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극장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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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동양극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연극 전용 극장이다. 동양극장 터가 남게 된 배경 파악을 위해 동양극장이 설립된 배경부터 변화과정, 동양극장 터에 담긴 의미까지 알아보고자 한다.


내용

동양극장의 설립

동양극장은 1935년 설립되었다. 일본에서 무용수로 활동하다 평양으로 건너 온 배구자와 호텔 지배인이었던 홍순언이 만나 결혼하고 서울에 올라와 배구자악극단이라는 극단을 운영하다가 극단 경영 경험을 살려 홍순언이 요시모토 흥업과 제휴하여 동양극장을 창설하였다. 동양극장은 회전무대와 하늘·지평선 등으로 이용할 수 있는 벽면(호리존트)등의 최신 시설을 갖추고 1935년 11월 1일 개관공연을 시작으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1]

출처: 중앙일보, '울다 웃다 80年 10. 동양극장', 2005



동양극장 설립의 의의

동양극장은 조선 최초의 연극상설극장으로, 당시 일본 영화들이 성행하던 시기 영화를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조선 사람들에게 좋은 문화공연의 장이 되었다. 또한 연극전용극장이라는 경영 방식은 토키의 확산과 일본 콘텐츠의 범람으로 인해 공연 관람 기회를 잃은 이들에게 공연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였고, 일반연극의 정춘좌, 사극 중심의 동극좌, 희극 중심의 희극좌 등 전속극단을 운영하고 이를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의 확대를 가지게 되었다. [2] 동양극장은 연극연구소를 설치하여 신인들을 양성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전속극단 단원의 보수도 이전처럼 일급이나 무급이 아닌 월급제도를 실시하는 등 획기적인 운영방식을 채택했다. [3]


사랑에 울고 돈에 속고

1936년 7월 동양극장(東洋劇場)의 전속극단인 청춘좌(靑春座)가 공연한, 한 기생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화류비련(花柳悲戀)의 멜로드라마이다. 이 작품은 봉건도덕에 의해 희생당하는 여인의 비극적 운명을 묘사한 전형적 신파극이며, 고등신파(高等新派)라고 자타가 공인하던 동양극장의 대표작일 뿐만 아니라, 1930년대 후반의 상업주의 취향을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4] 당시 이 연극을 보기 위해 장안의 기생들은 물론이고 기생오라버니, 한량들, 시골 사람들까지 몰려들어 동양극장 출입문의 큰 유리가 깨지고 새문안 전차가 다니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는 발언을 토대로 볼 때 1910년대 일본에서 들어온 신파극이 자리잡고 대중화되어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동양극장의 폐쇄

홍순언의 사망 이후 배우자 배구자는 최상덕에게 위임하여 경영하다가 영화관으로 바뀐 후, 채무때문에 1976년 폐관되었다.


동양극장 터 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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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우리나라 최초의 연극 전용 극장으로 문을 연 동양극장이 있던 곳이다. 당시 대중 연극의 중심지였던 동양극장은 많은 인기를 모은 '사랑에 울고 돈에 속고' 같은 연극을 공연했으나 광복 후 영화관으로 바뀌었으며, 1976년 폐관된 뒤 1990년 철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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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동양극장 터 표석」


동양극장터표석.jpg


-동양극장 터 표석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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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논문

김남석,「동양극장의 창립 배경과 경영상의 특징 연구」,『한국예술연구』(15), 2017, 69-90.

웹사이트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사랑에속고돈에울고) 문화콘텐츠닷컴

주석

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