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성(人物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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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에서 사람과 동식물의 본성이 같은가 다른가를 다루는 이론.

개설

조선후기 기호학파(畿湖學派) 내 성리학자들은 만물의 본성을 깊이 탐구하여 사람과 동식물의 본성이 같은가 다른가에 대해 논쟁하였다. 같다는 학설이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이고, 다르다는 학설이 인물성이론(人物性異論)이다. 성리학에서는 성은 리이나, 기와 연관시켜 볼 수도 있다. 리의 측면에서 보면 본연지성(本然之性)이 되고 기의 측면에서 기질지성(氣質之性)이 된다. 이를 리기론적 측면에서 사람과 동식물의 고유한 본성을 치밀하게 연구하였는데, 그 중심인물로 이간(李柬)과 한원진(韓元震)을 들 수 있다. 이간이 인물의 성은 같다고 하자, 한원진은 인물의 성이 서로 다르다고 주장하면서 서로 논쟁이 야기되었다. 당시 한원진의 학설을 지지하는 윤봉구(尹鳳九)와 최징후(崔徵厚) 등이 호서(湖西)에 살았기 때문에 호론(湖論)이라 하였고, 이간의 학설을 지지하는 이재(李縡)와 박필주(朴弼周) 등이 낙하(洛下)에 살았기에 낙론(洛論)이라 하였다. 인물성동이론은 지역에 견주어 호락논쟁(湖洛論爭)으로도 불린다. 이간과 한원진 이후 많은 학자들이 이를 보다 더 심도 있게 연구하여 조선 성리학을 한층 발전시키는 계기를 가져왔다.

내용 및 특징

인물지성(人物之性)은 『조선왕조실록』에 많이 언급되고 있는데 단순히 사람과 동식물의 본성이란 의미가 강하다. 사람과 동식물의 성이 같은가 다른가에 대한 성리학적 논쟁적 측면에서 많이 언급되지는 않았다.

성리학에서 말하는 성은 성즉리(性卽理)와 리동기이(理同氣異)의 관점에서 두 가지 양상으로 드러난다. 성이 리와 연관된 양상을 본연지성(本然之性)으로 보고, 기와 연관된 양상을 기질지성(氣質之性)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양상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살펴보면, 인간과 인간의 본연지성은 같고 기질지성은 다르다. 이에 대한 것은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동식물에 이것을 적용하면 인간과 동식물이 과연 본연지성은 같고 기질지성은 다른 것인가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를 리기론적 측면에서 처음 제기한 학자는 이간(李柬)이었다. 이간은 『중용』 수장(首章)에 대한 주희의 주석에서 "사람과 동식물이 생할 때 각기 부여받은 리를 건순오상(乾順五常)의 덕으로 삼는데 이것을 성이라고 한다."는 말에 근거하여 사람과 동식물의 성은 서로 같다고 하였다. 이는 이간이 성을 일원(一原)과 이체(異體)라는 관점에서 구분하여 ‘일원’의 측면에서 인물의 성은 같다고 본 것이다. 즉 성을 순수한 리의 측면에서 파악한 것이다.

한원진은 성을 초형기(超形氣)·인기질(因氣質)·잡기질(雜氣質)이라는 세 가지 관점에서 분류하여 ‘인기질’의 측면에서 인물의 성이 서로 다르다고 주장하는데 그 근거는 『맹자』 ‘생지위성장(生之謂性章)’에 대한 주희의 주석에서 "인의예지의 품부받음을 어찌 동식물들이 모두 온전히 얻었겠는가?"라고 한 것에 의거한 것이었다. 이는 기의 편전(偏全)으로 연유하여 미발의 심은 순수한 선일 수 없다는 생각이 작용한 것이다.

두 학자는 성 즉 오상을 이해하는 관점을 서로 달리하며 논쟁을 진행하였으나, 성이라는 동일한 용어를 사용하면서도 그 의미와 내용에서는 일치하지 않은 면이 많았다.

영조는 함인정(涵仁亭)에 나아가 주강(晝講)을 하였다. 그 과목은 『중용(中庸)』이었다. 특진관(特進官)서지수(徐志修)는 사람과 동식물은 본성이 각기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서, 일전에 감시(監試)의 초시(初試)에서 이것을 의제(疑題)로 삼았다. 이는 당시 학자들이 논쟁하던 말을 모았기 때문이었다. 자료를 보니, 권상하(權尙夏)는 사람과 동식물의 성은 다르다고 하였고 김창흡(金昌翕)은 같다고 하였으며 이재(李縡)도 같다고 하는 것이었다. 이를 들은 영조는 지금 서로 싸울 만한 것도 없는데, 유생(儒生)들이 문의(文義)를 가지고 논쟁하며 나에게 쟁송하는 것을 결판해주기를 바랄까 두렵다고 하였다. 그리고 바로 아뢰지 아니할 자가 이러한 것을 아뢰니 서지수를 파직시키라고 하명하였다(『영조실록』 34년 9월 5일).

정조대에 경외(京外)의 유생 김운주(金雲柱) 등은 한원진을 추증하고 시호를 내리기를 바라는 상소에서 "태극(太極)과 오상(五常)에 대해서 논하기를 ‘태극이란 형기(形氣)를 초월해서 말하는 개념이고 오상이란 기질(氣質)에 입각하여 성립된 이름이다’라고 하였으며, 사람과 다른 존재의 성(性)에 대해서 논하기를 ‘사람이든 다른 존재이든 모두 똑같은 성을 가지고 있으니 태극이 바로 그것인데 이는 만물의 근원이 하나이기 때문이요, 사람과 사람이 같은 성을 갖고 있고 다른 존재와 존재 역시 같은 성을 갖고 있으니 오상이 바로 그것인데 이는 하나의 근원에서 다르게 갈려 나간 것이요, 사람끼리도 다른 성을 갖고 있고 다른 존재끼리도 다른 성을 갖고 있으니 기질지성이 바로 그것인데 이는 다르게 갈려 나간 것이 다시 다르게 갈려 나간 것이다’ 하였습니다."라고 하여 한원진의 인물지성의 상이점을 간략히 밝혔다(『정조실록』 23년 10월 13일). 이조에서 그를 추증하는 문제에 대해 아뢰면서 "한원진이 ‘미발지심(未發之心)에도 기질(氣質)을 겸하고 있어 사람과 동식물의 오상이 각각 다르다’는 설을 지어 내었는데, 그 설이 주자(朱子)와 이이(李珥)의 언설과 어긋나는 면이 있고 김창흡(金昌翕)·이재(李縡)·이간(李柬)의 설과 같지 않았으므로 문도들끼리 서로 비난하고 헐뜯어, 호학(湖學)이니 낙학(洛學)이니 하는 명칭이 생겨났는데, 대체로 이재가 서울에 살고 한원진이 호서에 살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정조실록』 23년 10월 15일).

순조대에 낙학의 대표자 이간의 시호를 내려주게 하면서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에 대해 한원진과 서신을 왕복하여 논변(論辨)하다가 마침내 대립하였다는 정도의 글이 있다(『순조실록』 10년 12월 25일).

인물지성에 대한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은 철학적 내용이 매우 간략한데, 주로 한원진의 세 가지 관점, 그리고 미발의 심체에도 기질을 겸하고 있어 사람과 동식물의 성이 서로 다르다는 측면을 다루고 있다.

참고문헌

  • 『남당집(南塘集)』
  • 『외암집(巍巖集)』
  • 『한수재집(寒水齋集)』
  • 윤사순, 『한국유학사-한국유학의 특수성 탐구』, 지식산업사, 2012.
  • 이상익, 『기호성리학연구』, 한울아카데미, 1998.
  • 현상윤 지음, 이형성 교주, 『현상윤의 조선유학사』, 심산, 2010.
  • 유교사전편찬위원회 편, 『유교대사전』, 박영사, 1990.