 실험무대 외에 대외적 발표를 정기적으로 진행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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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극단 실험극장 정관 전문[6]


연원 및 변천

실험극장은 1960년 11월 27일 동국대학교 소극장에서 창립공연인 「수업」을 시작으로 1975년에 운현궁에 전용 소극장을 설립하였으며, 개관기념 레빈 피터 쉐터 작「에쿠우스」를 공연하였다.[7] 이후 1992년 서울시의 주관 운현궁 복원 사업으로 인해 전용극장이 철거되면며 1993년 강남구 신사동 미승빌딩 지하 1층에 새로운 소극장을 마련하였고, 개관 기념 아서 밀러 작「사랑과 배신」을 공연하였다.[8] 1996년, 23년간 극단을 이끌어온 김동훈이 사망하자 윤호진이 극단의 대표로 취임하였으나 재정난에 시달려 1996년 6월에 신사동의 전용 소극장을 폐쇄하였고,[9] 실험극장의 소극장도 막을 내렸으나 그 후 사무실을 현재의 명륜동으로 이전하여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10]

개관연도 장소 내용 공연
1975 운현궁 전용 소극장 실험극장의 첫 전용 소극장 「에쿠우스」,화가 이중섭」,신의 아그네스」,「사의 찬미」등
1993 강남구 신사동 미승빌딩 지하 1층 소극장 1992년 서울시의 주관으로 실시한 운현궁 복원 사업에 따라 전용극장이 철거됨에 따라 마련 <사랑과 배신>
1996 종로구 명륜1가 33-90 사무실 재정난으로 인한 전용 소극장 폐쇄 이후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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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경력 및 연극제 참가 이력

  • 해당 데이터의 출처는 한성대학교 미디어위키의 극단 실험극장 페이지입니다.

의의 및 평가

실험극장은 1960년 창단한 이래 수십년 이상 한국 연극의 중심으로서 활동하며 소극장 운동의 가능성을 보여줌과 동시에 연극의 대중화에 큰 기여를 하였다. 국내 최초로 예매제도를 도입하여 관객 만명을 돌파하기도 했으며, 전용극장을 통해 대표작을 발표하며 연극 사상 최장기공연 기록을 세우는 등[11] 한국 연극 역사의 중심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연극계의 중추 역할을 해왔으며, 동인제 극단으로 시작하여 사실주의 작품 위주였던 1960년대 한국 연극의 흐름을 바꾸고, 이후에는 시대에 발맞춰 과감히 동인제 극단에서 제작 중심의 프로덕션 체제로 전환하는 등[12] 전문적인 극단 경영의 성공사례를 보여주었다. 실험정신을 바탕으로 신인 배우와 연출가 작가를 끊임없이 양성하여 연극계의 인재풀을 형성하고, 어려운 제작 여건 속에서도 다양한 작품을 시도하여 한국 연극의 틀을 확장하였다는 점에서 실험극장은 한국 연극계에 큰 공헌을 하였다는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논문

구태환,「극단 실험극장의 소극장운동에 관한 연구 : -운니동 시절을 중심으로-」,『연극교육연구』34권0호, 한국연극교육학회, 2019.

주석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3. 구태환,「극단 실험극장의 소극장운동에 관한 연구 : -운니동 시절을 중심으로-」,『연극교육연구』34권0호, 한국연극교육학회, 2019, 7~8쪽.
  4. 구태환,「극단 실험극장의 소극장운동에 관한 연구 : -운니동 시절을 중심으로-」, 『연극교육연구』34권0호, 한국연극교육학회, 2019, 9쪽.
  5. 구태환,「극단 실험극장의 소극장운동에 관한 연구 : -운니동 시절을 중심으로-」, 『연극교육연구』34권0호, 한국연극교육학회, 2019, 9쪽.
  6. 한성대학교 미디어위키online, 한성대학교.
  7. 한성대학교 미디어위키online, 한성대학교.
  8. 한성대학교 미디어위키online, 한성대학교.
  9. 권재현, 「"전용극장 남기고 물러나는게 꿈"」, 『동아일보』, 2010년.12월.9일. 『동아일보』online, 동아일보.
  10. 한성대학교 미디어위키online, 한성대학교.
  11. PLAY DBonline, 인터파크.
  12. 권재현, 「"전용극장 남기고 물러나는게 꿈"」, 『동아일보』, 2010년.12월.9일. 『동아일보』online, 동아일보.

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